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음속 전투기 KF-21 주목” 필리핀 러브콜…첫 수출 가능할까 [박수찬의 軍]

2025-01-26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개발한 KF-21 전투기가 필리핀에 수출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현되면 KF-21의 첫 수출로서 한국 방위산업의 쾌거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8월 다목적 전투기(MRF) 사업에 착수한 필리핀은 FA-50 경공격기보다 더 먼 거리에서 정밀타격을 할 수 있는 중형 전투기 구매를 추진 중이다.

미국 록히드마틴 F-16, 스웨덴 사브 그리펜 전투기 등이 후보 기종으로 거론됐다. 동남아시아에서 쓰이고 있는 기종이고, 성능 측면에서 검증이 이뤄진 것들이다.

하지만 J-16D 전폭기와 J-20 스텔스기 등 첨단 무기를 대량 운용하는 중국과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F-16과 그리펜은 필리핀군 요구를 충족하기에 제약이 있다.

그 빈틈을 KF-21이 파고드는 모양새다. 필리핀 공군이 쓰는 FA-50에 대한 만족도가 KF-21에 관심을 높이고 있다는 평가다. 유력한 경쟁자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밀려나는 모양새다.

다만 필리핀의 특성에 맞는 접근법을 확보해야 실제 수주로 이어질 수 있다. 현지 사정을 파악하고 수출 전략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중국과 갈등 심각…고성능 기체 수요

필리핀은 남중국해와 인접한 동남아시아에서 중국과 가장 거칠게 대립하는 나라로 꼽힌다.

필리핀과 가까운 남중국해 스카버러 암초에선 중국 해경과 해상민병대가 수시로 출몰해 필리핀 측과 충돌하고 있다.

중국은 다양한 수단으로 필리핀을 압박하고 있다. 이달 초 길이 165m의 세계 최대 해경선인 중국 해경 5901호가 필리핀 북부 루손섬 서쪽 111㎞ 지점까지 접근했다.

5901호는 76㎜ 함포, 원격 조종 물대포, 헬기 착륙장 등을 갖춘 함정으로 해경 순찰선보다는 해군 군함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국이 필리핀을 염탐한다는 의심도 제기되는 상태다. 지난해 12월 30일 필리핀 중부 마스바테주 산파스쿠알 지역 바닷가에서 약 9㎞ 떨어진 해상에서 수중 드론이 발견됐다.

‘HY-119’라는 숫자가 적힌 수중 드론은 중국이 운용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유사시 중국 잠수함 활동에 필요한 수중 지도를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필리핀은 우방국과의 협력 강화로 맞섰다. 경제력과 국방비 지출 측면에서 중국과의 경쟁은 불가능하다.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일본 등을 끌어들이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미 공군 A-10 공격기와 필리핀 공군 A-29 경공격기가 필리핀해에서 연합훈련을 했다.

필리핀군은 지난해 미 해군, 일본 해상자위대와 함께 해상 순찰을 하고, 호주에서 열린 피치 블랙 다국적 연합공중훈련에 FA-50을 보내는 등 연합훈련을 확대했다.

하지만 자체적인 군사력이 빈약하면 연합훈련 효과도 한계가 있다.

중국군과 비교해 지나칠 정도로 왜소해 보이는 군사력으로는 유사시 주권과 영토 수호는 물론 중국에 대한 기본적 저항도 힘들다.

이를 위해선 해군과 공군력 증강이 필수다. 필리핀군이 지금까진 국내 반란, 정치적 반대 세력 대응을 위해 지상 전력 증강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부턴 중국의 위협에 맞선 해양 안보와 영공 수호가 중시된다.

필리핀이 한국산 호위함과 FA-50 경공격기 등을 도입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최소한의 억제력은 확보했지만, 중국도 해·공군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억제력과 국내 재정적 여건을 고려하면, 적당한 가격에 우수한 성능을 발휘하는 무기 도입이 필요하다.

KF-21은 이같은 조건을 충족하는 무기로 꼽힌다. KF-21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미티어 중거리 공대공미사일을 4발 탑재한다.

유럽 MBDA가 개발한 미티어는 마하 4(음속 4배)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 200㎞ 밖의 적기를 격추한다.

미국산 AIM-120 미사일 등보다 2~3배 거리에서도 빠르게 공격할 수 있어 현존 최고의 공대공미사일로 평가된다. 중국 공군의 중거리 공대공미사일보다 동등하거나 앞서는 성능이다.

한국군은 지난해 5월 국산 능동전자주사(AESA) 레이더로 87㎞ 밖에 있는 무인기를 추적, 미티어를 쏴 무인기 옆을 1m 이내로 스쳐 지나치게 하는 방식으로 실사격 시험에 성공했다. AESA 레이더와 미티어와의 체계통합이 성공적으로 이뤄진 셈이다.

최대 500㎞ 떨어진 지상 표적을 파괴하는 장거리 타격력도 KF-21의 장점이다.

해외에 수출될 KF-21은 독일산 타우러스 장거리 공대지미사일 또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만들 국산 미사일 탑재가 가능하다.

FA-50에 장착된 미국산 AGM-65 공대지미사일 사거리가 27㎞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공격력이 대폭 향상되는 것이다.

적 전투기 레이더에 탐지될 확률을 낮추는 저피탐 기술도 일부 갖췄다.

경쟁 기종인 F-16, 그리펜은 4세대 전투기로서 스텔스 기능이 없지만 KF-21은 매립형 무장장착과 반사각 설계 등을 갖춰 레이더 탐지면적 저감 효과가 있다. J-20, J-35 5세대 스텔스기를 만든 중국과의 격차를 다소나마 좁힐 수 있다.

◆수주하려면 현지 사정 파악부터

현지 필리핀군 관련 소식통들에 따르면, KF-21에 대한 필리핀군의 시각은 긍정적이다.

지난해 10월 윤석열 대통령의 필리핀 방문을 전후로 필리핀군 내부에선 KF-21에 대한 이야기가 적지 않게 있었으며, 스웨덴 그리펜보다 성능이 월등하다는 점이 긍정적 요소로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웨덴 정부와 그리펜 제작사인 사브는 수년 전부터 그리펜을 필리핀에 판매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난 2023년엔 필리핀과 방위 물자 확보 협력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맺는 등 필리핀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도 지속했다.

지난해 9월 마닐라에서 열린 국제방산전시회 ‘ADAS 2024’에선 최신 기종인 그리펜E/F 실물 크기 모형을 전시, KF-21·FA-50 등을 홍보하던 KAI와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하지만 전시회 직후부터 지금까지 사브 측은 필리핀에선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산업계 소식통은 “필리핀 공군이 그리펜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펜은 가격 대비 성능이 좋은 기종으로 알려져 있지만, 최신형은 AESA 레이더와 새로운 정밀유도무기 등을 탑재하면서 가격이 크게 상승했다. 공대공 무장과 엔진은 KF-21과 같고, 공대함 무장만 KF-21보다 우위에 있다.

F-16은 미국 정부가 이미 수출을 승인한 바 있다. 지난 2021년 6월 미 국방부 안보협력국(DSCA)은 F-16 블록 70/72 12대와 공대공·공대함 미사일 판매를 승인했다. 예상 비용은 24억3000만 달러에 달했다.

미국의 군사원조가 제공되고 있고, 연합훈련도 진행하는 필리핀으로선 F-16을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인도 시기가 문제다. 록히드마틴은 F-35 생산에 집중하고 있어서 F-16 생산능력 확장에는 소극적이다.

그럼에도 F-16 신규 주문은 2018년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모로코, 슬로바키아, 대만, 요르단 등에서 F-16을 주문했다. 코로나19에 따른 생산차질로 일정은 더욱 늘어났다.

올해 신규 주문을 해도 2020년대 안에 주문한 수량을 모두 인도받을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폴란드가 FA-50을 구입한 것도 이같은 문제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중고 기체도 구하기가 쉽지 않다. 서유럽에 있던 중고 F-16은 루마니아, 우크라이나, 아르헨티나 등으로 이전됐다.

경쟁 기종들이 주춤하는 현 상황은 필리핀에서 KF-21 캠페인을 시작하는데 적절한 시점이라는 평가다. 하지만 필리핀군의 조달 체계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협상조차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필리핀에서 글로벌 방산그룹들을 컨설팅하는 업체인 수에즈아시아 최정우 대표는 “미국의 강력한 지원이 시작된 후 많은 미국 방산업체들이 (필리핀을) 방문해 군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다”면서도 “필리핀군의 폐쇄성으로 인해 현지 전문가 없이는 그들도 쉽게 협상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 대표는 “한국은 방위사업청이 중심이 되어 기술개발 등을 관리해 효율적으로 움직이지만 필리핀을 그렇지 못하다. 내부 절차가 많이 복잡하다”며 “먼저 현지 전문가를 통해 필리핀군 내부 사정을 정확히 파악하고 접근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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