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마을 한글문학기획전, 고려인 시인 박현의 노래

2025-09-03

[전남인터넷신문]광복 80주년을 맞은 올여름, 역사마을 1번지 광주 고려인마을 고려인문화관(관장 김병학)에서는 잊혀진 고려인 시인과 소설가, 극작가의 이름을 다시 부르고 있다.중앙아시아의 거친 바람과 모래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던 한글문학의 불꽃, 그 속에는 많은 빛나는 이름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탈북 고려인 2세대 시인 박현(본명 박영준, 러시아명 박에브게니, 1936~1998)의 이름이 관람객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박현의 시는 단순히 강제이주의 고통을 반복하지 않는다. 그의 언어에는 경계 위에서 살아야 했던 자의 긴장감, 정체성을 잃은 이의 고독, 그리고 자유를 향한 불타는 갈망이 선명하게 담겨 있다. 현실의 억압 속에서도 언어와 자유를 지키려는 저항의식이 그의 작품 곳곳에서 살아 숨 쉰다.

그의 한 시 구절은 이렇게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떠나온 땅도 / 맞이한 땅도 / 나를 품지 않는다.” 짧은 몇 줄이지만, 고향에서도 낯선 존재로, 정착한 땅에서도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고려인의 처절한 정체성 혼란이 날카롭게 스며들어 있다.

다른 시인들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더욱 뚜렷하다. 리 진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언젠가 돌아가리라는 희망을 노래했다면, 박현은 돌아갈 수 없음을 받아들이며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의지를 노래했다.

양원식이 카자흐스탄의 풍광과 고려인의 일상을 서정적으로 담았다면, 박현은 더 직접적이고 긴장감 있는 언어로 저항과 자유의 열망을 드러냈다. 그의 문학은 곧 고려인 문단에서 “향수의 노래”에서 “저항의 노래”로의 전환이었다.

일상에서는 러시아어가 주 언어였지만, 박현은 시를 쓸 때만큼은 반드시 한국어를 고집했다. 이는 단순한 언어 선택이 아니라, 민족의 뿌리를 놓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그의 작품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언어로 읽히면서, 동시에 한국 문학이 다루지 못했던 디아스포라의 상처와 이중적 삶의 흔적을 담아냈다.

박현의 시는 결국 개인의 고백을 넘어, 민족 전체의 아픔과 갈망을 압축한 기록이었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 현실 속 불안, 그리고 억압에 대한 저항까지 그의 언어 속에 깃들어 있다.

광복 80주년의 이 순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우리 가슴을 흔들고 있다. “당신들은 그 자유를 끝내 지켜냈는가? 그 자유를 향한 불타는 갈망을 아직도 가슴 깊은 곳에서 잊지 않고 있는가?” 그 물음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시대를 건너 우리 심장을 찌르는 칼날이 되어, 침묵할 수 없는 양심, 외면할 수 없는 역사의 호소로 우리를 붙잡고 있다.

고려방송: 안엘레나(고려인마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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