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위해 23일 일본을 찾았다. 일본 언론들은 한국 대통령이 동맹국인 미국보다 먼저 일본을 방문한 것은 “1965년 한·일 수교 후 처음으로, 한·일 관계를 중시하는 자세를 보인 것”이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한·일 정상의 상대국 ‘8월 방문’은 처음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은 특히 광복절이 있는 8월에 이 대통령이 방일한 것에 주목했다. 일본 총리가 처음 한국을 공식 방문한 1983년 이후 한·일 정상이 8월에 상대국을 찾은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외교부가 발간한 ‘일본 개황’과 닛케이 집계에 따르면, 1983년 1월 나카소네 야스히로 일본 총리의 공식 방한 이후 양국 정상의 상대국 방문은 5월이 9차례로 가장 많았고, 다음은 6·10·11월 각 7차례였다. 4월은 1차례뿐이었고 8월 방문은 없었다. 1983년 이전으로 범위를 확대해도 8월 방문은 1974년 8월19일 다나카 가쿠에이 일본 총리가 박정희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 장례식 참석 차 방한한 것이 전부다.
닛케이는 이를 두고 “8월은 반일(反日)운동이나 내셔널리즘이 고조되기 쉽다. 종전의 날인 15일은 한국에서 ‘광복절’이라고 부르는,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을 축하하는 날이다”라며 “실용외교를 내세우는 이 대통령은 이번에도 국제정세를 근거로 이념보다는 (일본과의) 조기 대화를 우선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이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일본을 향해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로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하자”고 강조하고, 이시바 총리는 패전일 전몰자 추도식에서 “전쟁 반성”을 언급하면서 두 정상의 보조가 맞춰지고 있는 점도 ‘8월 방일’의 배경으로 보인다고 닛케이는 짚었다.

◆‘美보다 日 먼저’도 처음…MB 이어 2번째 단시일 내 방문
교도통신은 한·국 수교 이후 한국 대통령이 다자회의 참석을 빼고 양자외교 첫 방문국으로 일본을 택한 것은 처음이라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이 같이 전하며 한·일 정상이 수교 60주년을 맞아 관계 강화 방침을 확인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방문한 1984년 9월 이후 한국 대통령이 취임 후 미국에 앞서 일본을 찾은 사례는 전무했다. 재임 기간 한 번도 일본을 찾지 않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제외한 8명은 모두 미국을 먼저 찾은 뒤에 일본 방문 기회를 마련했다. 9명 중 7명의 첫 해외 순방지가 미국이었다. 첫 외국 방문이 유럽 다자회의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영국), 윤석열 전 대통령(스페인)도 이후 미국을 방문한 뒤 일본을 찾았다.
닛케이는 이 대통령이 6월4일 취임한지 80일 만에 ‘초스피드’로 일본을 찾은 점에도 주목했다. 취임 55일 만에 일본을 방문한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단시일 내 방문이다. 닛케이는 “한국 대통령의 방일은 과거사 문제로 국내적 비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정을 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일쑤였다. 일본과의 관계를 중시한 김대중 전 대통령도 방일까지 22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은 310일이 걸렸다”며 “이재명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관세 협상에 쫓겼고 방위비 증액도 요구받고 있다. 이 같은 면에서 입장이 비슷한 일본 측과 먼저 대화하는 의의가 있다”고 분석했다.

◆경계 태세 강화하는 日
일본은 이 대통령의 방문을 맞아 이날 도쿄 도심에 수많은 경찰관을 배치하며 엄중 경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도쿄도를 관할하는 경찰 당국인 경시청은 특별경비본부를 설치, 한·일 정상회담이 이뤄지는 총리관저 주변 등에 기동대원들을 투입했다. 앞서 윤 전 대통령이 2023년 3월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친한 단체와 일본 극우 단체가 총리관저 앞에서 찬반 맞불 시위를 연 바 있다.
경찰은 아울러 불특정 다수 인파를 겨냥한 ‘소프트 타깃’ 테러 발생 가능성에 대비해 주요 역사와 하네다공항 등에서의 순찰도 강화했다.
이 대통령 숙소인 도쿄 내 호텔에서는 방문객들의 수하물을 검사하는 한편, 경찰관들이 시설 내부를 둘러보며 위험 요소를 살피는 중이다. 경시청 고위 관계자는 “모든 사태를 상정해 경비에 만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는 이날 오후 정상회담과 만찬을 통해 한·일 경제·인적 교류 및 협력, 양국 간 및 한·미·일 간 대북 공조, 저출생·고령화 등 양국 공통 과제 등에 대한 논의를 할 예정이다. 1998년 김대중·오부치 선언 이후 27년 만의 새로운 한·일 공동선언의 단초가 마련될지도 주목된다.
두 정상은 이날 공동언론발표를 통해 회담 성과 등을 설명하기로 했다고 NHK방송은 전했다.
도쿄=유태영 특파원 anarchy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