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샤바 샤바 아이 샤바. 얼마나 울었을까….” 어린 시절,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하면서 부르던 이 노래는 민요의 전형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 안에 노래가 어떻게 스미는지를 잘 보여준다.
가사 내용은 기구하기 이를 데 없지만 가락은 무심할 정도로 천진하다. 이것이 다 인생사의 일부라는 듯. 실제로 닥쳐온다면 감당 못 하게 고통스러울 텐데도 고무줄 넘기에 열중하는 아이들은 가벼이 흘리며 노래한다. 고무줄을 끊으려고 때를 기다리는 남학생 귀에는 그 노래가 거의 즐겁게 들린다. 그렇게 아이들은 순간에 몰입한다.
오랜 독일 민요에도 그런 대책 없는 천진함이 들어 있다. “동무들아 오너라 서로들 손잡고 노래하며 춤추며 놀아 보자.” 윤석중 선생이 번안하고 교과서에도 실린 이 노래는 ‘오 그대 아우구스틴(O du Lieber Augustin)’, 1679년 페스트가 창궐한 빈이 그 배경이다. “매일이 축제 같았지 허나 지금은? 페스트, 페스트! 오로지 거대한 시체들의 축제! 그게 남은 전부라네! 아우구스틴 이제 네 무덤에 누우렴, 오, 그대 아우구스틴, 모두 다 사라졌네!” 고통의 내용을 천진한 가락에 실어, 입에서 귀로 전한다.
가난하다고 못 가지는 이 없도록 사람들은 무심하고 심심하되 들풀같이 쌩쌩한 노래를 시간과 겨뤄 가며 지어 불렀다. 고통을 해독해 주는 노래 한 가락. 그건 노래가 아니라 살아갈 힘이었다. 그 생명력 앞에서 클래식이니 대중음악이니 하는 구분은 의미가 없다. 그런 노래를 한 곡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는 음악 전체를 가진 것과 같다. 그 노래와 함께 고통스러운 허무의 시간을 살아 있는 열중의 순간으로 바꿔 내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고무줄 하는 아이들 소리, 신데렐라 노래도 들려오지 않는다. 새로운 신데렐라 노래는 어디 있을까.
나성인 음악평론가·풍월당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