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국기

2024-10-23

깃발은 간단하면서도 심리적 효과를 자아내는 집단적 매체이다. 어느 단체를 하나의 천 조각으로 응축해 놓아 구성원들을 결집시킨다. 작게는 학교, 관공서, 군대 등을 상징하고 국가 간 교류와 분쟁에 국기가 쓰이기도 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응원할 때 의례 국기를 흔들고 역사의 극적인 장면들에도 국기가 등장한다. 심지어 판타지 SF 영화에서 외계 종족들이 백병전을 벌일 때에도 기수가 앞에서 전진한다.

정해진 문양을 그린 단순 천 조각이 어찌 그리 큰 효과와 의미를 자아내는가. 사회생활을 통하여 각인되는 면이 크겠지만, 더 근본적으로 깃발의 물리적 특성에 인간의 관심을 끄는 면이 있을 것이다. 깃대에 매여있는 깃발은 바람이 없으면 축 늘어져 있고 적당한 바람에는 술렁술렁, 강한 바람에는 파르르 소리까지 내며 펄럭인다. 이에 따라 그려진 문양의 형태도 애니메이션처럼 바뀌며 자연스레 인간의 시선을 끄는 힘이 있다.

깃발의 펄럭임은 바람에 의해 형성된 파동이 천을 따라 전파되는 현상이다. 이 파동은 깃대에 묶인 깃발 위쪽 모퉁이를 고정 축으로 하고, 묶인 아래쪽 모퉁이에서 시작하여 바람이 오른쪽으로 불 경우 시계바늘이 6시에서 3시 방향으로 돌듯이 진행한다. 비스듬한 파동의 결 사이로 바람이 통과하며 부양력을 가하여 늘어진 깃발이 점차 펼쳐지게 된다. 비행기 뜨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대각선 방향으로 퍼져나가는 파동은 깃발의 반대 끝 아래 모퉁이를 거쳐 윗 모퉁이를 마지막으로 허공으로 사라진다. 파동이 자지러지는 윗 모퉁이가 가장 많이 요동쳐서 오래된 깃발에서 흔히 닳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희로애락 인간사에 유구히 연루된 깃발은 국가와 종족을 초월해 중력과 공기의 유체역학, 그리고 천의 물성과 기하학적 경계조건의 조화로 펄럭인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을 펄럭이는 국기가 새삼 보여준다.

황원묵 미국 텍사스 A&M대 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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