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영업을 하는 A씨(67)는 최근 보험 해지를 두고 고민이 깊다. 몇년 전 가족의 경제적 안전망을 마련하고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 종신보험과 건강보험에 가입했지만, 경기 침체로 가게 운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매달 40만원이 넘는 보험료를 줄이면 생활이 한결 나아질 것 같지만 막상 해지하려니 지금까지 납입한 돈이 아깝고, 건강문제로 재가입이 어려울까 걱정돼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생명보험사들의 해약환급금 규모가 4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 침체로 자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보험을 해지하는 사례가 늘어난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해 생명보험협회는 11월말 기준 국내 생명보험사 22곳의 해약환급금을 47조9548억원으로 집계했다. 지난해 ▲5월 22조9412억원(이하누적액) ▲7월 31조8362억원 ▲9월 39조3251억원에 이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보험료 미납으로 효력 상실이 발생할 경우 납입보험료 중 일부를 돌려주는 금액인 효력상실환급금도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11월말 기준 생보사들의 효력상실환급금은 1조5276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4826억원) 대비 3.0% 증가했다.
하지만 보험을 중도 해지하면 받게 되는 해약환급금은 대부분 납입한 보험료보다 적다. 또한 중도 해지 이후 다시 보험이 필요해졌을 때 재가입이 거절될 가능성도 크다. 이처럼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보험을 해지하는 것은 그만큼 가입자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보험사들은 지난해 ‘보험 소비자 민생안정특약’을 도입해 소득이 끊긴 가입자에게 최대 1년간 보험료 납부를 유예해주고 있다. 실직(실업급여 대상), 암·뇌졸중·급성심근경색과 같은 3대 중대질병, 출산·육아휴직 등의 사유가 발생했을 때 보험사에 신청하면 1년간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정상 납부했을 때와 동일한 보장을 받을 수 있다. 유예 기간에 발생하는 이자는 보험사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보험 계약 후 1년이 지난 시점부터 신청할 수 있으며, 보험료 납입 완료 시점이 유예 기간만큼 연장된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현재 미래에셋생명·한화생명·신한라이프 등 10개 보험사가 이 특약을 운영 중이다.
보험료 감액과 감액완납 제도도 고려해볼 만하다. 두 제도 모두 보장 금액이 감소하지만, 계약 기간과 지급 조건을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감액은 보험의 보장 금액과 보험료를 모두 낮추면서 계약을 유지하는 제도다. 계약 기간과 보험금 지급조건은 변경되지 않는다. 감액한 부분은 해지한 것으로 처리해 해약환급금을 받을 수 있다.
감액완납 제도는 보험료 납부는 중단하고, 해당 시점의 해지환급금으로 새로운 보험 계약의 보험료를 완납하는 제도다. 감액과 마찬가지로 계약 기간과 보험금 지급조건은 유지하면서 보장 금액은 줄어든다. 이 제도는 보험료를 오랜 기간 납입해 해지환급금이 많이 있고 앞으로 낼 보험료가 크지 않을 경우에 유용하다.
보험금(보장 금액) 규모는 유지하면서 보험 기간을 줄이는 연장정기보험 변경도 있다. 종신보험을 일정한 시기(예를 들어 75세)까지만 보장하는 정기보험으로 변경하면서 보험료 납입은 중단하는 것이다. 다만 이를 다시 종신보험으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결정 전에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
류현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