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선데이] 자살유가족 문제 해결, 정확한 통계 필요하다

2025-02-14

나는 자살유가족이다. 18년 전 이맘때, 어머니는 우리 가족이 살고 있던 아파트 거실에서 베란다로 나가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온몸이 부서진 어머니를 껴안고 울부짖을 때 코를 스쳤던 짙은 피 냄새, 다급하게 울리던 119구급차 사이렌 소리, 병원 응급실에서 어머니에게 사망 선고를 하던 의사의 건조한 목소리.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당시의 기억이 불과 몇 시간 전에 벌어진 일처럼 생생하고 아프다.

2023년 자살 사망자 8.3% 늘어

자살률 OECD 국가 중 단연 1위

유가족 자살률 일반인의 6~20배

불편한 문제지만 관련 대책 필요

나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며 맞은 모든 조문객에게 사인을 심장마비라고 거짓말했다. 사인을 밝혔을 때 돌아올 반응이 두려웠다. 어머니는 도대체 왜 그랬니, 어머니가 그렇게 될 때까지 다른 가족은 도대체 뭐 했니… …. 자살이 금기시된 죽음이라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라는데, 자살유가족은 거의 눈에 띄지 않으니 말이다. 오히려 더 숨어들었다는 기분이 든다. 이제 자살 대신 ‘극단적 선택’이라는 회피성 표현이 익숙해진 걸 보면 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많은 자살유가족이 애도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고립된다. 나도 그랬다. 타인에게는 물론 남은 가족과도 고통을 공유할 수 없어 홀로 슬퍼하며 죄책감을 느꼈고 때로는 분노했다. 한 달 넘게 외출하지 않고 말 한마디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죽어야 이 고통이 끝난다는 자기 파괴적인 결론에 다다르기도 했다. 그런 날에는 높은 건물 난간을 보면 뛰어내리고 싶다는 충동을 참기가 어려웠다.

내 진정한 애도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10년을 훌쩍 넘긴 뒤에야 이뤄졌다. 나는 더 희미해지기 전에 어머니를 소설로 남겨야겠다고 결심하고 그 흔적을 몇 년에 걸쳐 더듬어 나갔다. 어머니가 생전에 남긴 몇 권의 일기장, 남은 가족의 증언, 내 기억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를 썼다.

소설을 통해 놀라운 경험을 했다. 소설을 쓰는 동안 어머니에 관해 몰랐던 많은 사실을 알게 됐고, 남은 가족과 뒤늦게 고통스러웠던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를 위로할 수 있었다. 내게 자살유가족이라고 고백하는 독자가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그중에는 나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도 있었다. 그들을 보고 오히려 내가 자살유가족이라고 모두에게 고백할 용기를 얻었다.

동시에 실망했다.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자살 관련 통계와 연구 자료 수집에 공을 들였는데, 자살유가족 문제를 다룬 유의미한 공식 통계가 없었다. 연구 자료들도 저마다 내놓는 수치가 달라서 온전히 신뢰하기가 어려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자살은 심각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고, 2차 감염자는 자살유가족이라는 점이다.

통계청이 지난해 말에 발표한 ‘2023년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전체 사망자 수는 35만2511명으로 전년(37만2939명)보다 5.5% 줄어들었다. 반면 자살 사망자는 1만3978명으로 오히려 전년(1만2906명)보다 8.3% 늘어났다. 하루 평균 38명이 자살했다. 지난 2013년(1만4427명) 이후 최다인데, 세상이 지나치게 조용해서 섬뜩하다. 내가 접한 여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자살유가족의 자살률은 일반인보다 적게는 6배, 많게는 20배 이상 높다. 오차를 고려해도 무시할 수 없는 수치이며, 자살유가족의 자살률도 크게 오르리라는 예측은 합리적이다.

출산율 제고는 국가의 미래를 위해 중요하다. 그에 못지않게 있는 사람을 지키고 돌보는 정책 마련도 중요하다. 연령대별 사망 원인을 살펴보면 자살은 10대부터 30대까지 1위이고 40대와 50대에선 2위다. 자살 사망자 다수의 연령대가 생산연령인구(경제활동이 가능한 만 15~65세 인구)와 겹친다. 그들 중 상당수는 자살유가족일 거라는 추측이 무리하진 않다고 본다. 자살유가족의 자살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앞으로 생산가능인구 한 명 한 명이 소중해질 국가 입장에서도 손실로 다가올 문제다.

입에 올리기 불편한 주제라는 이유로 자살유가족 문제를 외면하는 게 옳은가. 정책은 막연한 추측을 근거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책 입안은 정확한 정보에 근거해야 하며, 그 시작은 통계 작성이다. 정부가 국민이 죽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통계를 지금까지 작성하지 않았다는 건 무책임하다. 정확한 통계 작성은 자살유가족 문제를 구체적으로 논의하고 정책을 마련하는 첫걸음이 되리라고 본다.

정진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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