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보하

2025-02-02

‘소확행’이 지고, ‘아보하’가 뜬다. 불확실한 미래의 행복을 좇기보다는 일상 속 손에 잡히는 작은 행복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소확행이 어느새 ‘약간 비싸지만 지불가능한 가격대의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할 때 느끼는 만족감’이라는 의미로 변질됐다. 명품 가방을 구매할 때, 밥값보다 비싼 디저트를 먹을 때, 사람들은 주저 없이 소확행 해시태그를 붙인다. 소확행 트렌드가 우리 사회를 휩쓸면서 행복은 언제든 쉽게 닿을 수 있는 가치처럼 흔해져 버린 것이다. 새벽 5시 미라클 모닝 인증샷을 남기고, 집에서 한껏 세팅해놓고 홈술하는 사진에 ‘#소확행’만 달면 그만이다. 이처럼 사람들이 강박적으로 행복을 외치는 사이, 행복을 좇지 않는 삶의 태도는 어느새 죄악이 되었다. 행복을 과시하는 소셜미디어 광풍에 동참하고자 해외여행 중 최대한 자연스러운 순간의 사진들을 찍고 SNS에 올릴 사진을 골라 본 적 있는가? 여기서 의문이 든다. 이것이 진짜 행복일까?

행복 과시 ‘소확행’에 대한 반발

‘아주 보통의 하루’ 추구 늘어

내 행복에 남들 평가 받아야 하나

안온한 삶 원하는 트렌드가 대세

‘아주 보통의 하루’의 약자인 아보하는 2018년 이후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에 대한 피로이자 반발이다. 작더라도 확실하게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행복을 방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니었을까?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지며 계층 간의 격차가 더 견고해지고 있으며, 자랑과 과시로 가득한 소셜미디어가 우리의 일상을 호령한 지도 오래다. 행복 담론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행복이다’라는 정의도 버겁다. 행복하고자 무엇을 하는 것도 싫고, 나의 행복을 남들로부터 평가받기도 싫다. 그저 원하는 것은 ‘무탈하고 안온한 하루’다. “오늘 어떻게 보냈어?”란 친구의 질문에 “특별한 일 없이 그저 그런 하루였어”라고 대답하는 내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위로를 듣고 싶은 것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통제하기 힘든 재난, 재해에 대한 불안감이 평범한 일상의 중요도를 높인다. 치솟는 물가, 안팎으로 불안한 정세에 혼돈의 날들이 계속된다. 매일매일이 투쟁이다시피 힘들어진 사회에서 오늘을 힘껏 살아내는 것만으로 스스로 대견하지 않은가? 꼭 행복까지 이르지는 않았더라도 말이다. 누군가는 보통의 하루에 집중하는 사람들에 대해 도전정신이 없다거나, 너무 지쳐서 그런 것이라는 평가를 내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게으른 것도 탈진한 것도 아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오늘 하루를 살아냈지만, 앞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에 제자리 뛰기처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고자 하는 삶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다. 유치한 영화를 보며, 장난감을 모으며, 치맥과 함께 야구 중계를 보며, 각자의 일상에 몰두하고 또 그럴 수 있는 안온한 하루에 감사할 따름이다.

운동 영역에서도 ‘#소확행’이 어울리던 골프·테니스 같은 고비용 운동의 자리를 ‘#아보하’와 함께 달리기·등산 같은 맨몸 운동이 대신한다. 되도록 긍정적 사고를 하기 위해 명상을 하는가 하면, 안온한 하루를 보낸 사실에 감사하고자 일기를 쓰고, 뜨개질이나 필사를 하며 평온한 시간을 보낸다. 세팅용 디저트가 아닌 매일 사용하는 치약이나 양말에 돈을 쓰며 무언가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일상적인 소비로 어쩌면 가장 안온한 안전지대를 누리고자 한다. 너무 행복하지도, 너무 불행하지도 않은 일상, 그저 무난하고 무탈하고 안온한 삶을 가치 있게 여기는 태도를 추구하는 아보하는 오늘날 진정 주요한 트렌드 용어가 되었다. 한국 사회의 행복 담론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종교처럼 굳건했던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는 믿음에서 한 걸음 비켜서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인공지능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지 못해도, 급변하는 트렌드를 숨 가쁘게 따라가지 못해도, 나는 여전히 소중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은 보통의 하루를 지켜내는 것조차 결코 쉽지 않다. 코로나19, 흉기 난동, 데이트 폭력, 이상기후, 비행기 사고처럼 예측 불가한 재난 앞에서 우리 일상은 얼마나 깨지기 쉬운가?

행복해지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다. 오늘 하루를 무탈하게 살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하다. 그저 무난하고 무탈하고 안온한 삶은 그 자체로 가치롭다. 아보하, 강박적 행복으로부터 벗어나자. 행복의 상대어는 불행이 아니라 일상이다.

이향은 LG전자 CX담당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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