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땅 도련님 “양식은 노린내!”…기생 방석집만 간 진짜 속내

2025-11-16

모던 경성, 웨이터 50년

1999년 7월, 어떤 대학생들은 소개팅을 앞두고 다음 문장을 연습하곤 했습니다. “카푸치노 핫으로, 샷 추가해서 테이크아웃할게요.” 서울 이화여대 앞에 스타벅스 1호점이 막 개점했을 때였거든요. 신상 핫플인 곳에서 소개팅 상대에게 좋은 인상을 주고 싶어 하는 심산이었지요. 커피 테이크아웃 문화가 보편화하면서 뉴욕타임스 같은 매체에도 주문 잘하는 법이 소개되곤 했습니다. “카페라떼 쓰리 샷으로 핫 폼(foam)은 반 정도만 주시고, 우유는 저지방으로, 온도는 너무 뜨겁지 않게, 테이크어웨이로 해주세요”라는 식이었죠.

약 100년 전, 서울이 경성이던 시절엔 양식당이 그러했습니다. 충무로가 일본식으로 ‘혼마찌’라고 불리고, 양식당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죠. 미묘한 대결 구도 역시 형성됐다고 합니다. 조선인 대 일본인, 같은 민족 중에서도 유학파 대 도련님의 구도였죠. 한국인 1세대 웨이터인 이중일씨가 맛깔나게 풀어내는 한국의 양식 역사, 이번 주에도 한 상 맛있게 차려드립니다.

버터와 우유를 구하기 어려우니 아예 목장을 차려버린 윤치호 선생의 아들 이야기부터, 수프 먹는 법을 몰라 쩔쩔맸던 부잣집 도련님들 이야기까지, 맛있게 읽어 보시죠. 마지막엔 보너스로 양식 제대로 먹는 에티켓까지 깔끔하게 싹 정리해 드립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다양한 관련 서적과 사료를 참고했습니다. 보완해 추가한 내용은 파란색으로 표시했습니다. 참고문헌 목록은 기사 끝에 적시했습니다.

그 옛날, 무성영화 변사의 목소리처럼 AI로 생성한 오디오로도 기사를 ‘들으실’ 수도 있어요. 기사 중간에 있는 오디오 버튼을 살짝 눌러 주세요. 이중일씨의 이야기는 매주 월요일 찾아옵니다.

모던 경성 웨이터 50년⑦ “노린내 난다”며 양식 싫다던 도련님 속마음

1971년 3월 5일자 중앙일보

좌웅 윤치호 선생 댁에서 양식이 맛있다고 소문이 났고, 그 양식이 대중에게 흘러들어간 곳이 바로 ‘YMCA 그릴’ 식당이었다. 당시 대중 식당엔 일식인지, 양식인지 구분이 어려운 어중간한 것들이 판을 쳤다. 일본 문화가 마구 쏟아져 나오는 시대였다. 특히 현 충무로 일대는 당시 ‘혼마찌(本町)’라고 불렸다. 일본에서 특정 도시의 번화가 또는 가장 역사가 오랜 곳 등을 일컫는 말을 그대로 갖다 붙인 것이다.

이곳엔 민간 양식집인 청목당(일본인이 경영)을 비롯해 일본 책 가게며 다방·카페 등이 문을 열었다. 마치 도쿄의 긴자(銀座)의 한 모퉁이를 옮겨다 놓은 양, 게다(일본식 나막신)짝 소리가 드높았을 무렵이다. 구미 유학에서 갓 돌아온 조선인 기독교계 인사며 개화 지식인들은 이것이 아니꼽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종로의 YMCA 그릴에 모여들었다. “여기가 진짜 양식이다”라고 본때를 보여주자는 뜻이었다. 양식에서도 민족 감정의 대결이 벌어진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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