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서도, 퇴근길에서도. 온·오프라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다양한 이슈를 풀어드립니다. 사실 전달을 넘어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인 의미도 함께 담아냅니다. 세상의 모든 이슈, 풀어주리! <편집자주>

“500원일 때나 사지, 하나에 2000원이라서 내려놨어요.”
직장인 A씨(34)는 팀원들에게 돌릴 빼빼로를 고르다 계산대 앞에서 결국 발길을 돌렸다. 어린 시절 500원이면 살 수 있었던 과자가 이제는 2000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11월이 되면 편의점과 마트 진열대는 여전히 각양각색의 막대과자로 채워진다. 가격은 네 배가 됐고 상술 논란도 수차례 있었지만 ‘빼빼로데이’는 매년 돌아온다. 30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은 이유가 있다.

◇ “날씬해지자” 유행이 만든 빼빼로데이
1993년 부산의 한 여고에서 ‘독특한’ 풍습이 시작됐다. 학생들이 친구에게 막대 모양 과자 ‘빼빼로’를 선물하며 “일(一)자처럼 날씬해지자”고 말한 것이다. 이 작은 덕담은 경남 전역으로 퍼졌고, 11월 11일마다 빼빼로 판매량이 급증했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이후 이 현상이 오늘날 ‘빼빼로데이’로 굳어졌다.
빼빼로데이가 처음 언론에 등장한 것은 1996년이다. 연합뉴스는 그해 11월 “1이 네 번 겹친 11월 11일, 청소년들이 친구·연인·선후배에게 날씬해지라는 기원을 담아 빼빼로 등 길고 가는 물건을 선물한다”고 전했다.
이후 빼빼로데이는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와 함께 ‘3대 기념일’로 자리 잡으며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거나 고백하는 날로 확산됐다.
2011년에는 ‘밀레니엄 빼빼로데이’ 해프닝이 발생하며 상술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당시 대구의 초등학교 215곳 중 절반이 휴교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상업주의에 현혹되는 아이들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소문이 돌았다. 실제론 단순한 재량휴업일이었지만, 제조사가 ‘1000년에 한 번 오는 날’이라며 포장한 마케팅이 오해를 키운 셈이다.
◇ 연 매출 2000억…‘K-과자’로 세계로
현재 빼빼로는 K과자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1~8월 한국 과자류 수출액은 약 4억9000만 달러(한화 약 6600억 원)로 전년 대비 15% 넘게 증가했다. K콘텐츠와 함께 식품 한류의 주력 품목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누적 매출 2조원을 돌파한 빼빼로 역시 이 흐름을 이끄는 대표 브랜드다. 롯데웰푸드는 매년 11월을 앞두고 두 달 전부터 생산라인을 확대 가동하며 전사적 차원의 시즌 준비에 나선다. 업계는 연 매출의 상당 부분이 11월 11일 전후에 집중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 시장 공략도 본격화했다. 빼빼로는 미국 코스트코, 캐나다, 영국 테스코 등 주요 유통망에 입점했으며,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는 매년 ‘빼빼로데이’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2023년에는 K팝 그룹 스트레이 키즈를 글로벌 앰배서더로 선정해 K콘텐츠 마케팅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


◇ 2025년, “이젠 과자보다 굿즈가 팔린다”
올해 빼빼로데이는 전통 제조사뿐 아니라 유통·캐릭터·편의점까지 가세해 콘텐츠 마케팅의 장으로 진화했다.
롯데웰푸드는 스트레이키즈 한정판 빼빼로를 출시하고 버추얼 아이돌 ‘이세계아이돌’, 어린이 인기 캐릭터 ‘캐치! 티니핑’과 협업했다. 온라인몰에서는 3만원 이상 구매 시 스트레이키즈 굿즈를 선착순 증정 중이다. 캐릭터 브랜드 ‘마루는강쥐’까지 합류하며 “빼빼로보다 굿즈가 더 탐난다”는 후기글이 이어지고 있다.
경쟁사 해태제과는 11월 11일을 ‘스틱데이’로 명명해 맞불을 놨다. ‘포키 하트 퍼즐 세트’, ‘아바타스타 슈 에디션’, 배스킨라빈스 협업 ‘초코포키 아이스크림’ 등 체험형 마케팅을 강화했다.
편의점 업계도 CU(포켓몬 메타몽), GS25(버터베어), 세븐일레븐(산리오·스트레이키즈) 등 각자 캐릭터 IP를 활용한 한정 세트를 내놨다.
과거 ‘1+1’ 중심의 판촉이 이제는 ‘참여형 경험 마케팅’으로 옮겨간 셈이다.
◇ 상술에서 가치 소비로…기념일의 진화
한때 “500원짜리 과자에 속는 날”로 불리던 빼빼로데이는 이제 관계를 확인하고 취향을 표현하는 날로 자리 잡았다. 롯데멤버스 조사에 따르면 올해 ‘막대과자 데이를 챙긴다’는 응답은 45.1%로, 지난해보다 17.1%포인트 증가했다.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는 ‘기념일을 챙기는 편이라서’, ‘관계 개선을 위해서’를 이유로 꼽았다.
기념일은 여전히 상업적이지만, 소비자는 단순한 ‘구매’보다 ‘의미’를 산다. 1990년대 “날씬해지자”는 덕담으로 시작된 유행이, 30년 만에 ‘가치 소비의 상징’으로 진화한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