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피하고 싶은 일은 경찰서의 부름이다. 그런데 19일 서울 방배경찰서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하원오 의장과 최석환 사무국장을 불러들였다. 경찰은 지난 연말 트랙터 농민들과 응원봉 시민들이 만난 남태령 시위가 미신고에 의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사회운동가들은 경찰을 비롯한 공권력과 대치하거나 저항하는 일이 잦다. 그러나 이번에는 칠순의 농민운동가와 전농 안팎의 살림을 맡아왔던 사무국장이 당당히 조사를 받겠다며 제 발로 방배경찰서로 향했다.
행정부 수반이란 자가 나라를 발칵 뒤집어놓고도 소환조사를 무시하고 체포마저도 요리조리 피하는 모습을 보아와서다. ‘국민저항권’을 운운하며 극우 집단의 폭동과 린치가 버젓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피로가 너무 쌓여간다. 무엇보다 내란을 일으킨 주요 원인 제공자로 추정되며 수많은 국정농단 의혹의 당사자가 한남동에 박혀 코빼기도 안 비치고 있건만 농사로 바쁜 애먼 농민들만 오라 가라 하고 있다.
전농에 대한 소환 통보의 주요 이유는 불허한 집회를 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랙터 농민들도 영하 14도의 동짓날 남태령에서 집회를 열 생각이 없었다. 12월16일 경남 진주와 전남에서 출발해 윤석열 체포를 촉구하고 농촌농업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알리는 현수막을 트랙터에 걸고 행진하는 중이었다. 행진 닷새째 되는 날 서울의 길목인 남태령에 다다랐고 그저 지나가려 했을 뿐이다. 남태령을 넘어 동작대교를 건너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농민들의 분노와 뜻을 전하자 했다. 그러고 난 뒤 트랙터 방향을 돌려 월동 작물 돌보고 소 밥 주러 내려가려던 참이었다. 서울까지 일주일 정도의 여정을 예측해 주요 길목마다 행진 신고를 했고, 그렇게 차선 한 줄을 배정받아 평화롭게 올라왔다. 교통 흐름이 원활하도록 때로는 경찰이 신호기를 조절해주고, 시민들의 환호와 응원의 박수도 받으면서 말이다.
한데 유독 서울경찰청만 진입을 불허했다. 차라리 아직 내란 우두머리가 잡히지 않아 권력 구도가 어떻게 변할지 몰라 불안하다는 귀띔이라도 줬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꺼내든 이유가 교통체증 유발 염려라니. 출퇴근을 해야 하는 수도권 시민들에게 불편을 줄 수도 있겠다 싶어 주말에 맞춰 서울로 입성하려던 일정이다. 하나 시민들 출근하는 월요일을 코앞에 두고도 남태령에 농민과 시민들을 묶어버린 것은 경찰이었다. 출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위장 출근 쇼까지 벌이며 2년간 교통체증을 유발했던 자는 정작 따로 있는데 말이다.
남태령 고개에서 트랙터 농민들이 갇히자 초로의 농민들이 다치고 끌려갈까 싶어 시민들이 동지섣달 밤을 함께 보냈다. 농민과 시민들이 만나 춤추고 노래하고, 웃고 울며 남태령의 밤을 훈훈하게 데웠다. 어딜 감히 촌것들이 서울까지 넘어오느냐 무시하며 길목을 막는 바람에 남태령은 광장이 되고 해방구가 된 것이다. 남태령은 이제 단순한 지명이 아닌 의미가 되어간다. 얼마 전 140여명이 온라인에서 남태령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모였다. 국내외 연구자들부터 시민운동가, 언론인, 예술인, 학생 등 각계각층이 모여 남태령의 이야기를 서사로 구축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체제 작동과 극우세력의 준동을 고통스럽게 마주하고 있는 세계의 시민사회도 한국의 남태령을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투쟁의 끝에는 온갖 뒷정리가 남는다. 여기저기 정산도 해야 하고 고장 난 트랙터도 고쳐야 한다. 농사짓느라 멀쩡한 허리와 무릎이 아니건만 털털거리는 트랙터를 타고 왔으니 허리와 무릎에 성이 났다. 이도 잘 달래야 봄 농사에 나설 수 있다. 결정적으로, 여전히 끝나지 않는 내란 사태에서 민주주의를 구해야 할 사람들을, 왜 불러! 대체 왜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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