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5건 중 1건은 제약바이오 기업으로 분석됐다. 불성실공시란 상장된 기업이 투자자에게 제공해야 하는 공시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제약바이오 업종은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138건 중 32건으로 23%의 비중을 차지했다.
제약바이오 기업의 불성실공시 지정 비율은 지난해 대비 2%포인트(p)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올해 불성실공시 지정 기업은 118개로, 이 중 의료기기 등을 포함한 제약바이오 업종에 속하는 기업은 총 25곳이었다. 올해 불성실공시 지정 기업 중 제약바이오 업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21.1%에 달한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불성실공시 지정 기업 121곳 중 제약바이오 기업이 23곳으로 19%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하면 더 나빠진 성적표다.
상반기 공시 변경을 사유로 불성실공시 기업에 지정된 케어젠을 시작으로 ▲파멥신(공시 번복) ▲더테크놀로지(공시 번복, 공시 변경) ▲피씨엘(공시 불이행 3건) ▲마이크로디지탈(공시 변경 2건) ▲올리패스(공시 변경) ▲셀루메드(공시 번복) ▲지더블유바이오텍(공시변경) ▲헬릭스미스 (공시 변경) ▲엔케이맥스(공시 번복 2건, 공시 불이행 4건) ▲제넨바이오(공시 변경) ▲에이프릴바이오(공시 불이행) ▲EDGC(공시 번복) ▲현대사료(공시 변경) 등 총 14곳이 불성실공시 지정 기업에 이름을 올렸다.
하반기 추가로 ▲큐러블(공시 불이행) ▲세종메디칼(공시 번복) ▲큐라클(공시 불이행, 공시 번복) ▲디엔에이링크(공시 변경) ▲전진바이오팜(공시 불이행, 공시 번복) ▲이노시스(공시 변경) ▲휴마시스(공시 변경) ▲현대약품(공시 불이행) ▲에스바이오메딕스(공시 불이행) ▲바이온(공시 번복) ▲큐라티스(공시 번복) 등 11곳이 불성실공시 기업에 지정됐고, ▲케어젠(공시 변경) ▲제넨바이오(공시 번복) ▲더테크놀로지(공시 번복) ▲지더블유바이텍(공시 번복, 공시 변경) 등 네 곳은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에도 추가로 지정됐다.
올해 제약바이오 기업의 불성실공시는 '공시 번복'이 14건으로 가장 많았다. 공시 번복은 기존에 공시한 내용을 취소하거나 부인하는 것을 뜻한다. 이어 공시를 신고기한까지 이행하지 않는 공시 불이행이 13건이었고, 이미 공시한 내용을 일정 비율 이상 변경하는 공시 변경이 12건이었다.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되면 과태료 부과 등 여러 제재와 불이익을 받게 된다. 1점 이상의 기본적인 벌점 부과를 시작으로 벌점의 누적 정도에 따라 단계적 제재가 가해지는데, 코스피은 누적 벌점 10점, 코스닥은 8점 이상이면 매매 거래가 1일간 정지된다. 또 최근 1년간 누적 벌점이 15점 이상인 경우 관리종목으로 지정된다.
관리종목 지정 후 1년 이내에 불성실공시 법인 지정 등으로 인한 누적 벌점이 15점 이상이 되거나 기업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에 대해 고의나 중과실로 공시의무를 위반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경우 상장적격성 실질심사에 들어간다. 이는 해당 기업이 주식 시장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다.
올해는 엔케이맥스가 누적 벌점 25점 이상으로 가장 많은 벌점을 받았고, 제넨바이오와 지더블유바이오텍이 각각 17점과 15점으로 15점 이상을 받은 기업에 속했다.
엔케이맥스는 지난 1월 30일 박상우 대표이사가 경영권 주식을 담보로 받은 고금리 사채에 대한 반대 매매로 지분이 12.94%(1072만6418주)에서 0.01%(5418주)로 급감하며, 대주주 공백 사태가 벌어졌다. 이후 최대주주가 변경됐으나 제때 공시하지 않는 등 여러 차례 감사보고서 제출 지연, 공시 번복과 불이행 등으로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받았다. 현재는 벌점 누적으로 상장적격성 실질 심사 대상이 돼 지난 3월 26일부터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엔케이맥스의 미국 관계사 엔케이젠 바이오텍 역시 지난달 나스닥 상장 유지 조건 중 하나인 30일 동안 최소 주가(1달러) 이상을 충족하지 못해 상장폐지 경고서한을 발부받았다.
제넨바이오는 6년째 계속되는 적자로 경영이 악화한 가운데 경영권 분쟁까지 발생하며 상장 폐지 위기까지 몰렸다.
제넨바이오는 지난해 7월 당시 최대주주인 제이와이씨를 대상으로 약 15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공시했다. 이는 새롭게 최대주주가 된 엠씨바이오에 맞서 지분 확보를 노린 유증이었는데, 지난 6월 제이와이씨가 유증을 철회하고 사임하기 전까지 1년 가까이 납입일정을 연기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 공시변경이 반복되며 벌점이 누적됐고, 공시위반제재금 3800만원을 미납해 가중벌점까지 받으며 불성실공시법인에 지정됐다. 제넨바이오 주식은 감사의견 거절을 이유로 지난 3월 22일부터 매매가 정지된 상태다.
지더블유바이오텍은 지난 9월 한 번에 벌점 8점을 부과받으며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사유가 발생했다. 지더블유바이텍은 2022년 7월 파마바이오테크글로벌과 75억원 상당의 코비힐 백신 원료 및 자재 공급 계약을 맺었다. 해당 계약은 지난 7월 18일 29억1100만원 공급으로 종료됐다. 그런데 이미 공급한 29억1100만원에 대한 대금을 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단일판매·공급계약금액 100분의 50 이상 변경을 사유로 불성실공시 법인에 지정되며 지난 9월부터 매매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벌점 8점을 넘긴 더테크놀로지, 마이크로디지탈 등은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사유로 한때 거래정지 조치를 받았다. 이외에 피씨엘은 관리종목 지정 우려로 인한 주권 매매 거래 조치를 받았다.
업계에서는 일부 제약바이오 기업은 의도적으로 감췄다기보다는 가이드라인 미숙지로 인해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받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공시불이행'을 사유로 불성실공시법인에 지정된 현대약품 사례가 그렇다. 현대약품은 회사의 개량신약 복합제 피임약 'HODO-2224' 개발을 위한 식약처(MFDS) 제3상 임상시험 계획 승인 신청 사실에 대한 지연공시로 인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을 받았다. 임상 3상의 경우 IND 신청부터 전 과정을 공시해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IND 신청은 기업에 호재로 작용해 숨길 이유가 없다.
해외 업무가 많은 업종 특성상 피치 못할 사유로 공시가 지연된 일도 있다.
에이프릴바이오는 지난 4월 개발 중인 자가염증질환 신약후보물질 'APB-R3' 제1상 임상시험 톱라인 데이터(Topline data) 수령 결과를 하루 늦게 공시하면서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당시 에이프릴바이오는 호주에 있는 임상시험수탁업체 CMAX에 결과를 수령한 시점이 늦은 밤 시간이라 미처 수령 사실을 알지 못하는 바람에 공시가 지연됐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에이프릴바이오는 두 달 뒤 미국 에보뮨에 APB-R3를 최대 4억7500만달러(약 657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 하는 데 성공하며 좋지 못한 결과를 숨기려 한 게 아니었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변정희 단국대학교 경영학부 강사는 "누적벌점 그리고 제재금이 부과될수록 상대적으로 기업가치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불성실공시에 대해서는 자발적 규제보다는 오히려 벌점 및 제재금 등의 강제적 제재를 통한 규제가 효과적일 수 있다"고 했다.
홍지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그동안 투자자 보호를 위해 불성실공시에 대한 제재 강화 방안이 지속적으로 마련되어 왔으나 공시위반 건수는 계속 증가했다"며 "규제 당국의 제재 뿐만 아니라 기업 내부에서 공시전문인력의 확보 및 공시담당자에 대한 실질적인 교육을 강화해 성실한 공시가 이루어지도록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