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사태 이후 글로벌 고객사들이 한국으로 출장을 안 옵니다. 장기 공급 계약 때문에 잡은 미팅들이 줄줄이 취소돼서 걱정이 큽니다.”
국내 한 수출 대기업의 임원 A씨는 25일 이렇게 토로했다. 탄핵 정국으로 해외 고객사의 발길이 뚝 끊겼을 뿐 아니라 내년 사업계획도 확정하지 못했다면서다. 그는 “투자 계획 등 의사결정을 하기 힘든 상황이라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질까 우려된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기업들은 국내 정치적 상황으로 인한 대외신인도 하락을 가장 우려한다. 외국인 투자자 이탈과 더불어 해외 수주·인수합병(M&A) 등 경영 활동에 차질이 생길 수 있어서다. 대기업 B사 역시 최근 해외 기업과 진행 중이던 M&A 논의가 탄핵 정국 영향으로 중단돼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치적 혼란이 장기화하면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받아 기업들의 조달 금리가 높아지는 등 경영 활동에 어려움이 커진다”라며 “결국 경제는 심리가 중요한데, 한국에 대한 외국인 직접투자(FDI) 등이 줄어들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기업들은 해외 바이어와 파트너사의 상황 문의에 대응하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재계회의 총회에서도 ‘앞으로 한국 상황은 어떻게 되느냐’ ‘동맹 관계에는 문제가 없는 것이냐’ 등 미 정·재계 인사들의 문의가 이어졌다. 익명을 요청한 대기업 관계자는 “해외 고객들사에 한국 경제는 문제 없다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는데,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상당 부분 민간에 떠넘겨진 것”이라며 “정치적 혼란을 경제계가 각개전투로 회복해야 하는 상황이 말이 되느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 리더십이 불안한 상황도 문제다. 다음 달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로부터 한국이 정책 협상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우려하는 기업들이 많다. 배터리 업계의 경우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폐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데, 한국의 목소리에 힘이 빠질까 걱정이 크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도 주지사·주의회 등을 통해 아웃리치(물밑접촉)를 하고 있으나 정부의 역할도 커 민관 합동 대응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제단체들은 잇달아 “한국의 경제는 문제없다”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류진 회장 명의로 31개국 경제단체 33곳의 회장들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 경제에 대한 신뢰와 지지를 요청했다고 이날 밝혔다. 한경협은 서한에서 “최근 정치적 상황에도 한국 경제는 견조한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높은 국가신인도를 바탕으로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고 있다”며 “최근 사태가 한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최근 일련의 어려움에도 한국 경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며 128개국 세계 상의 회장과 116개국 주한 외국 대사에게 서한을 보냈고, 윤진식 한국무역협회 회장도 68개국 237개 협력기관에 서한을 보내 “한국 경제의 회복력과 신뢰감을 해당국의 현지 기업에 전달해 달라”고 요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