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부터 폐기까지…동시다발 전환 시작해야

2024-10-20

경향신문 창간 78주년 기획

플라스틱 생산량, 2060년 12억t 예상

김태선 의원 ‘재고소각 금지’ 관련법 발의

11월, 부산서 국제 플라스틱협약 회의

탄소발자국 감축은 제품의 생산과 소비, 폐기 중 한 부분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달성할 수 없다. 재활용 적합 제품 생산, 과잉 생산 제어, ‘딜리버-스루’(배송 즉시 버린다) 소비·폐기 지양, 재활용 확대 등 물건의 전 생애에 개입된 모든 부문에서 동시다발적 전환이 필요하다.

인류가 만들고 쓰고 버리는 공산품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2년 발표한 ‘글로벌 플라스틱 전망’을 보면 전 세계 플라스틱 생산량은 1950년 200만t에서 2019년 4억6000만t으로 69년 사이 230배 증가했다. 생산부터 폐기까지 여러 나라가 개입하며 이동거리도 길어졌다.

폐기물 억제 제도는 대량 생산·소비·폐기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2019년 기준 플라스틱 폐기물 재활용률은 9%다. 생산된 물품 대부분이 폐기됐다는 뜻이다. 69%는 매립 혹은 소각됐고, 나머지는 폐기물 규제 테두리에서 벗어나 자연환경에 노출된 채 버려졌다.

추가 감축 정책이 도입되지 않으면 플라스틱 생산량은 2060년 12억t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기업 등 생산자 책임을 강화하는 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의 제도적 고민은 국제적 움직임에 뒤처졌다. 유럽은 대표적 플라스틱 쓰레기인 의류 폐기물 문제에서 재고 폐기를 금지하는 법안 시행을 앞뒀다. 과잉 생산을 막는 게 근본 목표다. 한국에선 암암리에 이뤄지는 의류 재고 소각과 정부의 허술한 관리를 다룬 경향신문 보도(2024년 10월14일자)를 계기로 3개의 관련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공론화와 법제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과잉 생산’…쓰레기의 주범

유럽연합은 지난 5월 EU집행위원회에서 ‘지속 가능한 제품을 위한 에코디자인 규정(ESPR)’을 최종 승인했다. 판매되지 않은 직물 및 신발의 폐기를 금지하고, 과잉 생산을 막기 위해 기업의 재고량을 의무 보고하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미판매 상품 폐기에 대한 보고 의무는 2025년, 의류 및 신발의 경우 2026년부터 발효된다.

의류는 플라스틱 쓰레기 중 최근 국제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품목이다. 패스트패션으로 빠른 소비와 폐기가 일반적인 흐름이 됐고, 일부 기업이 브랜드 이름값을 유지하려고 멀쩡한 재고를 비밀 소각하는 것이 알려져 지탄받았기 때문이다. 유럽환경청이 2021년 발표한 보고서 ‘섬유 속 플라스틱’을 보면 섬유는 전 세계 플라스틱 폐기물의 약 13%를 차지한다.

한국에선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17일 관련 법안 3개를 발의했다.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은 재고 의류를 사업장 재고폐기물로 정의하고 발생량을 의무적으로 신고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가 실태를 명확히 파악해 관리하도록 하는 안이다. 신고된 물량은 폐기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순환경제사회전환촉진법’상 ‘순환이용 촉진 대상 품목’에 추가해 재활용을 유도하도록 이 법 개정안도 함께 발의했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는 생산자에게 재활용 의무를 지우는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품목에 의류를 포함하는 안을 담았다.

김 의원은 “기업이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를 악용해 은밀하게 새 옷을 불태우는데 정부는 수수방관하며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있다”면서 “기업의 활동에서 환경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의류 재고 발생량 신고를 의무화하고 EPR에 포함시키는 폐기물관리법·자원절약과재활용촉진법 개정안이 발의된 건 처음이다. 의류 재고 폐기를 금지하는 ‘순환경제사회전환촉진법’은 지난 21대 국회에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유사한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폐기됐다.

폐기물 관리에 초점을 둔다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다. 개별 입법을 통해 의류 생산부터 폐기까지 더 촘촘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이다. 김성배 국민대 법학부 교수는 “의류 재고를 ‘폐기물’로 인정한다고 해도, 기업이 폐기물이 아니라며 외국에 덤핑으로 팔아버리면 방법이 없다”면서 “순환경제사회전환촉진법에서는 폐기물을 태워 소각열을 사용하는 것도 순환으로 보기 때문에 그냥 태워버리고 말 것이라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의류를 시작으로 다른 공산품 폐기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의류 쓰레기 문제를 다뤄온 사단법인 다시입다연구소의 입법운동을 자문하는 김보미 변호사는 “재고 폐기 금지의 궁극적인 목적은 적정량을 생산해 재고를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라며 “최근엔 의류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모든 과정을 다루는 내용의 개별 입법을 추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패션 제품을 시작으로 다른 제조물 재고에 대한 폐기 금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책임 없는 폐기, 쓰레기의 대이동

대량 생산·소비·폐기 문제는 개발도상국의 노동 착취 문제와 연관돼 있다. 저임금과 아동 노동착취 등으로 만들어진 초저가 물품은 대량 소비와 손쉬운 폐기를 유발한다. 이렇게 발생한 쓰레기는 다시 개발도상국에 넘겨져 폐기 단계에서도 저임금 노동으로 이어진다.

전 세계에서 발생한 중고 의류 중 실을 뽑아내 재활용이 가능한 스웨터 종류는 상당수 인도로 수출된다. 인도가 이 같은 재활용 시장의 중심지가 된 것은 저임금 노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경기 파주시에서 중고 의류 수출업체를 운영하는 송연희 대표는 인도 재활용 공장을 방문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오염 규제가 없다보니 재활용 과정에서 끈적거리는 색소 섞인 물들이 흘러나오고, 소각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공기도 안 좋았다”고 말했다.

의류 외 전자기기 등 공산품도 과잉 생산과 국제적 폐기물 떠넘기기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전자 물품은 폐기 과정에서 유해 물질이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문제가 심각하다. 과잉 생산돼 ‘행사 응모권’으로 활용된 뒤 버려지는 K팝 앨범들도 단적인 예다. CD의 환경오염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한 ‘키트앨범’에 들어 있는 리튬전지 등 전기·전자 물질은 추출해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오염물질이 발생한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전과정평가팀장 최요한 박사는 “공산품의 전기·전자 물품에 포함된 폐기물은 재활용 작업을 할 때 유해 물질이 다수 발생한다”며 “이런 것들은 국내에서 자체 처리하지 않고 필리핀 쪽에 중고로 수출돼 처리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 비영리 단체 오픈수리국제연맹(OAR)은 ‘수리할 권리’를 주장한다. 스마트폰 등 다양한 기술이 집약된 상품은 부분이 망가져도 전체를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물품 수리 관련 내용은 대부분 업체 기밀이라 소비자가 직접 수리하기 어렵고, 이는 쉬운 폐기로 이어진다. OAR은 기업이 수리와 수선이 쉽도록 생산 단계부터 책임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유럽의회가 승인한 ESPR의 핵심 내용 중 하나인 ‘디지털 제품 여권(DPP)’과 궤를 같이한다. DPP에는 제품의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 과정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담긴다. 생산자는 제품의 재활용 및 수리 가능성 및 방법, 재활용 원료 비중, 탄소발자국 등을 소비자에게 제공해야 한다. 향후 해당 규정을 지키지 못한 기업은 시장 진입이 제한될 것으로 예상돼 국내 산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는 2027년부터 일부 물품 등에서 시범 적용될 예정이지만, 국내의 대응책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내년 1월부터 생산, 유통, 소비 과정의 순환이용을 촉진하는 법(순환경제사회촉진법 개정안)이 시행되지만, 시민사회는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는 “수리 용이성이 낮은 기업에는 세금을 많이 부과하거나 재활용 분담금, 폐기물 부담금 할증을 하는 등 (기업 참여를 독려할) 상벌 체계가 필요하다”며 “제도가 변화를 견인해야 소비자들이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쓰레기가 지구를 뒤덮는 날이 머지않은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회의가 다음달 25일부터 12월1일까지 부산에서 열린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주도하는 국제 플라스틱협약 협상을 위한 제5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5)다. 플라스틱으로 인한 지구오염을 제어할 수 있는 주요한 회의로 이번이 마지막 회차다.

환경단체 등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공감하는 이들은 협약에서 플라스틱의 생산 자체를 줄이는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산·소비·폐기의 속도를 늦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산업계의 자성과 노동환경의 개선, 소비자의 생활습관 변화까지 요구한다.

변화는 선택이 아니다. 지난 8월 헌법재판소는 탄소중립기본법에 대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이번 결정은 국민 주요 기본권이 ‘환경권’임을 확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후위기와 환경에 대한 논의는 이제 한국 사회의 중심에서 시급히 해결돼야 하는 문제다. <시리즈 끝>

‘쓰레기 오비추어리’ 전시회, 6일간 270여명 방문

경향신문이 창간 78주년을 맞아 동명의 시리즈 기획 기사와 함께 선보인 ‘쓰레기 오비추어리’ 전시회가 지난 12일 종료됐다.

전시회는 창간기획팀이 취재 과정에서 얻은 폐기물들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꾸렸다. 한국 소비자가 중국 상거래사이트 등에서 구매한 뒤 버린 옷들의 전 생애가 오비추어리(부고 기사) 작품 형식으로 수출용 옷더미 ‘베일’과 함께 전시실을 채웠다. 버려진 옷을 잘라 붙인 ‘소각장’, 미니 앨범 부품으로 만든 ‘0.04%’ 같은 작품도 취재 중 습득한 물품들로 만들었다.

7일부터 6일간 270여명의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지난 10일 아침 문을 열기도 전에 두 명의 여성이 전시장을 찾았다. 전남 고흥에서 온 이들은 “지역에서 쓰레기 문제를 생각하는 소모임 ‘쓰레기 따라 룰루랄라’로 활동 중인데 전시 기사를 보고 우리의 고민과 맞닿아 있는 것 같아 와봤다”고 말했다. 한 30대 여성은 “환경 문제에 관심은 있었지만 직접 문제를 느껴볼 곳이 없어 아쉬웠다”며 “소식을 듣고 시간을 내서 왔다”고 말했다.

중견 도예가 박미화 작가는 “저널리즘이 해야 하는 역할을 하는 기사와 전시”라면서 “다음에 비슷한 주제로 전시를 준비하거나 작가들의 도움이 필요한 기획을 한다면 돕겠다”고 말했다. 함께 방문한 서혜경 작가는 방명록에 “에너지를 얻어 간다”고 남겼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서울대에서는 무대미술, 인류세와 기후위기 대응 등과 관련한 수업에서 이 전시가 거론되면서 학생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녹색연합, 환경운동연합, 녹색전환연구소, 자원순환연구소, 다시입다연구소, 기후솔루션, 기후미디어허브, 아름다운가게 등 환경단체들이 전시장을 방문해 쓰레기 문제를 두고 논의하기도 했다. 일부 단체는 협동 전시와 후속 보도를 제안했다. 정치권에서는 위성곤, 박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품은 24~26일 열리는 정동문화축제에서도 볼 수 있다. 30일 환경운동연합 후원의밤 행사에서도 전시된다.

■전시 및 인터렉티브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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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팀

유정인(정치부) 고희진(전국사회부) 이홍근(정책사회부) 최혜린(국제부) 정지윤·한수빈(사진부) 박채움(데이터저널리즘팀 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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