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자면 면역력 ‘비만’ 수준으로 떨어져
한국인, OECD국 중 수면시간 가장 짧아
최근 5년간 수면장애 환자 24% 증가
“수면에 대한 강박, 되레 불면증 악화”
35세 직장인 김모씨는 대인관계와 업무 스트레스로 인해 최근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늦은 퇴근으로 야식을 먹거나 불규칙한 수면 패턴까지 더해지면서 3개월째 수면 부족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김씨는 “수면 시간이 부족하고 겨우 잠에 들어도 숙면을 취하지 못한 지 오래됐다”며 “면역력이 너무 떨어져 감기를 계속 달고 사는데 예전처럼 먹어도 살이 잘 찌는 것 같아 큰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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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처럼 수면 부족이 지속되면 면역 체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제로 젊고 건강한 사람일지라도 하루만 잠을 잘 못 자면 면역 체계가 비만 환자 수준으로 악화될 수 있다는 최신 연구 결과가 나왔다.
3일 국제 면역학 저널(Journal of Immunology)에 따르면, 쿠웨이트 다스만 당뇨병 연구소는 수면 부족과 면역 세포 프로필의 변화를 분석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해 이 같은 결과를 밝혀냈다.
연구팀은 다양한 체질량지수(BMI)의 성인 참가자 237명의 수면 패턴을 분석하고, 혈액 샘플을 채취해 단핵구(單核球)의 수치 증감과 염증 관련 지표를 분석했다.
단핵구는 우리 몸의 면역을 담당하는 백혈구의 유형 중 하나로, 백혈병과 같은 악성 혈액 종양이나 만성적인 감염 증상이 있을 때 수치가 증가한다.
연구 결과 비만인 참가자들은 정상체중의 참가자들보다 수면의 질이 현저히 낮았고 단핵구의 수치는 높았다.
이후 연구팀은 정상체중인 5명을 추가 분석했다. 이들은 24시간 동안 잠을 자지 않았는데, 참가자들의 혈액에서 단핵구 및 염증 수치가 증가했다.
이는 비만 환자의 혈액에서 나타나는 패턴과 유사했다. 정상체중인 사람이 하룻밤이라도 잠을 못 자면 면역 체계가 비만인 사람과 비슷한 수준으로 약해진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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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부족이 면역력 저하를 초래해 염증 유발과 만성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은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미국 카네기멜런대학교 연구팀이 성인 153명을 대상으로 수면 패턴과 감기 바이러스 노출 후 감염률 간의 관계를 조사한 결과, 하루 수면 시간이 7시간 미만인 경우 8시간 이상 수면을 취했을 때보다 감기에 걸릴 확률이 3배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어떻게 자느냐에 따라 백신 효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주장도 저명 학술지인 란셋(The Lancet)을 통해 제기된 바 있다.
한국은 주요국 가운데 수면 시간이 가장 짧은 편에 속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21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51분으로 OECD 평균(8시간 27분)보다 약 30분 부족했다.
해당 통계에는 수면 시간이 긴 영·유아와 청소년이 포함돼 있어 성인의 실제 평균 수면 시간은 이보다 더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면 장애로 병원을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수면 장애 등을 호소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2019년 99만명에서 2023년 124만명으로 24% 증가했다. 수면장애로 인한 총 진료비도 2019년 2075억원에서 2023년 3227억원으로 55%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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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장애의 원인으로는 스마트폰 사용 증가와 스트레스 및 불안·우울증, 불규칙한 생활 습관 등 여러 요소가 작용하지만,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에서 코르티솔 등 다양한 호르몬이 분비되는데, 이로 인해 불면증이 유발된다. 잠을 못 자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그 스트레스가 다시 불면증을 일으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양질의 수면을 취하기 위해 일정 시간에 잠에 들고 일어나는 등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자기 전 스마트폰 사용을 자제할 것을 강조했다.
또 침실 환경을 어둡고 조용하게 유지하며, 필요할 경우 커튼이나 안대, 귀마개를 활용하는 등 수면 위생을 지키는 것도 좋다. 잠이 안 올 땐 억지로 잠에 들려고 하는 것보단 침대를 벗어나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이승훈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수면 제한 요법’은 침대를 오직 수면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며 “잠자리에 들었지만 15~20분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으면 침대에서 나와 활동하다가 졸릴 때 다시 눕거나 아침에 깬 후에도 침대에 오래 머물지 말고 즉시 활동을 시작하면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수면과 강하게 연결돼 수면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수면 부족에 대한 과도한 걱정은 오히려 불면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 교수는 “한두 시간만 잠이 안 와도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환자들도 있다”며 “완벽주의 성향으로 인해 수면에 대한 강박이 생기면 오히려 불면을 초래할 수 있는 만큼, 잠을 잘 자야 한다는 부담감을 줄이고 유연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국윤진 기자 sou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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