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명(功名)과 부귀란
이덕일(1561∼1622)
공명과 부귀란 여사(餘事)로 혀여 두고
낭묘상(廊廟上) 대신(大臣)네 진심(盡心) 국사(國事) 하시거나
이렁셩 저령셩하다가 내종 어히 하실꼬
-칠실유고(漆室遺稿)
나랏일을 하는 자세
임진왜란 때 무과에 급제하여 왜적과 맞서 싸웠던 이덕일(李德一)이 광해군 시기에 계축옥사로 삭직돼 고향 함평에 머물며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연시조 우국가(憂國歌) 28수를 남겼다. 소개한 작품은 제12수이다.
조정의 높은 자리에 있는 대신들은 자신의 이름을 드날리거나 부귀하게 되는 일은 제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나랏일을 하여야 한다. 이리저리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나중에 그 뒷감당을 어찌하려고 한단 말인가?
벼슬이 병조좌랑에 이르렀던 칠실(漆室) 이덕일이 당시 고관들의 행태를 질타하고 있다. 지금의 언론인이자 사관이라고 할 수 있는 춘추관 기사관으로서의 필법에 서릿발이 어린다.
우국가에는 전쟁의 실상과 당쟁에 대한 비판, 피폐해진 현실에 대한 개탄이 잘 드러나 있어 오늘날에도 교훈이 된다.
유자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