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스쿨이 생기기 직전 법대에 다녔었다. 대학교에 입학해서 법을 처음 배울 때 개인의 감정과 부합하지 않는 법 조항들에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너무 과한 처벌이나 약한 처벌은 그 자체로 사람들의 행동에 동기 부여가 된다. 처벌 수위가 법 감정과 괴리를 보이는 경우는 이 때문이다.
예컨대 강도나 음주운전 하는 사람들을 왜 모두 사형시키지 않을까.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동을 강력하게 규제하면 범죄 예방 효과가 있을 것 같은데 법이 범죄 사실을 쉽게 용서해주는 건 아닐까. 하지만 법이 강도나 음주운전 범죄자를 사형시킬 정도로 강력하면, 살인자가 될지 말지 기로에 선 사람들이 살인을 택하게 된다. 강도로 사형을 당한다면 강도 행위를 본 목격자를 살려두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다. 이렇듯 법 조항 하나하나와 판례에는 사람들의 행동을 뒤바꾸는 강력한 힘이 담겨 있다.
3년 전 초등교사에서 학생들과 체험학습을 갔다. 도착한 테마파크 주차장에서 학생이 타고 온 버스에 치여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즐거워야 할 소풍이 비극으로 끝난 것이다. 운전했던 버스 기사는 이미 처벌이 확정됐고, 남은 건 담임교사와 보조교사로 온 사람들의 처벌 여부였다. 학교 활동 중 학생이 하늘나라에 갔다면 인솔자가 책임을 지는 게 맞다. 여기까지는 이견이 없다. 다만 교사의 책임을 어디까지 묻느냐에 따라 소풍이 구시대의 유물이 되는 건 판례를 본 사람들의 행동 변화에 따른 결과다.
1심 구형에서 금고 3년이 나온 상태라 교사들 사이에서는 선고 여부에 따라 앞으로 남은 교직 전체기간 동안 체험학습을 거부하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교사는 성범죄 벌금형 이상, 일반 범죄 금고형 이상이 나오면 당연 퇴직 대상이 된다. 사고가 불시에 찾아오는데 아이들의 추억을 위해 직업을 걸기에는 잃을 게 너무 많다는 주장이었다.
여러 사람의 탄원서 제출과 서명운동에도 불구하고 1심 선고는 담임교사의 주의 의무 위반 과실이 인정되어 금고 6월, 집행유예 2년이었다. 담임교사가 줄을 세우고 뒤를 한 번만 돌아봐서 줄에서 5명이 이탈했고, 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게 판결 요지였다. 동행했던 보조교사는 무죄를 받았다. 일반적인 피고인이었다면 감옥에 가지 않아 기뻐했겠지만, 이 판결이 유지된다면 담임교사 A씨는 직업을 잃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소풍을 가는 건 만용에 가깝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평소에 체험학습을 많이 가는 걸로 유명한 학교다. 고학년은 1년에 대여섯 번 이상 체험학습을 떠난다. 이런 학교에서도 1학기는 체험학습 전면 중단을 결정했다. 6월에 학교안전법과 학교 안전사고관리 지침이 개정된다면 바뀐 내용을 보고 2학기 체험학습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평소에 강경하게 체험학습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분들도 최근 판결이 충격으로 다가온 건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물론 법이 개정된다고 해도 정당한 교육활동 중 일어난 사고에 대해 교사가 면책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불안감은 남아있다. 지금까지 교사를 보호하는 법이 없어서 불신이 상당하다. 20명이 넘는 아이들을 교사가 하나하나 보호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사고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활동에서 사고를 없앨 수 없으니 체험학습 자체를 안 가는 게 교사에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된다. 체험학습이 구시대의 유물로 남게 될 때까지 얼마 남지 않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