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겐 고가의 물건을 살 때마다 되뇌는 문장이 있다. ‘이 물건은 하루에 몇 시간씩 쓰는 물건이기 때문에 질러도(구매해도) 괜찮다.’ 이 주문의 시작은 오래전, 모 방송에서 어느 방송인이 겪은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그가 5000만 원 상당의 침대 매트리스 앞에서 구매를 고민하자 매장 직원이 다가와 “차는 얼마짜리 타세요? 차는 하루 한두 시간, 그런데 잠은 몇 시간 주무세요?”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던 출연진 모두가 감탄했고, 방송을 보던 나 역시 수중에 5만 원이 다였지만, 해당 침대 매트리스를 검색하고 있었다. 이후 고가의 물품을 구매할 때마다 그 직원의 말을 주문처럼 읊게 되었다.
아마추어 글쟁이인 필자는 하나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제법 오랜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야 한다. 열 시간이 넘게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눈, 손, 목, 어깨, 허리 등이 순서대로 고장난다. 이때부터 노트북을 구매하면 주는 무료 마우스에서 손목 안정을 위한 버티컬 마우스로, 기계식 키보드로, 손목 받침대 등 건강에 맞춰 책상 위 물건들을 교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건강을 위해 교체한 무색무취의 장비들에 나의 취향이 섞이게 되고, 점점 책상은 누가 보아도 ‘내’가 샀을 법한 것들로 채워지게 되었다.
그렇게 집에서 시작된 장비 교체는 사무실 책상 꾸미기로 넘어가게 되었다. 교체된 장비들이 눈에 띌수록 주변에선 ‘너무 비싼 것 아니냐?’ ‘굳이?’ ‘운동이나 해라.’ 등 나의 소비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곤 했다.
이렇게 자신의 스타일에 맞춰 책상을 꾸미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이 ‘데스크테리어(deskterior)족’이다. 데스크테리어(deskterior)란 책상을 뜻하는 영어 데스크(Desk)와 인테리어(Interior)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책상을 꾸민다는 뜻이다. 회색빛 회사 사무실 책상을 꾸며 자기 만족감을 얻는 행위에서 비롯되었는데, 현재 다양한 공간의 책상을 꾸미는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
과거 드라마나 영화에서 데스크테리어족은 튀는 성향, 소위 ‘민폐’를 담당하는 캐릭터로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강렬한 분홍색으로 도배된 책상이나, 특정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사무실 책상을 꾸민 인물들이다. ‘회사 책상을 꾸미다=자기애가 강하다.’로 표현할 수 있는데, 과거 회사의 규칙에 맞춰 ‘희생’하는 것이 회사원의 사명이었고 데스크테리어족은 이를 반하는 부정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요즘 매체는 이런 캐릭터를 다루는 것을 터부시하게 되었는데 이는 회사에 종속되어 있지만 ‘자기 만족감’을 우선으로 하는 세태의 변화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회사 분위기는 코로나19의 영향도 있었다. 재택근무가 시행되고 집이 회사가 되자 너도나도 책상, 의자, 스탠드를 업무에 최적화된 공간으로 조금씩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19가 종식되자 재택근무를 하던 이들이 회사에 돌아오게 되었고, 일렬종대로 맞추어진 사무실 속 자신의 자리를 ‘나만의 자리’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실제 취업 전문 사이트 잡코리아가 직장인 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여성 직장인 75.2%가 사무실 책상을 꾸미는 일에 관심이 있으며, 그중 44%는 자신을 데스크테리어족이라고 생각한다 응답했다. 데스크테리어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 중 대다수가 ‘책상을 꾸미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심리적 위안을 받고 있어서’라고 답했다. 또한, 잡코리아의 설문조사에서 ‘향후 데스크테리어족이 증가할 것 같냐.’라는 질문에 86.4%가 증가할 것이라고 답했다. 설문 결과와 같이 사무실 책상 꾸미기는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닌 오롯이 ‘나’만을 위한 일이다.
여기서 나 역시 끊임없이 들었던, 자신도 자문했던, 질문 하나가 훅 들어온다. “꼭 필요한 건 아니네?” 맞다. 근로 기준에 정해진 사항도 아닐뿐더러, 통계상 능률이 입증된 점도 아니므로 그저 ‘사치’의 한 카테고리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소비를 위한 합리화라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하루 반 이상을 머무는 어떤 공간에 오롯이 나만을 위한 1cm도 허용되지 않는다면, 그곳에 있는 시간이 과연 행복할까? 오늘도 하루 반을 회사라는 공간에서 보냈을 당신이 어디든 자신만을 위한 공간이 있길, 그리고 자신을 지켜가며 고군분투했길 응원한다.
조은진 청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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