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곰탕의 풍미와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

2025-10-11

[전남인터넷신문]나주 곰탕은 맑고 투명한 국물 속에 얇은 양지가 차분히 놓인 소박하면서도 따스한 음식이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간, 소박한 향기만으로도 마음이 풀리고 편안해진다. 첫 숟가락을 입에 넣으면 고요하지만 깊은 맛이 은근히 스며들며 일상의 피로를 잔잔히 달래준다.

단순한 끼니가 아니라, 세월을 품은 정성과 기다림이 만들어낸 치유의 국물이다. 서울식 곰탕이 진하고 묵직한 맛을 자랑한다면, 나주 곰탕은 맑지만 은은하게 번져나가는 맛으로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 남는다. 화려하지 않지만 곁에 오래 머무는 사람처럼, 조용하고 단단한 인상을 남긴다.

그런 나주 곰탕의 맛은 요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Canon and Gigue in D)’과 매우 닮아있다. 요한 파헬벨(Johann Pachelbel, 1653–1706)은 독일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이자 오르간 연주자이다. 파헬벨은 생전에 교회음악과 오르간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오늘날에는 거의 단 하나의 곡, ‘캐논 D장조(Canon in D Major)’로 가장 널리 기억된다.

캐논(Canon)은 하나의 주제를 여러 성부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하며 연주하는 형식이다. 쉽게 말해 ‘음악 속에서의 따라 부르기’와 비슷하다. 변주곡 형식은 동일한 저음선율(ground bass) 위에 다양한 선율이 쌓이며 점차 음악이 풍성해지는 구조이다.

점진적으로 악기와 멜로디가 더해지며, 음이 겹쳐지고, 층이 쌓이며 놀라운 조화를 만들어낸다. 처음엔 평범하고 단조롭게 들리지만, 들을수록 마음을 사로잡는 이 음악은 자극 없이도 감동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예술이다.

곰탕과 캐논,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태어났지만 닮은 미학을 품고 있다. 바로 ‘단순함 속의 깊이’, ‘반복 속의 정성’, 그리고 ‘조용한 감동’이다. 캐논 변주곡이 화려한 기교 없이 반복되는 선율 안에서 감정을 축적하듯, 나주 곰탕도 화려한 양념 없이 오랜 시간 동안 고기를 우려내 깊은 맛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이 나주 곰탕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맛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기억의 음식이자 우리의 식문화가 배여 있기 때문이다. 여행길에 마주하는 곰탕은 낯선 곳에서도 낯설지 않은 편안함을 준다. 맑은 국물 속에는 우리가 오랜 세월 먹어온 식생활의 기억, 마치 DNA처럼 몸에 새겨진 음식 문화가 스며 있다.

그래서 나주 곰탕은 새로운 공간에서도 고향처럼 다가오고, 한 그릇 속에서 마음이 쉬어간다. 세대를 넘어 이어져 온 전통이자,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우리를 치유하는 음식인 것이다. 캐논 변주곡도 마찬가지다. 웨딩마치처럼 밝고 장엄하지 않지만,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있어 결혼식 입장곡으로 많이 사용된다.

광고, 드라마, 영상 배경 음악 또는 혼자 있는 밤의 배경 음악 등으로 사용되면서 사람들의 인생에 조용히 스며들어왔고, 순간들을 더 섬세하게 빛나게 해주었다. 격하지 않기에 더 오랫동안 사랑받는 선율, 그것이 캐논의 진짜 힘이다.

음식과 음악은 언뜻 보면 전혀 다른 영역 같지만,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공통된 힘을 갖고 있다. 나주 곰탕과 캐논 변주곡은 삶의 소란스러움 속에서 조용한 위로가 되어준다. 이 둘은 우리에게 말한다. “진짜 감동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천천히 스며드는 것”이라고.

조용한 방 안에서 캐논 변주곡을 틀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나주 곰탕 한 그릇을 떠올려보자. 그 맛이 은근히 마음을 덮어주듯, 귓가에 맴도는 선율 또한 섬세한 곡선으로 설계되어 있어 듣는 이의 감정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화려하진 않아도, 오랫동안 곁에 머무는 것들. 그것이 진짜 위로고, 삶을 감싸는 힘이자 치유가 된다. 나주 곰탕의 국물이 천천히 몸을 덮듯, 캐논의 선율도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 스며들어 삶의 배경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속에서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 오래 지속되는 울림을 발견한다.

참고문헌

허북구. 2025. 와인의 바디감과 나주 홍어 풍미 미학.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08).

허북구. 2025. 프랑의 요리 맛 언어로 풀어낸 나주 홍어의 풍미.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07).

허북구. 2025. 이탈리아 음악 용어로 풀어낸 나주 홍어의 풍미.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05).

허북구. 2025. 국악의 음색으로 풀어낸 나주 홍어의 맛. 전남인터넷신문 허북구농업칼럼(2025-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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