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 척도, 인류학·고고학자의 보물...어른을 위한 '똥'이야기[BOOK]

2024-12-27

브린 넬슨 지음

고현석 옮긴

아르테

언뜻 꺼려지는 것에 대한 세심한 관찰이란 점에서 동화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떠올리게 하는 이 책은 동심이 충만해야 제목을 크게 외칠 수 있다. 원제(Flush)는 수세식 변기에서 씻겨 나가는 '그것’을 나름 돌려 말한 셈인데, 우리말 제목은 직설적이다.

책은 우리의 똥이, 여러 가지로 재활용되는 코끼리 똥만큼 유용할 리 없다는 편견을 극복하면, 이미 개발된 노하우와 기술들의 적절한 활용만으로도 우리 안팎의 세계에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오만가지 에피소드를 체계적으로 소개한다. 물질로서 그 정체를 살펴보는 1장부터 그것을 활용하는 풀뿌리 사회실험들을 소개하는 마지막 12장까지 의학·과학·공학·기술만 아니라 인간심리와 사회문화까지 폭넓게 넘나든다. 워낙 방대해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직간접적으로 발견하게 된다.

오랫동안 인돌과 스카톨, 즉 그것에서 발견되는 화학물질이 고약한 냄새의 정체라고 여겨왔지만, 그렇게 단정할 수는 없다는 놀라운 실험결과들도 소개된다. 반면 엄마·아빠가 갓난아기의 응가에서 불쾌한 냄새 물질을 감지하면서도 덜 역겨워하는 현상은 흔할 뿐만 아니라, 갖가지 악취를 덜 역겹게 느끼는 여러 사례 중 하나란 지적은 상식적이다. 체계적이고 방대한 실험들이 없는 현재로서는 여러 화학물질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불쾌한 악취를 느끼게 되고, 사람마다 또 상황마다 악취 감수성이 다르다는 것이 잠정 결론이다.

오래되어 악취가 사라졌다면? 인류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의 보물이 된다. 한 인류학자는 1960년대 학부생 시절 발굴 현장에서 분변 화석을 멀리 던지기 놀잇감으로 썼다고도 회상한다. 오늘날에는 고대 화장실과 인분 화석을 통해 과거의 식생활과 질병을 재구성한다. 한 예로 17세기 후반 덴마크 주교의 변기에서 발견된 그것들은 주교가 인도에서 직수입한 블랙커런트와 후추를 즐기는 호화 생활을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사와 무역사의 물증인 셈이다.

싱싱한 그것에 대한 혐오는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된 곳일수록 높고, 그것의 상태는 식생활에 따라서 매우 다르다. 연구까지 필요할까 싶지만 여러 사례와 데이터를 짚어가며 전하는 이야기는 새로운 관점과 착상을 떠올릴 수 있게 한다. 싱싱한 그것을 수집해 장내 미생물 변화 추이를 살펴보니, 이미 많은 미생물이 인간에게 발견되기도 전에 사라졌을 수도 있단다.

또 인위적 제거가 거의 불가능한 디피실리균은 평소 문제를 일으키지 않다가 다른 장내 미생물들이 거의 사멸하면 심각한 감염증을 일으킨다. 치료법은 분변이식. 이런 사례들은 소위 유익균으로 장내 미생물군을 대체하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지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다행히도 몇몇 종류의 ‘유익균’으로만 장을 채우는 위험한 일은 저지르기가 매우 어렵다.

지은이가 전하는 에피소드들이 좀 어색할 때도 있는데, 미국과 한국의 차이가 드러난다. 그는 일 년에 걸쳐 자신의 그것을 휴대폰 앱을 이용해 검사하고, 장내 세균총 분석을 의뢰한 경험을 자세히 이야기한다. 대단하기는 한데, 대변검사의 유용성을 애써 얘기하는 것이 의아하다. 아하, 전 국민 건강검진이 없는 미국에서는 대변검사를 여러 번 해본 사람이 적겠구나.

사정이 다르니 강조점이나 활용 기술이 다른데, 덕분에 달리 응용할 아이디어를 여럿 찾을 수도 있다. 분변을 포함한 오수의 관리 효율성은 한국식 광역관리 체계가 미국식 지역별 분산 관리 방식보다 대체로 낫지만, 재활용과 환경 발자국 감소에서도 그런지 비교해 볼 수도 있다. 공부에 덜 시달리는 초등학생들과 더 시달리는 중고생들의 차이를 그것을 통해 찾아보는 프로젝트도 도전해 볼 만하다. 어른이라고 어린이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못할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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