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과 총리의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상황에서, 통상적으로 연말에 이뤄지던 공직의 승진 및 전보 조치가 동결돼 있다. 이는 대통령이 인사권을 가진 직위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인사권은 그 범위와 영향력 면에서 제왕 이상이라 볼 수 있다.
조선시대의 왕은 정승과 판서를 포함한 모든 관직에 대해 임명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권한은 왕의 독단적 결정보다 제도적 견제 속에서 이뤄졌다.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등의 기관에서 후보자의 자격과 도덕성을 검토하며 의견을 들어야 했다. 이는 정도전이 개국 과정에서 왕권을 견제하고 신권과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한 제도적 장치였다. 실질적으로는 사색당파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태종, 세종, 세조, 성종 등 강력한 군주 몇 명을 제외하고는 왕권이 강하지 못했다. 사극에서 자주 묘사되는 수렴청정이나 외척의 득세는 이를 잘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매우 폭넓은 공직의 인사권을 행사하고 있다. 재정권과 함께 핵심 권한이다. 국가 공무원 중 일반직은 물론, 경찰과 검찰, 군인의 고위급뿐만 아니라 중급 수준까지 포함된다. 행정기관 소속은 5급 이상 특히 고위공무원단, 검찰은 모든 검사와 임명과 보직을, 경찰은 총경(4급) 이상을, 군인은 장교 이상에 위임으로 장성급 인사권을 대통령이 행사한다. 광역 시·도의 부단체장과 기획조정실장도 대통령이 임명한다. 공공기관은 기관장, 감사, 상임이사까지 대통령이 임명권을 행사하며, 이러한 기관의 수는 수백개에 달한다. 행정안전부에 임명장을 서예로 작성하는 전담 직원을 채용하고 쉼 없이 붓을 잡아야 할 정도다. 반면, 공립 학교의 교원과 직원의 인사권은 시도 교육감에게 있다. 최소한 교감이나 교장 승진을 위에, 희망하는 학교로 옮기기 위해 대통령에게 줄 설 이유가 없는 이유다.
승진후보 3배수에만 들어가면 로비에 의해 승진자를 바꿀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직위의 인사는 줄세우기라는 부작용이 따른다. 검증에도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그걸 기다리는 동안 나머지 인사가 대기상태로 지체된다. 직급에 따라 순서대로 인사가 이루어지는 특성상 줄줄이 늦어지는 것이다. 1년에 한 두 번씩 인사를 하다보니 두 세달 이상은 인사 로비, 대기 상태로 인사 때문에 업무에 공백까지 초래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총리의 제청권을 보장하고, 장관에게 부처 인사권을 위임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이를 지킨 대통령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인사권을 폭넓게 행사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존 조직과 인력은 관료주의와 매너리즘에 빠져있고, 새로운 혁신이나 규제 개혁에 소극적이다. 여론이나 민심에 둔감하며, 조선시대 사색당파처럼 얽힌 내부 인맥에 따라 인사가 이뤄지는 폐단도 있다. 이와 더불어 이전 정권과 차별화를 꾀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작용한다.
대통령 권한을 줄이려고 개헌을 주장하지만, 대통령의 인사권은 법률과 위임 법령에 있다. 국가공무원법, 검찰청법, 경찰공무원법, 군인사법 등을 개정하면 개헌 없이 가능하다. 민주당이 다수당으로 법률 개정이 단독으로 가능한 만큼 지금이 대통령의 인사권을 축소할 수 있는 적기다. 대통령의 인사권 축소는 광장에서 거친 구호보다 국민들에게 획기적인 개혁으로 비칠 수 있다.
임성은 서경대 공공인재학부 교수·前 서울기술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