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에서 온 조산은 지난 3일 밤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의사당으로 진입 중이라는 뉴스를 보고 “4년 전 트라우마가 떠오르는 듯했다”고 말했다. 2021년 2월1일 미얀마에서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미얀마 군부는 국회의원과 인권운동가, 민주화 인사들을 체포했다. 거리에서 저항하는 시민들도 무더기로 잡아들였다.
한국에 있는 조산은 고향 가족·친구들과 연락이 끊겨 전전긍긍했다. 그는 비자가 만료됐지만 군부가 장악한 고국에 돌아갈 수 없어 난민 신청을 했다. “악몽 같던 날이 2024년 한국에서도 반복되면 어떡하나, 또다시 갈 곳이 없어지면 어떡하나 무서웠어요.” 그는 재한미얀마인들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5시간여 만에 비상계엄이 해제됐다.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그날 많은 한국인이 그랬듯 조산도 2차 계엄을 우려했다. 무엇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면 미얀마에서 4년 가까이 벌여온 민주화운동도 함께 후퇴할까 걱정했다.
“미얀마 사람들도 1980년 광주 5·18에 대해 다 알고 있어요. 그동안 ‘한국처럼 민주화하자’는 생각으로 싸워왔는데 한국의 민주주의가 거꾸로 가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러지 않기만을 바랐어요.”
수원이주민센터에서 일하는 킨메이타도 지난 2주 동안 같은 마음이었다.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어 국회로 들어가고, 시민들이 장갑차를 막는 모습을 마음 졸이며 지켜봤다. 한국에서 30년째 사는 그는 “미얀마에서 이어지고 있는 길고 외로운 투쟁이 한국에서도 벌어질까 걱정했다”며 “미얀마 사람들 모두 충격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는 미얀마의 위기”라는 생각으로 연대를 다짐했다. 32개 미얀마 민주화 운동 단체들이 지난 13일 ‘한국의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들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는 미얀마 민주주의의 교훈이자 여전히 소중한 좌표”라며 “한국에서 살아가는 미얀마 시민으로서 한국의 시민과 함께 미얀마, 한국을 포함 아시아의 민주주의를 지켜가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킨메이타는 “재한미얀마인들 모두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8명이 준비하던 성명에 빠르게 참여자가 늘어났다”고 했다.
조산과 킨메이타는 국회 앞에 응원봉을 들고 모인 한국 시민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한국 사회가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며 또다시 희망을 얻었기 때문이다. 조산은 “한국 사람들이 해낸 평화 집회는 한국뿐 아니라 미얀마와 아시아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모델”이라며 “미얀마도 한국처럼 민주주의를 누리게 될 날을 다시 꿈꿀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미얀마에선 사람들이 집회하려고 모이면 경찰들이 감옥에 가둬 피가 날 때까지 때린다. 총을 쏴서 죽이는 일도 잦다”며 “자유롭고 평화롭게 집회할 수 있다는 예시를 보여준 것도 감사하다”고 했다.
킨메이타는 지난 14일 여의도 집회에 갔다고 했다. 그는 “시민들이 집회 현장에서 얼마나 평화롭고 즐겁게 민주주의를 지키는지 보니까 힘이 났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서 그간 민주주의 가치를 교육해 왔기 때문에 잘 싸웠던 것 같다”며 “미얀마도 선거에 대한 교육과 민주주의 인식을 어떻게 키워나가야 할지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