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가 커제에 기적 같은 반집 역전승을 거두고 2024 삼성화재배 8강에 올랐다.
15일 경기도 고양시 삼성화재 글로벌 캠퍼스에서 열린 2024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16강전에서 신진서(24) 9단이 중국 강자 커제(27) 9단에 278수 만에 흑 반집승을 거두고 8강에 진출했다.
한국 바둑사에 길이 남을 역전승이었다. 4시간 가까이 일방적으로 밀렸던 바둑, 국후 인터뷰에서 신진서도 “거의 포기했었다”고 고백했던 바둑을 계가까지 끌고 가서 끝내 반집을 뒤집었다. 4시간 50분의 피 말리는 승부가 끝난 뒤 계가가 시작됐을 때. 신진서의 얼굴은 반집 남겼다는 확신으로 가득했지만,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승부가 끝난 뒤 신진서가 떠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사달은 우상귀 포석 진행에서 일어났다. 신진서에게서 실수가 나왔다. 포석 단계에선 거의 실수가 없는 신진서였는데, 뭐가 잘못됐을까. 당시 상황에 대해 신진서는 국후 인터뷰에서 “커제의 응수에 꼬였다”고 말했다. 검토실에서 경기를 지켜본 박정상 9단은 “신진서가 준비한 포석이 있었는데, 그걸 커제가 교묘하게 틀었다. 변칙수에 당황한 신진서가 초반 형세를 그르쳤다”고 설명했다.
그때부터 신진서는 내내 가시밭길을 걸었다. AI 블루 스폿만 귀신같이 찾아 둬 ‘신공지능’이라고 불리는 신진서이지만, 이날만큼은 아니었다. 신진서는 전혀 반격의 기회를 잡지 못했고, 초반에 굳어진 불리한 형세가 중반을 넘어 종반까지 이어졌다. 정말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다.
끝내기를 앞둔 상황, 신진서가 중앙에 집을 짓는 대신 상변 백을 치중했다. 커제에겐 선택권이 있었다. 안전하게 돌을 연결하거나, 흑을 끊어 중앙에서 패싸움을 하거나. 유리한 커제는 안전한 길을 택했다. 그 순간 승률 그래프가 요동쳤다. 10집도 넘게 차이 났던 바둑이 별안간 1집 차이로 좁혀졌다. 내내 잠잠했던 검토실에서도 함성이 터졌다. 한껏 여유를 부리던 커제도 고쳐 앉았다. 이내 손가락으로 제 머리카락을 꼬기 시작했다. 바둑이 나빠지면 나오는 커제의 습관이다.
역전승은 쉽지 않았다. 이후로 대국은 1시간 넘게 이어졌다. 두 선수 모두 초읽기에 몰리며 눈 빠지는 반집 승부를 펼쳤다. 반상의 공배까지 다 메우고 보니 흑이 7집 더 많았다. 흑 6집반 덤을 빼고 반집이 남았다. 국후 인터뷰에서 신진서는 “컨디션이 안 좋았고 한때 포기도 했던 바둑인데, 커제가 당황하는 것 같아 희망을 가졌다”고 말했다.
14, 15일 양일간 열린 16강전 결과, 한국은 신진서 혼자만 남았다. 한국 선수 5명이 16강에 진출했으나 모두 탈락했다. 8강에 진출한 나머지 7명은 모두 중국 선수다. 8강 대진 추첨 결과, 신진서의 8강 상대로 딩하오 9단이 정해졌다. 지난해 삼성화재배 우승자다. 신진서로서는 최악의 대진이다. 중국 차세대 선두주자 왕싱하오를 본선 1회전에서 꺾고, 삼성화재배 4관왕 커제마저 물리치고 올라갔더니 이번에는 디펜딩 챔피언이 기다리고 있다. 신진서와 딩하오의 8강전은 17일 열린다.
2024 삼성화재배는 중앙일보가 주최하고 삼성화재해상보험이 후원하고 한국기원이 주관한다. 각자 제한시간 2시간, 1분 초읽기 5회가 주어진다. 모든 대국은 정오에 시작한다. 상금은 우승 3억원, 준우승 1억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