[김재천 칼럼] 대통령제, 제대로 알고나 하자!

2024-12-16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대통령중심제는 대통령이 국가 운영의 중심으로 작동하는 제도가 아니었다. 19세기 말 미국에서 유래한 이 제도는 사실 의회가 주축으로 작동하는 제도였다. 미국이 독립 후 제정한 ‘연합규약(미국 13개 주의 상호 우호 동맹을 정한 약관)’은 실질적인 헌법으로 작용했는데 이에 준거해 발족한 연방정부는 의회로만 구성돼 있었고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더 강력한 연방정부가 필요하다고 인식한 미국은 독립을 선언한 지 12년 후에야 헌법을 제정했는데 이때 ‘대통령’이라는 제도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도입됐다.

미국 건국의 주역들이 ‘대통령’이라는 직위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우선 연합규약 시기와는 달리 연방정부 차원의 행정부 구성과 이를 이끌 ‘행정수반(chief executive)’이 필요했다. 또 다른 이유는 국가를 대표할 상징적인 지도자, 즉 ‘국가원수(chief of state)’의 필요성을 들 수 있다. 당시 유럽의 왕정 국가들은 왕이나 여왕과 같은 군주가 절대권력을 쥐고 국가원수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최초의 민주주의국가 미국에는 이런 역할을 할 직위가 없었기에 대통령직을 만들어 국가의 상징적 지도자의 임무를 맡긴 것이다. 하지만 건국의 주역들은 전제 왕정의 권력 집중과 남용을 극도로 혐오했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본질적으로 매우 약한 대통령직을 만들었다.

건국의 주역들은 오히려 의회가 연방정부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믿었고 따라서 의회에 더 강력한 헌법적 권한을 부여했다. 외교정책만 하더라도 전쟁을 선포할 권한과 국제 통상을 규율할 권한을 의회에 부여했다. 헌법 1조는 대통령이 아닌 의회의 권한과 역할을 다루고 있다. 대통령이 의회 권력을 견제하기를 기대했지만 20세기 초까지만 하더라도 의회의 권력자들은 대통령을 경시하며 ‘수석서기(chief clerk)’ 정도로 취급하기도 했다.

미국 의회와 대통령 사이 힘의 균형은 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대통령 쪽으로 급격히 기울기 시작했다. 대공황의 경제위기와 냉전의 안보위기를 겪으면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정책 집행을 위해 대통령에게 힘을 모아주자는 사회적 합의가 발생하면서 의회가 자발적으로 많은 권한을 대통령에게 위임했고 대통령은 방대한 제도적 자산을 갖추게 됐다. 그래도 의회가 대통령을 견제할 법적 수단은 다양하고 강력하다.

한국을 포함해 다수의 신생 민주주의국가들이 미국의 제도를 답습해 대통령제를 도입했는데 이 제도를 잘 살펴보면 대통령중심제라기보다는 ‘견제와 균형’의 제도임을 알 수 있다. 국가 3권의 명확한 분립이 아니라 견제를 위해 3개로 분리된 기관이 3권을 일정 부분 공유하게 만들어 놓았다. 권력의 집중을 예방하기 위해 정책의 과정을 고의로 비효율적으로 만들어 놓은 제도다. 내각제의 총리가 대통령제의 대통령보다 강력한 정책 권한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의회와 총리가 일체형으로 움직이는 내각제와 달리 대통령제는 대통령과 의회 모두 각각 민주 선거로 국민의 권력을 이양받아 구성되는 ‘이원적 정통성’의 특성이 있다. 민주적 정통성을 갖춘 두 기관이 정면충돌할 때 헌법은 대체로 의회에 더 유리하게 작동한다. 단적으로 의회는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지만 대통령은 의회를 해산할 수 없다. 의회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한 헌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담화에서 “거대 야당은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고 퇴진과 탄핵 선동을 멈추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거대 야당이 장악한 의회 역시 국민의 민주적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발언이다.

의회의 폭주는 정치적으로는 문제될 수 있으나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오로지 정치적으로만 풀 수 있는 문제이지 (초)법적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통령이 의회에 맞서기 위해서는 ‘군통수권자(commander-in-chief)’가 아니라 최고 정치인, ‘최고 소통가(communicator-in-chief)’가 되는 방법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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