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신원철 원장
송파 연세소울정신과의원
청소년 42% ‘디지털 과의존’ 위험군
숏폼 등 시각적인 자극에만 몰입해
지금 세대는 아날로그 방식이 필요

“어릴수록 종이로 된 책을 읽어야 해요. 디지털 스크린에 익숙해지면 뇌가 빠르고 즉각적인 반응에 익숙해져 자기 조절력이 떨어지고 조금만 불편해도 쉽게 짜증을 내는 성격이 됩니다.”
소아·청소년을 20년째 진료해 온 송파 연세소울정신과의원 신원철 원장의 얘기다. 주의력 문제나 감정기복이 심해서 찾는 아이들 중에 디지털 과몰입 문제를 가진 아이들이 많다.
보고, 듣고, 감정을 느끼고 기억·판단하는 뇌는 복합 자극을 통해 발달한다. 영유아부터 소아·청소년 시기는 인지, 감성, 사회성 등 뇌의 여러 영역을 동시다발적으로 자극하는 통합적 활동이 중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비대면 수업을 경험하면서 소아·청소년의 디지털 기기 사용이 늘었고, 이로 인해 디지털 과몰입 증상을 보이는 아이도 증가했다. 신 원장은 “어렸을 때부터 디지털 기기를 과도하게 사용하면 유연하게 발달해야 할 뇌 신경망이 왜곡된다”며 “태어났을 때부터 스마트폰이 존재하고 인공지능(AI), 가상현실 등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일수록 아날로그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종이로 된 책 읽기를 강조하는 이유다.
종이책 같이 물리적인 도구로 정보를 접하면 언어를 해석하는 측두엽, 내용을 구조화하는 전전두엽, 기억을 정리하는 해마, 감정을 공감하는 변연계 등 뇌의 여러 회로가 함께 반응한다. 몰입형 읽기로 뇌가 상상하고 재조합하면서 복잡한 정보를 고차원적으로 처리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깊게 생각하는 통찰력도 여기서 만들어진다. 시각 자극이 강한 디지털 콘텐트는 스크린 속 이미지를 보면서 수동적으로 따라간다. 뇌가 정보를 스치듯 훑는 식으로 반응하면서 내용에 집중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눈에 띄는 정보만 뽑아서 처리하면서 기억에 오래 남지 않고 피상적으로 이해한다.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한 관찰 연구에서도 디지털 스크린 노출은 단순히 시각적 피질만 자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이책을 읽었을 때는 뇌의 감각 운동 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것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뇌파 연구에서도 이런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똑같은 텍스트를 종이책으로 읽었을 때는 베타파(집중), 감마파(감정) 등이 활성화되지만 디지털 기기를 볼 때는 멍한 상태에서 나오는 알파파 비중이 높았다. 읽기 방식에 따라 뇌가 다르게 반응하는 셈이다. 신 원장은 “디지털 기기로 영상이 아닌 글을 보더라도 뇌에서는 이미지화해 인식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신 원장과의 일문일답.
교육적 목적으로 디지털 기기를 쓰는 것은 괜찮지 않나.
“디지털 교과서 도입 등 논의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우려스럽다. 물론 디지털 기기로 다양한 자료를 제공하고 흥미를 높여주는 장점이 있다. 이 정도는 학급별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보여주는 시청각 자료만으로도 충분하다. 정신의학적 관점에서 아이의 성장에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과 상호 작용을 통한 관계다. 사회성, 언어 발달에는 서로 눈을 마주 보고 감정을 공유하면서 표현하는 것이 필요한데 뇌 과학적으로 디지털은 이런 부분이 부족하다.”
종이책을 읽으면 정서적 안정감이 높아진다는데.
“거울 뉴런 효과다. 시·소설 등 스토리가 있는 글을 읽으면 등장인물이 느끼는 감정을 내가 느끼는 것처럼 공감하게 된다.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상황을 세심한 심리 묘사로 간접 경험하면서 감정 조절 능력을 배우는 것이다. 어떻게 상황을 해결해 나가는지 몰입해 읽으면서 통찰력을 얻고 정서적 안정감도 높아진다. 매일 30분씩 종이책을 읽은 그룹은 심박수가 안정되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수치가 줄었다는 연구도 있다. 디지털 기기로 읽을 땐 내용을 건너뛰면서 정보를 처리해 감정과 관련된 뇌 활성도가 떨어지고 감정 몰입도 약하다. 그냥 보고 넘긴다. 읽기 방식에 따라 소아·청소년의 정서 회복 탄력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시사한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길어지면서 수면 장애도 문제인데.
“디지털 기기의 강력한 빛인 블루라이트는 뇌를 각성시켜 수면을 방해한다. 자기 전에 밝은 빛에 노출되면 수면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돼 새벽까지 잠들기 어렵고 자주 깬다. 수면은 소아·청소년의 성장뿐 아니라 학습, 기억력, 전반적 정서 조절 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적어도 잠자기 한 시간 전부터는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신 원장은 디지털 로그오프 실천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디지털 기기의 사용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차원적 사고를 하는 뇌의 전두엽 기능이 약해져 뇌가 충동적으로 변한다. 2024 스마트폰 과의존 실태조사에 따르면 10대 청소년 10명 중 4 명(42.6%)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이다. 그는 “어느 순간 자기통제력을 잃으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미룬다”고 말했다. 숏폼 등을 보느라 수면 시간이 줄고 낮에 집중하기 어려워할 때, 혼자 디지털 기기를 보는 것을 더 좋아할 때, 디지털 기기 사용을 제한하면 극도로 화를 낸다면 디지털 중독 위험 신호다. 그는 디지털 과몰입으로 병원을 찾는 아이들에게 다른 치료와 함께 종이책 읽기를 권한다. 일방적으로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대신할 오프라인 미션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는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종이책을 펼치면 정서적 감수성이 높아지고 수면의 질도 좋아진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