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뉴스핌] 김용락 기자= 한국시단의 중견 여성시인 김시림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나팔고둥 좌표'(상상인)을 출간했다. 시인은 이 세상의 작고 가녀린 것들에 손을 내밀며 따뜻한 시선과 애정어린 섬세한 감각의 언어로 독자들을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이 시집은 병원, 호수, 산사, 무너진 집, 수몰된 마을 같은 공간들을 무대로 삼아, 삶과 죽음, 기억과 소멸, 자연과 인간이라는 무거운 주제들을 절제된 시선으로 풀어낸다. 그러나 이 절제는 냉정한 관조가 아니라, 오히려 애틋한 애도와 깊은 공감에서 비롯된 미학이라 할 수있다.
표제작 '나팔고둥 좌표'는 병원 로비의 수족관과 병실의 인간 존재를 겹쳐놓으며, 고요하고 투명한 시선으로 죽음을 앞둔 존재의 여정을 그린다. 병상에 누운 이는 더 이상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지만, 시인은 "몰래몰래 눈에 보이지 않게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일까"라고 질문하며 그 움직임에 좌표를 찍는다.
'이토록 가깝고도 먼'은 그리움과 존재의 경로를 시적으로 구현해 낸 수작이다. "160센티미터도 안 되는/이 작은 몸에도 네게로 가는 길이 있다"는 구절은 감정이 어떻게 실체적 진실로 나아가는 길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길은 가깝고도 멀며, 출렁이는 감정의 수평선처럼 아슬아슬하다. 결국, 시인은 인간의 마음 또한 하나의 '좌표계'로, 보이지 않는 세계와 연결된 통로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나팔고둥 좌표'는 전체적으로 조용한 목소리의 시집이다. 격한 감정의 변화나 선언적인 주장은 없다. 그러나 그 고요함 안에서 울리는 파장은 깊고 길다. 나팔고둥을 귀에 대면 들리는 바다의 파도 소리처럼, 이 시집도 삶의 작은 숨결과 잊힌 풍경들을 세심하게 길어 올려 우리에게 건네는 시집이다.
황정산 시인문학평론가는 "김시림의 시를 읽으면 우리는 모두 나팔고둥이나 개망초가 되고 애벌레나 강아지풀이 된다. 이 작은 것들이 세상을 이루고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겪고 있는 슬프고 고통스러운 삶도 결코, 허무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김시림의 시가 주는 치유의 힘이 바로 이런 것이다"고 평가했다.
김시림 시인은 "등단 34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을 세상에 내어 놓습니다. 늘 부끄럽습니다. 앞으로도 방민호 교수가 제 시에 대해 평가한 '자연과 생명들의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교감'의 가치를 이어가 독자들의 내면에 오래 남는 좋은 시를 쓰고 싶습니다"고 밝혔다.
김시림 시인은 전남 해남 출신으로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을 졸업하고 1991년 '한국문학예술'과 2019년 '불교문예'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그리움으로 자전거 타는 여자'를 비롯 5권이 있으며 심호이동주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계간 '불교문예'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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