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올인이 가져올 리스크

2025-05-08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한국 교육 찬양론자였다. 그는 대통령직에 있을 때 교육열과 교사에 대한 존경심 등을 예로 들며 여러 차례 한국 교육을 극찬했다. 오바마의 칭찬을 들으면서 어리둥절했던 기억이 난다. 딱히 창의적이지 않은 입시교육, 교과 내용을 달달 외우는 암기식 교육인 한국 교육을 부럽다고 하니 말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부통령인 J D 밴스는 오하이오주의 쇠락한 제조업 도시 미들타운 출신이다. 그가 쓴 자전적 에세이 <힐빌리의 노래>는 지역사회의 총체적 붕괴에 대한 이야기다. 일자리 소멸도 문제지만, 공교육 시스템도 훼손됐다. 오바마 대통령이 딱히 창의적인 인재는 아닐지라도, 규범적 교양인을 만들어내는 데는 장점을 가진 한국 교육을 부러워했을 수도 있었겠구나 싶었다.

논란의 인물인 일론 머스크가 트럼프 행정부의 정부효율부 수장 자리에서 물러나 테슬라로 돌아갈 모양이다. 두꺼운 ‘벽돌책’인 머스크의 자서전을 읽었다. 자서전에서 그려진 머스크는 혁신가였지만, 매우 공격적인 기질에 인종주의적인 성향도 드러내고 있었다. 평상시 SNS를 통해 접한 머스크의 발언에서 받은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머스크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테슬라와 스페이스X 등과 같은 혁신적 기업을 만들 수 있었을까?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 한국적 풍토에서 머스크와 같은 캐릭터가 수용되긴 어려웠을 것이다.

생산까지 미국에서 하라고 ‘압박’

1970년대 이후 글로벌 경제는 미국은 원천기술을 개발하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 만든 표준에 기반해 생산하는 분업구조를 발전시켜왔다. 미국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무형의 경제에서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냈다. 미국은 변이(variation)를 이뤄내는 데 치중하면서, 새로운 기술적 원천을 발굴했다. ‘대여섯 번 틀려도 한 번만 맞으면 대박’을 치는 혁신이 내재화됐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이 정해놓은 규칙을 수용(retention)하면서 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되지 않는 공정’을 수행해왔다. 대량생산과 통일성, 집단주의 등이 동아시아 경제의 내재적 특성들이다. 대량생산 체제하에서 표준을 벗어나는 국외자(outlier)는 불량품과 다름없다. 한때 한국 경제에서 유행했던 ‘식스 시그마’는 평균에서 벗어나는 불량을 잡아내는 과정으로서, 동아시아 경제의 정체성에 가장 잘 맞는 품질관리 프로그램이었다.

평균에서 크게 이탈한, 다른 표현으로는 표준편차가 매우 큰 머스크와 같은 인물은 ‘식스 시그마’ 사회에서는 존중받기 어렵다. 한국의 주입식 교육도 한편으론 글로벌 자본주의 분업구조에서 한국이 맡은 역할에 부합하는 인재 배출 시스템이었을 수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에 이어 트럼프 정부도 이젠 생산까지 미국에서 하라고 다른 나라들을 압박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보조금 지급이라는 인센티브를 통해, 트럼프 정부는 관세라는 페널티를 통해 국외 생산시설의 미국 내 이전을 강요한다.

중국의 침공 가능성이라는 실존적 위협을 받고 있는 대만은 본토로부터의 독립성을 강조하는 민진당 집권 이후 부쩍 친미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만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 TSMC도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이 만들어지자마자 대미 투자를 결정했다.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건설한 팹(반도체 생산시설)에서는 작년부터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미·중 갈등이 지속되면서 글로벌 밸류체인이 확실히 분절된다면 피닉스 공장이 TSMC의 장기적 돌파구가 될 수도 있겠지만, 경제성을 갖추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2024년 TSMC 피닉스 공장은 4억4000만달러(약 62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공장 가동 초기에 수반되는 감가상각비가 큰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미국의 높은 인건비도 적자폭을 키우는 데 영향을 줬다. TSMC는 미국 공장의 운영비용(operation cost)이 대만보다 2배 이상 높다고 밝히고 있다. 높은 생산비도 부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훈련된 인력을 충원하기 어렵다는 고민도 있다. 컨설팅업체 맥킨지는 미국에서 부족한 반도체 인력이 2029년에는 14만5000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창의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 창업자들을 배출해내는 것은 미국 교육의 경쟁력이지만, 동아시아와 같은 생산인재 육성까지 잘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트럼프 ‘관세전쟁’ 모두에게 부담

얼마 전 중견 철강회사 최고경영자(CEO)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트럼프 정부의 철강 관세 부과로 걱정이 많았다. 미국은 외국산 철강에 대해 25%의 관세를 지난 3월부터 부과하고 있다. 마진이 많이 남지 않는 철강업에서 25%의 관세 부담을 미국 내 최종 수요자에게 전가하기 쉽지 않다는 고민을 토로했다. 관세를 피하기 위해서는 미국에 공장을 지어야 하는데, 마진율이 낮은 철강산업에서 대규모 투자를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공장을 짓는다고 하더라도 운영비용 증가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높은 인건비도 부담스럽지만, 공장에서 일할 양질의 노동자를 구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이 CEO는 미국에서 생산을 했을 때 공장건설에 들어가는 비용과 증가할 운영비용 등을 회수하는 데 50여년이 걸릴 것으로 봤다. 기업이 의사결정을 내리기에는 가늠이 안 되는 긴 시간이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밸류체인 재편이 항구적 질서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지속되더라도 그 양상이 관세전쟁이라는 외피를 쓰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두에게 부담이 너무도 크기 때문이다. 업종이나 기업의 형편에 따라 다른 선택이 나올 수 있겠지만 ‘미국 올인’을 기정사실화하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한국이 1990년대 이후 30년 동안 경험했던 자유무역의 경험이 보편성을 가진 항구적 질서라기보다는 ‘한때의 유독 좋았던 시절’이었다면, 최근 수년간 나타나고 있는 미국 주도의 밸류체인 재편 시도 역시 ‘극단적 경제적 비효율이 받아들여졌던 한때의 특수한 경험’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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