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작심삼일도 모럴 해저드? 실손보험료 왜 자꾸 오를까

2025-03-14

[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보험시장과 시장실패

올해도 어김없이 실손보험료가 상당히 올랐다. 보도에 따르면 전년 대비 평균 7.5% 인상되었다고 한다. 14.2% 올랐던 2022년보다는 덜하지만 그래도 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또 정부가 주도하는 의료개혁특위에서는 1월 토론회에서 본인부담률을 대폭 높인 5세대 실손보험을 내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픈 것만 해도 속상한데, 왜 비용까지 자꾸 오르기만 할까.

#보험시장은 원래 그래?

보험을 제공하는 기업이나 가입하는 소비자나 시장을 관리하는 정부나 각자의 입장이 있을 것이다. 보험 가입자는 보험료나 본인부담률의 상승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고, 보험회사는 이 정도 인상률 가지고는 적자를 메울 수 없다고 울상일 수도 있다. 사실 필자와 같은 경제학자에게는 이렇게 실손보험료가 매년 상승한다든가 본인부담률이 오른다는 것이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그냥 ‘올 것이 왔구나’하는 느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보험시장은 원래 이렇다. 보험이라는 것은 원래 시장에만 맡겨놓으면 실패하기 쉬운 상품이고, 보험료나 보장 대상, 본인부담률 등이 균형상태에서 가만히 머물러 있기가 어렵다. 보험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면 적절한 수준으로 책정된 보험료를 낸 사람들이 위험으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그런 보험을 판매하는 기업이 일정한 수익을 내면서 계속 운영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시장에서 보험을 자유로이 사고팔게 해 놓으면 이렇게 효율적인 결과가 안 나온다는 얘기다. 크게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역선택’, 나머지 하나는 ‘도덕적 해이’이다.

#역선택 : 감춰진 특성의 문제

역선택(adverse selection)은 보험회사 입장에서 제일 싫어할 만한 고객이 가장 먼저 가입한다는 뜻이다. 실손보험회사의 경우 보험료는 꼬박꼬박 내는데 아주 건강해서 병원에 거의 안 가는 사람이 가장 고마울 것이고 반대로 몸이 아파서 병원 신세를 많이 지고 보험금을 많이 타가는 사람은 아무래도 좀 꺼려질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보험사가 바라는 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가 왜 실손보험에 가입하는지 생각해 보면 그 이유가 나온다. 스스로의 건강에 정말 자신이 있고 병원 갈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실손보험에 가입할까? 아니다. 백퍼센트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확률로 내가 병에 걸릴 수 있고 그러면 아주 큰 돈이 들게 될 텐데 그런 일이 있을 때 병원비를 지급해주는 보험에 가입해 두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가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본인이 (확률적으로) 부담하게 될 것 같은 병원비의 기대치보다 보험료가 더 적을 때, 즉 싼 값으로 큰 보장을 받을 수 있을 때, 그래서 가입하면 이득이 되겠다고 예상할 때만 가입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모든 가입자가 이렇게 생각하면 보험회사는 반드시 적자를 보게 된다. 낸 돈보다 더 받아갈 것 같다는 사람만 가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보험료를 높이면 해결이 될까? 아니다. 보험료를 높이면 더이상 ‘싼 값’이 아니게 되니 가입자가 더 줄어들고 그 높은 보험료를 내고도 받아갈 보험금이 더 많은 사람만 남을 것이다. 보험사의 적자는 해결되지 않는다. 일종의 악순환이다.

#도덕적 해이 : 감춰진 행동의 문제

두 번째 문제, 도덕적 해이는 보험에 가입한 사람들이 위험을 피하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완벽한 보험이 제공되면, 그래서 어떤 사고가 나더라도 금전적인 손해가 전혀 없게 된다면 그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좀 덜 하게 되기 마련이다. 위험한 일을 막으려고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것도 사실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차를 몰고 가다가 좁은 골목을 지나가게 되었다고 해 보자. 자동차를 아끼는 사람이라면 아주 조심스럽게 지나갈 것이다. 그런데 만약에 그야말로 완전한 자동차 보험이 존재해서 차가 아무리 긁히고 찌그러져도 바로 다음날이면 완벽하게 고쳐놓는다고 해 보자. 추가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러면? 긁히든 말든 대충 지나가는 사람들이 생긴다. 집을 오래 비우고 나갈 때 가스가 잠겼는지, 전등은 다 껐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던 사람도 완벽한 화재보험에 가입한 뒤에는 대충 훑어보기만 하고 그냥 나갈 수도 있다는 거다. 이렇게 되면 역선택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보험사 입장에서는 보험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손해가 된다.

도덕적 해이는 moral hazard의 번역어인데, 사실 그리 좋은 번역은 아니다. 여기서 모럴은 뭔가 착하고 도덕적이라는 느낌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노력, 성실성 이런 뜻이다. 군대에서 “군기가 바짝 들었다”라고 말할 때 그 군기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리고 골프 치는 사람들에게 익숙한 해저드라는 말은 골프장 그린 주변에 우묵하게 파여있고 모래나 물이 들어 있어서 공이 자칫하면 굴러들어가기 쉬운데 거기서 나오려면 어려운 함정, 바로 그런 거다. 보험시장에서 모럴 해저드의 엄밀한 뜻은 위험을 피하려는 최선의 노력이 흔들리면서 모럴이 해저드에 빠진 상황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인간이기 때문에 365일 24시간 군기가 바짝 든 상태로 살 수는 없어서 벌어지는 일이고 ‘아 지금은 안전한 상황이구나’라고 마음을 놓을 때 생기는 실수 같은 것이다. 보험사기라든가 과잉진료처럼 의도적이고 비도덕적인 행위, 또는 인위적으로 가격을 낮게 설정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과소비와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현실의 보험 유지 비결은

이렇게 역선택과 모럴 해저드 문제 때문에 보험시장이 실패하게 되어 있다면 현실에 존재하는 보험들은 어떻게 유지되고 있을까? 먼저 역선택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전 국민 의무 가입’이다. 보험 중에는 한국의 국민건강보험이나 자동차보험처럼 모든 사람이 의무적으로 가입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이러면 건강한 사람도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안전운전을 하는 베테랑 운전자도 자동차보험을 꼭 사야 하기 때문에 보험사 입장에서 보험금이 많이 나가는 사람만 먼저 가입하는 역선택 현상을 피할 수 있다. 실손보험은 근로자가 많은 직장에서 단체로 가입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방식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역선택을 다소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매년 나오는 통계를 보면 실손보험 가입자의 60% 이상이 연중 단 한 번도 보험금을 타가지 않았다고 한다.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해서 주로 쓰는 방법은 본인부담금이다. 위험을 완전히 피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사고가 나거나 병원에 가면 본인이 어느 정도는 금전적인 부담을 하게 하고 나머지만 보상해 주는 거다. 그러면 사람들이 위험을 피하려는 노력을 조금은 더 하게 만들 수 있다. 보험에서 ‘A, B, C는 보상해주지만 다른 것은 안된다’ 이렇게 지급대상에 제한을 두거나, 자동차보험의 대물배상 한도처럼 지급 금액에 상한선을 두는 것도 같은 역할을 한다. 이번에 논의되고 있는 실손보험 개편안에서 본인부담률을 비중증질환의 경우 진료비의 90%까지 올리겠다는 것도 동일한 맥락이다. 완벽하게 안전해졌다는 느낌을 받지 않도록 해야 ‘군기’가 유지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보험시장의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 문제는 워낙 근본적인 것이어서,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또 보험이라는 것이 원래 위험을 피하자고 만든 것이니 본인부담률을 자꾸 올리는 것은 보험제도의 취지에서 벗어난다. 모든 국민이 매일 저속노화 식단을 정확하게 유지하고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땀나도록 운동을 한다면 고혈압 환자 수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작심삼일’이라는 벽 앞에서 좌절하고 있고, 이것도 일종의 도덕적 해이다. 그렇다고 고혈압 약값의 본인부담률을 대폭 올린다면 이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훼손하게 된다. 쉬운 정답은 없다. 보험료나 보험금 지급심사 관련된 뉴스들을 앞으로도 종종 보게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태환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 서울대와 스탠퍼드대에서 공부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서 한국경제의 다양한 측면을 연구했다. 주변의 사회문화 현상을 경제학으로 해석하고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SERICEO에서 5년 간 ‘세상만사 경제학’ 강의를 맡기도 했다.

Menu

Kollo 를 통해 내 지역 속보, 범죄 뉴스, 비즈니스 뉴스, 스포츠 업데이트 및 한국 헤드라인을 휴대폰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