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계적인 해외와 달리 국내 스윙 활용 소극적
"언제, 어떤 배역도 소화 가능한 능력자 필요"
하나의 뮤지컬이 거의 매일, 온전히 막을 올리기 위해선 언제든 ‘대타’로 투입될 수 있는 배우들이 필요하다. 무대에서 보이진 않지만, 뮤지컬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배역이다. 특히 커버 배우 중에서도 많게는 5개 이상의 역할을 대체해야 하는 ‘스윙’(Swing)은 작품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뮤지컬 배우는 크게 주연과 조연 그리고 앙상블로 포지션을 나눌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앙상블은 극 자체에 화음과 동선을 책임지는 중요한 포지션이다. 앙상블을 ‘뮤지컬의 꽃’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만큼 앙상블 안에서도 포지션이 나뉘는데, 이 중 가장 소화하기 어려운 포지션이 바로 스윙 앙상블이다.
스윙은 평상시 무대에 오르지 않지만, 앙상블을 맡은 배우들이 개인 사정으로 출연하지 못할 때 무대에 투입된다. 각 공연에서는 남녀 스윙 1명씩을 두는 것을 기본으로 하지만 극의 특성에 따라 그 이상으로 캐스팅하기도 한다.
스윙이 일찌감치 자리 잡은 해외 뮤지컬 시장과 달리, 국내에선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으로 여겨졌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2000년 중후반 해외 창작진과 협업한 라이선스 작품이 들어오면서 스윙을 비롯한 커버, 언더스터디 등의 시스템을 가져왔지만 일부 작품에만 한정돼 적용했다.
2010년 들어 스윙 배역의 중요성을 인지한 공연 제작사를 중심으로 이 시스템이 활용되기 시작했다. 현재는 앙상블이 있는 대부분의 뮤지컬 작품에서는 스윙 배우를 두는 추세다. 한 뮤지컬 프로듀서는 “과거엔 스윙 시스템이 잡혀있지 않아서 배우가 다쳐도 무리하게 무대에 올리거나, 공연에 빠지면 눈치를 주는 일이 많았다”면서 “배우들이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약속한 기간 동안 퀄리티를 유지하며 공연하기 위해선 스윙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업계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윙 배역을 전문으로 하는 배우가 있을 정도로 스윙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해외와 달리 국내는 아직 스윙을 활용하는 데 있어 매우 소극적이다.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에서는 스윙 오디션이 매우 엄격하고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뛰어난 실력을 갖춰야 하고, 빠른 학습 능력 그리고 순발력과 에너지가 필요한 포지션이다.
실제로 스윙은 ‘대타’라고 해서 남의 역할을 대충 때우는 인력으로 치부할 수 없다. 앙상블의 대역으로 불리지만, 사실상 ‘멀티플레이어’라고 칭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언제 무대에 서게 될지, 어떤 배역을 맡게 될지 예측할 수 없어 항상 준비된 상황에서 긴장하며 대기해야 한다.
11년차 뮤지컬 배우로 여러 작품에서 스윙 배역을 맡았던 A씨는 “스윙이 평소 무대에 오르진 않지만 매우 까다로운 포지션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매번 개인 스윙 노트를 마련한다. 모든 앙상블 배역 각각의 등·퇴장 등 동선을 비롯해 세세한 부분까지 A4 용지에 그림과 함께 설명을 덧붙인 일종의 ‘스윙 노트’라고 보시면 된다. 언제든 급작스럽게 공연에 출연해야 할 때 이 스윙 노트를 보고 바로 투입될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한국 뮤지컬 시장에선 일부 제작사를 제외하곤, 대부분 스윙 배우를 신인급 배우에게 맡기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상 무대에 오를지 안 오를지도 모르는 배우에게 높은 페이를 지급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다. 스윙 배우는 공연 중 극장에 상주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무대에 오르지 않더라도 상주 자체를 1회 공연을 뛴 것으로 카운트해 페이가 지급된다. 일부 공연은 ‘신(Scene) 바이 신 스윙’이라고 이름 붙이고 기존 배역이 무대에 등장하지 않는 신에 결원이 생겼을 때 스윙으로 무대에 세우기도 한다.
한 공연 관계자는 “오디션에서 배우들에게 선택지를 준다. 앙상블 배역을 지원하는 동시에 ‘스윙’ 항목에 체크한 사람을 위주로 캐스팅이 진행되는 식”이라며 “해외 크리에이터들이 관여하는 작품에서는 스윙의 경력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은 대부분 앙상블을 지원한 이들 중에서 꾸리고 있다. 스윙이라는 배역의 중요성을 다시 새기고,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