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오비추어리

2024-10-21

“오호통재라, 아깝고 불쌍하다. 너를 얻어 손 가운데 지닌 지 우금 이십칠 년이라. 어이 인정이 그렇지 아니하리요.” 1832년 ‘유씨 부인’이 쓴 ‘조침문(弔針文)’의 일부이다. 오랫동안 쓴 바늘이 부러지자 안타까움을 담은 글이다. 바늘 하나를 이렇게 아꼈을진대 그 바늘로 고쳐입은 옷들은 어땠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경향신문이 창간 78주년을 맞아 ‘쓰레기 오비추어리’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우리가 옷을 얼마나 많이 사고 버리는지 주목해 대량 생산·소비 시대를 성찰한 보도이다. 누구나 짐작은 했지만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현장 르포와 수치로 드러냈다. 해외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통한 초저가 물품 구매가 쉬워지면서 더 빨라진 의류 생산·소비·폐기 속도는 물자 이동 규모를 키우고 탄소 배출을 늘린다. 일단 많이 산 뒤 단기간에 쓰레기로 내놓는 소비 양태가 많아졌다. 일부 옷들은 가격표가 붙은 채 버려진다. 기업들은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재고를 몰래 소각한다. 엄청난 양이 소각되지만 정확한 수치는 모른다. 기업들이 극비를 유지하는 데다, 환경부는 이를 확인할 제도조차 없다.

국책 연구기관에 한 소비자의 옷 구매·처분 내역을 주고 전과정평가(LCA)를 의뢰한 결과 추정된 탄소 배출량은 의미심장하다. 올 1~4월 전자상거래로 구매한 이 소비자가 의류 소비·운송·폐기로 배출한 탄소는 비행기로 서울·부산을 7번 왕복한 탄소 발생치에 맞먹는다. 동일인의 2년 전 1~4월 배출량보다 3.5배 많았다. 소비자가 의류 사용 단계에 배출한 탄소는 17.8%에 불과하고, 80% 이상은 생산·운송·폐기 중에 발생했다. 과거엔 절반 이상이 사용 단계에서 나왔지만, 소비 주기가 짧아지며 기업 책임이 더 높아진 점이 수치로 확인된 것이다. 대량소비에 무감각해진 소비자도 책임을 느껴야 하지만 더 많은 책임을 기업에 물어야 하고, 이를 규제할 정부 책임도 커졌다. 보도 이후 국회에 생산자 책임 재활용 품목에 의류를 포함하는 법안 등이 제안됐다.

쓰레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매주 재활용 쓰레기를 분류해본 사람은 안다. 하지만 내 눈앞에서 금방 치워지기에 양심의 가책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쓰레기 문제는 계속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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