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에서 격론이 오간, 오랜 과학적 논쟁을 우리 손으로 종결지었습니다. 우리 기초과학 역량을 세계에 보인 성과입니다. 앞으로도 한국을 세계 학계에 알리는 데 전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이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지하실험연구단 부단장의 말이다. 우주는 아직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암흑물질'이 전체 질량·에너지 27%를 차지한다. 많은 연구진이 그 규명에 나섰고, 그중 이탈리아 그랑사소 지하실험실 '다마(DAMA/LIBRA) 실험' 연구진이 1998년 암흑물질 신호를 포착했다. 다만 이 성과는 다른 곳에서 '재연'되지 않아 진위 논란이 있었다.
이런 가운데 IBS 지하실험연구단이 이끄는 '코사인-100' 국제 공동연구팀이 논란에 최근 마침표를 찍었다. 다마 실험 연구진 발견이 암흑물질 증거가 아님을 입증한 것이다.
다마는 유력한 암흑물질 후보인 '윔프'가 물질 속 원자핵과 충돌해 생기는 미약한 빛을 초정밀 검출기로 포착했다고 주장했지만, 공동 연구팀은 이 신호를 끝내 찾지 못했다. 6년 넘게 수집한 정밀 데이터를 분석하고, 다마와 동일한 에너지 측정 방식을 적용하는 등 분석 정밀도를 극대화했음에도 나온 결과다.
이 부단장은 검증 결과를 두고 '아쉬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암흑물질 발견이라는 초유의, 거대 발견이 될 수 있었는데, 결국은 '노이즈(잡음)'였다는것이 우리 결론”이라며 “암흑물질 규명을 추구해 온 학자로서 결과에 아쉬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우리 연구진의 역량을 키우고, 이를 세계에 선보이는 좋은 기회였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어려운 환경에서 거둔 성과여서 더욱 값지다고 했다.
이 부단장은 “1998년 다마 실험을 계기로 관련 연구를 시작해, 우리 손으로 검출기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했는데 현재 세계에서 최고로 고순도의 검출기를 기업 협력 없이 자체 제작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며 “이번 검증으로 IBS의 높은 암흑물질 탐색 기술력을 입증하고, 향후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기도 하다”고 피력했다.
이 부단장은 또 양양 양수발전소에서 '더부살이' 연구를 했는데, 이것이 현재 고심도 지하실험시설 '예미랩'이 만들어지는 기틀이 됐다고 전했다.
앞으로 있을 다마 실험 재검증 계획도 소개했다. 다마 그룹, 이탈리아 정부 등과 계속 협의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다마 실험이 이뤄진 그랑사소 지하실험실에서 추가 검증하는 것이다.
이 부단장은 “지난 1998년과 같은 조건, 같은 장소에서 재검증을 논의 중”이라며 “IBS 지하실험연구단이 참여할 것으로 보이며, 이르면 내년에 시작해 3~4년 내 결론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이밖에 시대의 조류이기도 한, 양성자보다 질량이 낮은 '낮은 질량의 암흑물질' 검출에서 우리 역량을 세계에 또 선보일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