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다고 터부시되는 대상 ‘똥’
범죄 수사 때 용의자 찾아내고
전염병 바이러스 분석하는 단서
바이오숯 만들어 에너지 활용도
똥
브린 넬슨 지음 | 고현석 옮김
아르테 | 664쪽 | 4만4000원
타인의 몸에서 배출된 물질에 대한 혐오는 생래적인 것이다. 그중에서도 ‘똥’은 더러움의 대명사다. 여러 언어에서 똥과 관련된 비속어를 찾을 수 있다.
물론 우리가 똥을 혐오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똥에 포함된 유기 화학물질은 불쾌한 악취를 풍기는데, 인간은 어떤 물질의 유해성 여부를 냄새를 통해 판별하도록 진화했다.
미생물학 박사 학위를 가진 과학저널리스트인 저자는 그러나 책에서 ‘똥’의 명예회복을 시도한다. 똥은 “식물과 인간의 생명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물질”로, “우리는 똥에 얼굴을 찌푸리기 전에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가 열심히 만들어 내는 이 숨겨진 보물에 진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손이 발달하고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에서도 다른 동물과 다르지만 자신의 배설물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유난스럽다. 다른 동물들의 배설물은 생태계를 통해 순환되지만 인간은 “물 내림 버튼을 한 번 누르는” 행위를 통해 배설물을 자연에서 격리시킨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중요한 영양분을 그 영양분이 가장 쓸모가 없는 곳에 버리면서 고대인들이 중시했던 재생 순환 주기를 와해시키고 있다.”
똥을 터부시하는 것은 자연계의 순환에도 도움이 안 될뿐더러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다양한 혜택을 제 발로 걷어차는 짓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똥은 DNA나 RNA 분석을 통해 범죄 수사에서 용의자를 파악하거나 희생자의 사망 원인을 추정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파리나 딱정벌레 같은 절지동물들은 시신을 먹이 또는 번식 장소로 삼는데, 법곤충학자들은 이 동물들이 시신에 도착한 시간을 계산해 희생자의 사망 시간을 특정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섭취한 음식물의 흔적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고고학적 연구에도 활용된다. 2011년 덴마크 고고학자들은 3세기 이상 방치됐던 변기통을 발견해 17세기 후반~18세기 초반 덴마크인들의 식단, 생활 방식, 건강 상태를 연구했다.
하수도에 버려진 폐수를 통해 지역사회의 대변 샘플을 분석하면 특정 지역의 인구에 숨어 있는 전염병을 밝혀낼 수도 있다. SARS-CoV-2 바이러스(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약 40%는 대변으로 바이러스를 배출한다. 이 점에 착안해 하수 샘플을 검사하면 지역사회에 퍼진 바이러스를 탐지하는 시간을 일주일 정도 앞당길 수 있다. 2020년 미국의 한 메드줄대추야자 가공 업체는 폐수 샘플링을 통해 코로나19 증상자들을 신속히 발견하고 격리시킨 덕분에 감염 확산을 막고 영업에 대한 타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똥을 경시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한 에너지원을 낭비하는 일이다. 메탄은 대표적인 온실가스 중 하나이지만, 남은 음식물이나 똥 같은 유기성 폐기물을 사용해 만들어진 ‘식물 유래 바이오메탄’(재생 천연가스)은 탄소중립 에너지다. 분뇨 슬러지(하수 또는 폐수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부유 물질이 가라앉아 생긴 침전물)는 액화시켜 바이오연료로 사용하거나 건조시켜 조리나 난방에 사용하는 바이오숯을 만들 수도 있다.
나아가 의학계 일각에서는 난치병 치료를 위한 의학적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이른바 대변 미생물총이식(FMT)이라 불리는 치료법이다. FMT는 장내 박테리아들이 항생제에 의해 모두 제거됐을 때 장에 박테리아를 다시 주입하는 것으로, 2011년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 소재 메이오클리닉에서 시도됐다. 당시 몇주 동안 누워 있던 환자가 이 요법을 실시한 지 24시간 만에 퇴원했다. 2013년 네덜란드에서는 FMT가 ‘최후의 항생제’로 불리는 반코마이신의 완치율(31%)을 훨씬 앞지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유럽에서는 배설물을 미생물과 벌레의 먹이로 사용하는 퇴비화 화장실을 설치하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영국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은 2014년부터 2021년까지 야외 행사장에 퇴비화 변기를 1300개 이상 사용했다.
저자는 인식의 전환을 요청한다. “지구를 지배하는 거대 동물로서 우리는 자연을 대체하거나 억압하는 대신 자연의 순환과 일치하는 가치의 순환을 복원하고 확장할 능력과 책임을 가진다. 똥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아니지만, 똥은 변화의 시작이 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