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흥미롭게 시청 중인 드라마 ‘에스콰이어’에서 한 여성이 헤어진 연인으로부터 연애 기간 동안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옛 연인은 교묘하게 이에 대해 아무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를 받아놓아, 법적 문제는 없는 상황. 이때 변호사는 ‘사랑은 심신미약’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사랑에 빠진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기 때문에, 이전의 동의는 무효라는 이야기였다.
사랑을 하면 눈에 콩깍지가 쓰인다는 말이 있으니, 우리도 경험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사랑과 인지 능력 간의 관계를 알아본 연구들은 여럿 있다. 우선 사랑은 기억력에 영향을 준다. 사랑에 빠진 사람들에게 기억력 테스트를 했는데, 연인과 관련된 정보에는 더 높은 기억력을 보인 반면, 연인과 상관없는 정보에는 약간의 저하를 보였다고 한다. 사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고, 보다 많은 인지적 에너지를 연인과 관련된 것들에만 쏟는다면 그 외의 정보에 대해 손해를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주의 능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주의 통제력에는, 중요한 자극에 주의를 기울여 정교하고 빠르게 처리하는 능력과 중요하지 않은 방해 자극에 주의를 차단하는 능력이 모두 필요하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방해 자극의 영향을 차단하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한다. 시도 때도 없는 연인의 연락을 기다리기 위해 약간의 주의력을 예비하는 것일까?
한편, 남성들의 경우 사랑에 빠지면 다른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이 높아진다고 한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연인 관계가 어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 높아지는 것이라 해석했다.
기쁘게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사랑이라 했던가. 그래서 사랑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의사결정으로는 유지되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인지 능력까지 담보 잡히도록 우리가 진화되어왔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최훈 한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