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자율주행, 대한민국 미래를 여는 성장엔진

2025-12-03

얼마 전 경주에서 운행 중인 자율주행 셔틀버스를 타본 일이 있다. '정말 사람이 없어도 될까'하는 의구심이 스쳤지만 차량은 정해진 노선을 따라 차분히 움직였다. 과속방지턱 앞에서는 속도를 조절했고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를 확인하더니 자연스럽게 멈춰 섰다. 회전 구간에서는 차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각도를 잡아 돌았다. 운전석만 비어 있었을 뿐 우리가 늘 보던 차량과 크게 다르지 않은 주행이었다. 기술이 실제 도로라는 거친 환경에서 어디까지 와 있는지, 짧은 탑승이었지만 분명하게 체감됐다.

이와 비슷한 장면은 세계 곳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피닉스와 샌프란시스코 등에서는 웨이모 로보택시가 시민들의 이동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스마트폰으로 호출한 뒤 무인 차량이 정확한 위치로 도착하고 목적지까지 스스로 이동하는 모습은 더 이상 실험이 아니라 '서비스'로 받아들여진다. 중국도 흐름이 빠르다. 베이징·상하이 등을 중심으로 무인택시 운행구역이 넓어지고, 일부 지역에서는 심야시간대와 혼잡시간대까지 운행이 확대되면서 사람이 없는 차량이 교차로를 통과하고 차선을 바꾸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처럼 각국 정부와 기업이 경쟁적으로 자율주행을 밀어붙이는 이유는 '안전'이다. 세계적으로 매년 약 120만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고 있고, 대부분은 운전자의 실수에서 비롯된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완전자율주행이 상용화되면 전체 사고의 최대 80%가량 감소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첨단 기술의 경쟁을 넘어 '사람을 지키는 기술'을 누가 먼저 일상에 안착시키느냐가 국가 경쟁력의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기술이 진전되면서 경쟁의 무게는 산업 전반으로 넓어지고 있다. 자율주행은 인공지능(AI), 반도체, 정밀지도, 클라우드, 센서, 통신망이 결합된 복합 산업이다. 특정 기술에만 비교우위가 있다고 성과가 나는 구조가 아니다. 한 나라의 종합 기술역량이 그대로 드러난다. 웨이모는 1억6000만km 이상의 주행 데이터를 축적했고 GM 크루즈는 도시 중심부에서 24시간 무인 서비스를 운영하며 실제 도로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중국 바이두는 '아폴로(Apollo)'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1억km 넘는 데이터를 확보하며 추격하고 있다. 여기에 최근 도입된 '엔드투엔드(End-to-End)' 방식은 AI가 주행 판단 전 과정을 통합적으로 처리하며 발전 속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데이터, 알고리즘, 인프라, 규제의 정교함이 모두 맞물려야 경쟁에서 앞설 수 있다.

한국도 기반 마련을 꾸준히 이어왔다. 2015년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차 정의를 법제화했고 화성 K시티(K-City)를 중심으로 테스트베드를 조성했다. 범 부처가 참여하는 1조1000억원 규모의 대형 연구개발(R&D)도 추진하는 등 정책적 지원을 이어왔다. 지금까지 512대가 임시운행허가를 받았고 그 중 132대가 실제 도로에서 데이터를 쌓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수준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 데이터 규모, 실증 범위, 서비스 확장성에서 격차가 존재하고 시장조사기관 '가이드하우스 인사이트'의 평가에서도 상위권은 대부분 미국·중국 기업이 차지했다. 이름을 올린 국내 기업은 한 곳뿐이다. 기술력뿐 아니라 사업모델, 투자 규모, 서비스 경험에서도 현실적인 간극이 보인다. 결국 경쟁 무대는 이미 세계로 열렸고, 우리도 그 흐름을 따라잡아야 하는 상황이다.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지난 11월 '자율주행차 산업경쟁력 제고방안'을 마련했다. 도시 전역 실증을 어렵게 했던 규제를 조정하고 원본 영상 데이터 활용 제한을 완화했으며 특정 구역의 운행 제한도 현실적 기준으로 재설계하는 중이다. 기업들이 R&D에 몰입할 수 있도록 AI 학습센터 구축, 고성능 GPU 지원, 택시업계와의 협의체 운영 등 생태계 기반도 폭넓게 손보고 있다. 규제와 인프라, 산업과 서비스가 한 흐름으로 이어지는 체계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제도가 이렇게 정비되면 국민이 체감하는 변화도 뚜렷해질 것이다. 고령층과 장애인처럼 이동이 어려운 사람에게 새로운 선택지가 생기고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지역도 이동권이 넓어진다. 이동이 곧 '접근성'이고 '기회'라는 점을 생각하면 자율주행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이동권을 확장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출퇴근 시간도 달라질 것이다. 운전에 쓰던 시간이 휴식과 준비의 시간으로 전환되고 도시 교통체계도 새로운 방식으로 설계될 여지가 생긴다. OECD 국제교통포럼(ITF)은 자율주행 택시와 공유 모빌리티가 결합될 경우 동일한 교통 수요를 훨씬 적은 차량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는 도로와 주차장이 차지하던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줄 수 있다는 의미다. 물류 분야 역시 무인 운송이 도입되면 효율은 높아지고 탄소 배출은 줄어드는 방향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변화가 현실이 되려면 넘어야 할 과제도 뚜렷하다. 실제 도로 기반의 대규모 데이터 확보, 안전기준 고도화, 도로 인프라 개선 등은 지속적인 보완이 필요하다. 기술의 속도만큼 제도와 기반도 함께 진화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중요한 기점에 서 있다. 자율주행은 기술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도시 구조, 산업 전략, 국민 이동 방식을 함께 바꾸는 대전환의 출발점이다. 경주 셔틀에서 느꼈던 그 차분한 안정감처럼, 기술이 국민에게 신뢰를 주고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율주행은 이동 시간을 돌려주고 지역의 이동권을 넓히며 산업 혁신과 안전한 사회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미래 전략이다.

정부는 규제를 합리적으로 정비하고 기업의 도전을 든든히 뒷받침하며 이 변화의 흐름을 이어갈 것이다. 지금이 골든타임이다. 민관이 힘을 모아 속도를 낸다면 자율주행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되어 국민의 삶을 더 안전하고 풍요로운 방향으로 이끌어낼 것이다.

강희업 국토교통부 제2차관

〈필자〉1994년 제30회 기술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했다. 고려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2008년에는 영국 리즈대에서 교통계획학 석사를 취득했다. 국토교통부 재정담당관, 도로정책과장 등을 거쳐 2017년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에서 평창·강릉 등 개최지의 교통대책을 총괄해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뒷받침했다. 이후 기술안전정책관과 철도안전정책관, 철도국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치며 2022년에는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상임위원 그리고 2023년에는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올해부터 국토교통부 제2차관을 맡아 교통 분야 전문가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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