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하이닉스가 1분기 실적으로 시장과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기분 좋은 놀라움이다. 관세와 환율 압박, 미-중 분쟁 심화 같은 온통 부정적인 신호만 가득한 이때 '다 그렇진 않아'를 실적으로 보여준 것이다.
과거에도 우리나라 수출과 경기는 '들고남'이 있었다. 반도체 수요와 단가가 극도로 악화돼 수출이 부진해지면 자동차가 뒤를 받치곤 했다. 또 자동차 마저 위기에 빠지면 스마트폰이나 석유화학제품 수출이 빈공간을 메울 때도 많았다. 이처럼 수출 경쟁력 품목 다변화는 우리 산업·경제의 항진성을 높여줬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거의 모든 산업과 품목이 미국 관세 공격 앞에 움츠려 섰다. 중국으로의 수출로 만회하는 것도 중국 자체의 미국 수출 단절, 경기후퇴로 인한 수요 위축으로 쉽지 않다. 사면초가, 풍전등화란 단어가 이 시절 만큼 절절한 때도 없었다.
백악관의 반도체 품목 관세 저울질이 한창인 이때 SK하이닉스 마저 없었다면, 지난 30년 가까이 반도체 강국을 자신했던 우리는 스스로 겸연쩍을 뻔했다. 미국 행정부 전략 조치로 인해 조선업종만 높은 관세 파고를 넘는다 하더라도 우리 전체 산업 자신감은 거의 허물어 질수도 있었다.
다행히, SK하이닉스는 광대역메모리(HBM) 기술 개발과 양산에 집중해 지금이 인공지능(AI) 물결에 올라탔다. 이 회사라고 과거 메모리 증산과 감산까지 오가며 글로벌 사이클을 탈때, 왜 바닥이 없었겠나. 그 위기와 파고를 견뎌내고, 버텼기 때문에 지금의 HBM 초호황기를 맨 앞에서 누리고 있는 것이다.
SK하이닉스 호실적은 어쩌면 막다른 길처럼 보이는 난관에 빠진 다른 우리 산업에도 긍정적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일로 평가된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정부는 대선 직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의 대규모 협상단 꾸려 미국에 보냈다. HBM 수출은 미국 자국의 AI산업 특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품목이다. 협상 지렛대로 잘 만 활용한다면, 생각보다 큰 효과를 끌어올 수 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이 -0.2%로 뒷걸음질 친 시기에 SK하이닉스 이익은 전년동기 대비 2.5배나 커졌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SK하이닉스 처럼 어려울 때 일수록 그것을 극복하려는 몇배, 몇십배의 극복 저력을 갖고 있다. 더 좋은 기회는 반드시 찾아오고 열린다는 희망을 더 많은 우리기업들이 1분기 SK하이닉스 실적에서 읽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