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오전 10시 10분부터 미국 주요 주가지수가 10% 정도 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유예를 검토하고 있다는 속보가 전해지면서다. 20분 후 백악관에서 “가짜 뉴스”라고 부인하자 다시 폭락했다.
발단은 오전 8시30분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인터뷰였다. 관세 유예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네, 알다시피(Yes, you know). 대통령이 결정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인터뷰한 폭스뉴스는 여상히 지나쳤지만 10시 11분 ‘해머 캐피털’이라는 소셜미디어(SNS) 이용자가 X(구 트위터)에 “트럼프 관세 유예 검토”라고 올렸다. 3분 뒤 CNBC가 자막 방송을 통해 긴급 속보로 다뤘고, 8분 뒤 로이터가 CNBC를 인용해 같은 속보를 내보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소동으로 2조4000억달러(3400조원)가 증가했다가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SNS로 확산하는 가짜 뉴스가 현실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정치·경제·사회 가리지 않고 확산
대통령도 부정 선거론 빠져 자멸
지나친 분노·공포 뉴스 의심해야
가짜 뉴스는 국경도, 인물도 가리지 않는다. 지난달 말 유튜브에는 “강호동 54세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영상이 올라왔다. 조작한 영정 사진과 다른 상가에 조문하는 톱스타들의 모습까지 정성스레 합성했다. 본인이 “나는 살아있다”며 어처구니없어하는 중에도 SNS를 타고 끊임없이 퍼졌다. 옮기는 사람도 진짜라고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망설로 한번 클릭을 유도하고, 알고 보니 살아있더라는 속보로 다시 한번 조회수를 높이려는 의도였을 뿐이다. 강씨는 2011년에도 사망설에 휘말린 적이 있다. 그때는 “강호동 집에서 숨 쉰 채 발견”이라는 트위터가 발단이었다. 나름 유머라고 올린 글이 와전되면서 벌어진 소동이다. 4년 만에 와전이 악의적인 유포로 진화한 셈이다.
가짜 뉴스를 방치한 대가는 갈수록 커진다. 스카이데일리는 1월 16일 익명의 미군 소식통을 인용해 “계엄 선포 당일인 지난해 12월 3일 계엄군과 미군이 합동으로 선거관리위원회에서 99명의 중국인 간첩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또 “이들은 선거 개입 사실을 자백했고,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로 이송됐다”고 덧붙였다. 주한미군사령부는 “전적으로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익명의 미군 소식통은 캡틴 아메리카 복장으로 주한중국대사관에 무단 침입을 시도하다 구속된 안 모씨로 드러났다. 안씨는 “미군 출신 중앙정보국(CIA) 블랙요원”이라고 주장하며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 시위에 참여했지만, 육군 병장 출신으로 미국 출입 기록도 없다.
문제는 이런 황당한 주장이 나라를 뒤흔드는 사건의 근거로 쓰인다는 점이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2월 4일 법정에서 “투표함을 열었을 때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가는 여러가지 엉터리 투표지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라며 계엄을 정당화했다. 방송인 이영돈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는 지난달 16일 “강남·서초 등 보수 텃밭 지역에서조차도 사전투표 득표율이 10% 이상 차이가 났다”며 “전국 3000여개 투표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질 확률은 10경분의 1”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논리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자 방송인 김어준씨가 내세웠던 ‘K값’ 논란과 동일하다. 김씨는 당시 수검표 대상인 미분류표에서 박근혜 지지표가 많았다는 점이 부정 선거의 증거라며 영화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고령 지지자가 많아 제대로 기표하지 못했을 뿐이다. 사전투표 역시 진보 지지자가 많이 참여한 결과일 뿐이다. 모집단이 다르면 결과값도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은 통계의 기본이다. 대법원도 2022년 7월 선거무효소송에서 “사전투표와 본투표 참여자의 지지성향 차이에 따라 득표율이 다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가짜 뉴스를 통한 음모론은 원래 진보 진영의 특기였다. 광우병(2008년), 천안함(2010년), 세월호(2014년) 등을 보수 정권 공격에 알뜰하게 활용했다. 하지만 2017년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음모론과 선을 그었다. 대선과 총선에서 잇따라 승리하는 판에 가짜 뉴스에 기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수 진영이 2020년 이후 여기에 매달린다. 진보는 딱 유리한 만큼만 써먹었는데, 보수는 대통령까지 스스로 만든 가짜 뉴스에 푹 빠져 자멸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다.
미국의 비영리 팩트 체크 매체 ‘폴리티팩트’의 케이티 샌더스 편집장은 “어떤 뉴스를 보고 극도의 공포나 분노를 느낀다면 일단 의심하라”고 조언했다. 속이 뻥 뚫리는 ‘사이다 뉴스’도 가짜일 가능성이 크다. 한달여 남은 대선까지 우리 곁에는 수많은 뉴스가 스쳐 갈 것이다. 그 가운데 ‘믿고 싶은 사실’만 골라 본다면 가짜 뉴스는 또 한번 우리를 지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