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상품 아닌 시스템…청년세대 불리하단 건 잘못된 정보”

2025-04-08

30년 가까이 연금개혁 논의 과정에 참여한 연금 분야 전문가다. 연금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중시하는 재정 안정론자로 꼽힌다. 기초노령연금 도입안은 과거 새누리당 당론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자문위원회인 제5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위원회 위원장과 21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의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원을 거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한국연금학회장 등을 지냈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국민대타협기구 위원으로도 참여했다. 현재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다. — 초고령화 시대, 은퇴 후 노년을 상상해보자. 가장 큰 문제는 돈이다. 지출을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고, 꼬박꼬박 들어오던 월급이 없어지면 막막하다. 그나마 최소 생활수준을 보장해주는 안전판이 국민연금이다. 고령사회는 ‘예정된 재난’이 됐지만, 정작 개인은 국민연금 말고는 기댈 곳이 없다. 이제 국민연금은 특정 세대나 계층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국민연금의 내는 돈(보험료율)과 받는 돈(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것은 사회적 합의 영역이 됐다. 연금 고갈 우려가 이어졌지만, 이전 정부들이 국민연금 개혁을 미뤄온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달 20일 여야가 보험료율(13%)과 소득대체율(43%)을 인상하는 내용을 담은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2007년 이후 18년 만이다. 하지만 ‘구조개혁’이라는 큰 과제가 남아 있다. 지난 3일 연금전문가인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를 만나 국민연금이 과연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물었다. 김 교수는 21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이번 연금개혁안은 재정 안정화를 중시하는 입장에선 불충분하다고 할 수 있고 소득 보장 측면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만큼 무게중심을 잡은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며 “여야가 합의한 건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정부와 국민의힘이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후순위 과제로 꼽았다. 김 교수는 “이 장치는 연금개혁이 완료됐을 때 도입할 수 있는 장치”라며 “우리나라같이 연금개혁이 완성되기 이전에는 보험료 인상, 지급 개시일 조정 등이 먼저”라고 밝혔다. 연금을 삭감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은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개혁안에 대한 청년세대 불만에 대해서는 “국민연금은 금융상품이 아닌 사회 시스템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 개혁은 오래 살아도 불안하지 않게 사회적으로 합의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연금개혁안 불충분하고 아쉽지만

재정·소득 보장 무게중심 잡아

오래 살아도 불안하지 않게

사회적으로 합의해 나가는 과정

보험료 인상·국고 투입 차이 없어

미래세대 짐이 되는 건 마찬가지

연금 사각지대 놓인 계층 위해

노란우산공제 등 더 활성화해야

기초연금 상대적 역할 점차 축소

진짜 어려운 노인들에 집중하고

적립금 바닥난 군인·공무원 연금

국고 덜 투입되게 조정할 필요

삭감 ‘자동조정장치’는 시기상조

스웨덴처럼 개혁 완료될 때 가능

연금 개선 ‘도깨비방망이’ 아냐

개시일 조정·기금 수익 제고 먼저

여야 합의로 통과 큰 의미

- 이번 개혁안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국민연금은 1998년 1차, 2007년 2차 개혁이 됐는데요. 중간에 여러 작은 개혁들이 있었지만 이번 개혁은 3차 개혁이라고 부를 만큼 의미 있는 개혁입니다. 2007년 이후 18년 만의 개혁이기도 하고, 우리 연금제도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계기가 되는 개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연금개혁에 대한 가치 판단에 따라서 서로 아쉬운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재정 안정화를 중시하는 입장에선 불충분하다고 할 수 있고, 소득 보장 측면에서도 ‘받는 돈 43%는 조금 낮다’ 할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연금개혁 과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상반된 아쉬운 점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무게중심을 잡은 개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여야 합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이 의미가 큽니다.”

- 21대 국회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 공동위원장이었는데, 그때는 연금개혁이 무산됐습니다.

“당시 자문위원회에서 제안한 것이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이원화시켜서 모수개혁부터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논의들을 다져놨기 때문에 이번에 합의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가입기간으로 인정하는 군복무·출산 크레디트가 확대됐는데요. 지원 시기를 사유 발생 시점이 아니라 연금 수급 시점으로 맞춘 것이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가입기간을 늘려주면 받는 돈은 늘어나니까 수급자 입장에선 똑같아요. 결국 발생 시점이나 수급 시점 어느 때에 재정이 투입되느냐의 문제인데, 재정 안정화 측면에선 차이가 난다고 할 순 있어요.”

- 받는 사람이 시기를 선택할 수 있게 하면 안 됩니까.

“어차피 연금 받을 시점이 돼야 받을 수 있어요. 연금 수령을 위한 최소 가입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하면 못 받습니다. 9년밖에 가입이 안 돼 있다면 1년을 채워야 연금 수급 자격이 생겨요. 현세대가 부담을 좀 더 하느냐 미래세대가 부담을 더 하느냐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는데 전체적으로 연금제도의 기능이나 역할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 국가에서 재정을 지원하는 방안은 어려울까요.

“두 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하나는 보험료 인상과 세금 인상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국민연금은 전 국민이 가입돼 있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을 하느냐 국고 투입을 하느냐는 별 차이가 없고요. 또 하나는 국고를 투입하면 좋을 수도 있지만, 문제는 국가가 지금 투입할 재정 여력이 있느냐입니다. 지금도 매년 한 80조원씩 국가부채가 쌓이고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국고를 미리 투입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않고요. 결국 재정 지원도 국민 부담이기에 그 자체가 미래세대에게 부담인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국민연금 보험료는 정률로 매기지만, 연금을 받을 때는 세계에서 제일 강한 소득재분배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소득이 높으면 소득대체율이 떨어져요. 소득대체율 40%는 ‘가입자 평균 소득’ 기준이고, 평균 소득의 두 배를 버는 사람은 30%밖에 못 받아요. 반대로 평균 소득의 2분의 1 정도 되는 계층은 60%, 3분의 1은 70~80%로 높아집니다. 소득재분배를 위해 고소득자는 ‘낸 것보다 덜 받도록’ 설계된 국민연금의 특징 때문이에요.”

- 재정안정론자 입장에서 ‘받는 돈’ 43%가 노후소득 보장에 부합하는 수치라고 평가하십니까.

“무조건 재정 안정만 내세우는 건 아니고, 소득 보장 측면도 중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득대체율이 소득계층마다 다르고, 가입기간에 따라 다릅니다.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가입기간이 짧은 편이라, 소득대체율을 높여야 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현재 40%나 이번에 오른 43%만으로 충분하지 않죠. 그런데 25년 정도 연금을 납부할 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지, 만약 40년을 납부한다면 불충분하지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봐야 되는 측면이 있고요. 그리고 국민연금은 홀로 존재하는 게 아니고 기초연금과 기능을 분담하는 제도입니다. 그 돈까지 합치면 중하 계층의 소득대체율이 낮은 건 아닙니다. 물론 국민연금만 가지고는 노후가 걱정되는 건 사실입니다. 그나마 중상위층은 퇴직연금을 활용할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있으면서 강제적인 퇴직금 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퇴직연금을 수급하는 사람은 20만여명밖에 안 됩니다. 전체 수급자가 2000만명이 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미흡한 실정이지요. 퇴직연금의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의무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퇴직연금으로 받으면 국민연금과 더불어 노후소득 보장의 한 축을 담당하게 할 순 있습니다. 고령화사회인데 자녀를 위해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분위기는 바뀔 때가 됐어요.”

- 그렇지 않아도 이번 개혁안은 세대 간 갈등이라는 장애물에 부딪히고 있습니다. 중장년층만 더 받고 청년들은 받지도 못하는 거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습니다.

“기성세대는 낀 세대라고 하잖아요. 자신의 노후를 위해서 국민연금을 납입하는 동시에 부모를 부양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어요. 그런 세대의 특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연금만 가지고 유불리를 따지는 것은 국민연금을 금융상품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회 시스템으로 봐야 하는데 말입니다. 고갈 시점을 늦추려고 하는 것은 지금의 청년세대를 위한 것입니다. 연금개혁이 청년세대에게 불리하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정보입니다.”

- 여야 원내지도부 합의에도 개혁안에 3040 의원의 절반 가까운 19명이 반대 또는 기권했습니다. 범여권 대선 주자는 미래세대 약탈이라고까지 하는데요.

“연금은 세대 간 형평성 문제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정치인들의 주장은 젊은층 ‘표’를 얻으려는 포퓰리즘적 성격이 있다고 봐요. 비판을 하려면 대안을 제시해야죠. 막상 그분들에게 대안 제시하라면 없어요. 누군가는 성공한 연금개혁 사례로 ‘스웨덴식’을 거론하는데 스웨덴은 낸 돈만 받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2024년 말 기준 적립금이 1213조원이나 있어요. 적립금 고갈 시점이 2056년으로 30년이나 남았고, 이런 상태에서 개혁을 하기 때문에 수익비 1.61배를 제시할 수 있는 겁니다. 낸 만큼 받는 스웨덴식 개혁은 최악의 경우 하는 거예요. 국민연금 개혁은 오래 살아도 불안하지 않게 사회적으로 합의해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는 과정입니다.”

개혁특위, 기초연금 논의 최우선으로

- 연금개혁특위가 다시 꾸려졌는데요. ‘구조개혁’ 어떻게 풀어야 되는지요.

“세 가지를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기능 재정립, 두 번째로는 퇴직연금·개인연금이 제 기능을 하게 만드는 것, 마지막은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과 국민연금 간의 형평성을 맞추는 일입니다. 기초연금은 손봐야 하지만, 사실 퇴직연금은 개선할 게 별로 없어요. 이번 특위에 국민이 제일 관심을 가질 세 번째는 빠져서 아쉬운 측면이 있어요.”

- 기초연금을 손보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아닌가요. 줬다 뺏는 게 제일 힘들잖아요.

“맞습니다. 그럼에도 우선적으로 논의돼야 하는 것은 기초연금입니다. 기초노령연금은 2007년 도입돼 2014년 기초연금으로 확대됐고, 수령액이 최대 34만원으로 높아졌습니다. 노인빈곤율 개선에 일정 부분 기여한 건 사실이지만, 국민연금 수급자가 많아지면 기초연금은 상대적으로 역할을 조금 줄이면서 진짜 형편이 어려운 노인들한테 집중 지원하는 제도로 바꿔야 합니다.”

- 그렇지만 역대 정권마다 기초연금을 계속 늘려왔는데요.

“현행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인구의 70%에 일괄적으로 지급합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도움이 절실한 저소득층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하고 있어요. 우리 노인빈곤율이 2023년 38.2%로 OECD 국가 중에서 제일 높아요. 그렇다면 그 38.2%에 해당되는 노인들에게 집중적으로 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현재 받는 분들에게 뺏을 수는 없고, 새로 65세 되는 사람들부터 단계적으로 지급 대상을 취약 노인으로 좁히더라도 더 두껍게 지원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합니다.”

- 정부와 국민의힘은 재정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제안하는데 이를 논의해야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자동조정장치는 많은 나라에서 채택했고, 스웨덴도 도입했거든요. 여기엔 위험 요소가 하나 있어요. 평균 수명이 길어진다는 겁니다. 평균 수명 85세 기준 1.0배 만들어놨는데 89세로 늘어나면 수급기간이 늘어나서 연금 재정 적자가 발생하잖아요. 이에 대비해서 미리 조정장치를 두는 겁니다. 말 그대로 연금을 깎는 것인데, 스웨덴같이 연금개혁이 완료됐을 때 도입할 수 있는 장치입니다. 우리나라같이 연금개혁이 완성되기 이전에는 보험료를 올려야 되고, 지급 개시일도 조정하고, 연금 기금 운용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먼저예요. 이 장치를 도깨비방망이로 생각해서 도입만 되면 연금이 개선된다고 잘못 알고 있는데 연금은 공짜가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 특위에서 어젠다에 포함시켜서 논의해볼 정도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 정년 연장과 맞물려 연금 가입 상한연령을 조정해 수급 개시 연령과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습니다.

“지금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59세까지거든요. 정년 연장하더라도 이 부분을 안 바꾸면 국민연금 가입 의무가 없어져요. 일단은 1세 정도 차이가 나는 국민연금 가입 상한연령을 법정 정년과 맞춰야 됩니다. 정년 연장이 되면 최소한 65세까지는 올려야 합니다. 정년 연장 문제는 청년 일자리 문제와 함께 속도를 조절해야겠지만, 가야 할 길입니다.”

직역연금 개혁, 재정건전성 확보 이후에

-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았거나 여러 이유로 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연금 사각지대도 많습니다.

“퇴직연금제도가 없는 자영업자에게는 노란우산공제로 알려져 있는 소기업·소상공인 공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형퇴직연금(IRP)을 자영업자도 가입할 수 있게 했어요. 모든 사람이 연금을 준비할 수 있도록 한 이런 제도를 더욱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특수고용노동자 등 연금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선 이런 제도들을 계속 만들어야 합니다.”

-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을 그대로 둔 채 국민연금만 손대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게 국민 정서인데요.

“우리나라 군인연금·공무원연금의 적립기금은 이미 바닥났어요. 군인연금은 1975년, 공무원연금은 2001년부터 소진돼 현재 부족한 부분을 국고 지원으로 감당하는 실정입니다. 국민연금과 직역연금의 형평성을 높이고자 국민연금과 완전 통합하거나, 단계적으로 합치는 방안에 대해서는 직역연금에 대한 추가 개혁으로 재정건전성을 확보한 후 검토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만일 1000조원 안팎의 적립기금을 가진 국민연금과 적립금이 소진된 공무원연금을 바로 통합할 경우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불리할 수 있는 데다, 공무원연금 재정 적자폭은 더욱 커져 국가재정 부담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번 개혁으로 국민연금은 보험료 4% 올렸잖아요.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합의할 때 공무원연금 보험료율(18%)을 국민연금 보험료율(9%)에 맞춰서 낮췄거든요, 이번에 국민연금 올렸으니 공무원연금·군인연금도 국고가 덜 투입될 수 있게 더 내도록 조정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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