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의 휴대폰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렸고, “Time to BeReal”이라는 알림과 함께 2분의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필터도, 보정도, 재촬영도 없이 지금 이 순간을 찍어야 했죠. 누군가는 도서관 책상 앞에서, 누군가는 엉망인 머리 상태 그대로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이후 이들의 사진은 ‘꾸밈 없는 진짜 일상’을 공유하자는 트렌드를 만든 SNS 앱 ‘BeReal(비리얼)’를 타고 친한 소수의 친구에게만 공유됐어요.
여전히 많은 SNS에서 팔로워 수와 조회 수가 중요한 지표로 여겨지지만, 일부 사용자들은 더 이상 이런 경쟁에 매력을 느끼지 않습니다. 대신 ‘친한 사람 몇 명과 일상 한 조각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 ‘꾸미지 않은 나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적정 크기의 네트워크’를 선호해요.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앱 유행이 아니라, SNS를 바라보는 이용자 인식 자체가 다양해지고 있음을 뜻합니다.

확장에서 친밀로…폐쇄형 SNS의 부상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대부분의 SNS는 ‘팔로워 수’라는 숫자 게임을 벌이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고, 더 많은 ‘좋아요’를 받고, 알고리즘에 의해 발견되는 것이 성공의 지표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용자들은 지쳤습니다. 완벽한 각도, 완벽한 조명, 완벽한 텍스트를 준비해야 하는 SNS는 더 이상 ‘나’를 공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브랜딩해야 하는 무대가 되어버렸으니까요.
사용자들이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틱톡 등 확장형 SNS에서 이탈하는 가장 큰 이유는 과도한 노출 압박과 알고리즘 피로입니다. 이는 ‘꾸며진 나’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과, 알고리즘이 결정하는 피드 구조가 만드는 과잉 자극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야기했어요.
반면 폐쇄형 SNS 서비스는 ‘친밀성’이라는 오래된 가치를 기술적으로 복원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보여요. 첫째, 의도적인 네트워크 제한이에요. 비리얼(BeReal), 로켓(Locket) 등 몇 년 전부터 등장한 폐쇄형 SNS는 친구 수를 제한하거나 초대 기반으로만 친구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20명 남짓한 소수의 친구들과 연결되거나 같은 학교 커뮤니티에서만 작동하죠.
둘째, 시간성과 일회성입니다. 비리얼은 하루 한 번 뜨는 알림에 맞춰 2분 안에 사진을 찍어야 하고, 로켓은 친구의 사진이 스마트폰 위젯에 즉시 나타나요. 랩스(Lapse)는 사진이 마치 필름처럼 ‘현상’되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마지막으로 편집과 보정의 제거입니다. 이들은 필터, 편집, 보정 기능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진을 찍고 공유하도록 해요. AI 알고리즘이 아닌 시간순으로 피드에 노출되고요. “노출보다 관계, 꾸밈보다 순간, 확장보다 친밀”이라는 핵심 가치를 추구합니다.
비리얼은 2022년 서구권 Z세대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끌며 전 세계 1억 회 이상 다운로드, 7350만명의 활성 사용자를 기록했습니다. 2025년 현재는 약 4000만명으로 감소했지만, 최근 일본에서는 450만명의 월간 활성 사용자를 기록하며 일본 Z세대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어요. 최근엔 인기 아이돌 아이브(IVE) 멤버 이서가 유튜브에서 비리얼을 사용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죠. 로켓은 1000만 회 이상 앱 다운로드 이후에도 월간 50만 건의 다운로드를 꾸준히 유지하며, 작지만 지속 가능한 친밀함을 구현했어요.

순간성의 회복과 폐쇄성의 딜레마
폐쇄형 SNS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알고리즘 피로에 대한 반작용입니다. 틱톡과 인스타그램 릴스의 ‘무한 스크롤’은 중독적이지만 본질적으로 수동적 경험입니다. 사용자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선택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구조로 흘러가면서 피로가 누적되었죠. 이에 반해 폐쇄형 SNS는 알고리즘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소수의 가까운 사람과 교류하는 원초적 소셜 경험을 복원해요.
이러한 플랫폼들은 ‘피드 영속성’을 의도적으로 줄입니다. 비리얼의 하루 한 장, 랩스(Lapse)의 현상 시간이 있는 사진, 로켓(Locket)의 순간 포착 방식처럼 “지금, 이 순간만 존재하는 콘텐츠”가 중심입니다. 이는 SNS를 ‘기록의 공간’에서 ‘경험의 공간’으로 전환시키는 시도이며 꾸미기, 필터, 노출 경쟁에서 벗어난 더 가벼운 소통 방식을 제공해요.
그러나 폐쇄성은 분명한 양면성을 갖고 있습니다. 좁은 관계망은 친밀감을 강화하지만 네트워크 효과는 현저히 약해지죠.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가치가 커지는 대표적 확장형 SNS이니까요. 하지만 폐쇄형 SNS는 친구 20명이면 충분하며 이용자 수가 사용자 경험에 큰 차이를 만들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성장 속도와 비즈니스 확장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어요.
이 구조적 한계는 수익 모델의 부재로 이어집니다. 광고가 거의 없고 인플루언서 기반 노출 경제도 존재하지 않는 형태에서는 서비스 개선과 기능 확장이 어려워요. 실제로 비리얼의 급격한 사용자 감소나, 초기 주목을 받았다가 유지에 실패한 다수의 폐쇄형 SNS 사례는 이러한 문제를 잘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폐쇄형 SNS가 지속적으로 선택받는 이유는 명확해요. ‘너무 큰 인터넷’이 주는 피로감 때문입니다. 광대한 노출과 알고리즘 경쟁의 세계에 지친 이용자들에게는 가까운 사람에게만 보여주는 작고 안전한 공간이 오히려 더 매력적인 거죠.

AI 시대, 작지만 진짜인 네트워크의 미래
사용자들의 SNS 이동은 단순한 유행이 아닙니다. 이는 소셜미디어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다시 시작되었다는 신호에요. 좋아요 경쟁보다 가까운 친구들과의 일상을 원하고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끝없는 피드보다 소중한 일상의 순간을 선호하며 불특정 다수의 시선보다 소수의 진짜 관계에 집중하는 흐름입니다.
생성형 AI 시대가 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어요. AI가 만든 완벽한 영상과 이미지가 넘쳐날수록 사람들은 오히려 ‘진짜’에 대한 갈증을 느껴요. 완벽하게 연출된 AI 일몰과 친구가 급하게 찍은 흐릿한 사진 중 어느 쪽이 더 마음에 남는지를 물어보면 많은 이용자가 후자를 선택합니다. AI의 완결성보다 인간의 흔적과 진정성을 더 가치 있게 여기기 때문이죠.
또한 AI 추천 알고리즘은 사용자를 가장 잘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그 과정에서 이용자는 점점 주체성을 잃어갑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스스로 탐색하기보다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구조로 흐르기 때문이에요. 폐쇄형 SNS는 이러한 흐름을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친구 목록을 사용자가 직접 선택하고, 콘텐츠는 시간순으로 단순하게 흘러가죠. AI가 개입하지 않은 사람 간의 직접 연결이 이들의 핵심 가치입니다.
폐쇄형 SNS는 이제 하나의 트렌드를 넘어 새로운 소셜미디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어요. SNS의 미래는 더 크고 더 화려한 확장 경쟁이 아니라, 더 작고 더 진짜 같고 더 인간적인 방향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