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초연결시대의 계엄

2024-12-17

“계엄령이 선포된 뒤, 엄중한 언론 통제가 한반도 전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고속도로 입구의 ‘출입통제’라는 표지는 우리에게는 경고와도 같았다.”

2017년 개봉한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만섭이 태운 독일기자 피터의 실존인물인 고(故) 위르겐 힌츠 페터는 훗날 취재기(‘카메라에 담은 5·18광주현장’)를 통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1980년 5월 계엄군의 통제를 뚫고 광주 상황을 취재했다.

지난 3일 저녁 아름다운 불빛과 크리스마스 트리로 가득한 앞산겨울정원 촬영을 마치고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밤 10시가 넘어 데스크 단톡방에 ‘비상계엄 선포’라는 짧은 문장이 떴다. 첫 반응은 물음표였다. 의문이 해결되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TV를 켜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상황은 급박했다. 곧이어 일체의 정치활동을 금하고 언론과 출판을 통제하고 의료현장을 이탈한 의료인의 복귀를 명하는 내용을 담은 계엄사령부 포고령이 발표됐다. 이를 위반한 자는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는 무시무시한 조항까지 명시되어 있었다.

최근 며칠을 45년만의 계엄 선포, 6시간만의 계엄해제, 11일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렇게 간단하게 몇 개의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지만 그 과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고 후폭풍은 여전히 거세다.

2024년의 계엄은 45년전의 계엄과는 달랐다. 갑작스러운 계엄이 선포되자마자 언론 속보와 비슷한 속도로 혹은 더 빠르게 관련소식이 SNS를 통해 전파되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국회로 향해 담을 넘는 순간을 유튜브 라이브로 실시간 송출했다. 무려 240만명이 시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들은 여의도로 몰려들었다. 계엄군이 헬기를 타고 국회에 내려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모습도 누군가가 찍은 사진과 영상으로 퍼져나갔다.

과거에는 언론을 막으면 현장 소식을 알 수 없어 통제가 가능했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고 SNS를 활용하고 있는 ‘초연결사회’에는 포고령에 명시된 언론통제는 무용지물 임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트래픽이 몰리며 일시적으로 네이버 카페 접속이 제한돼 SNS까지 통제되는게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해외에 서버를 둔 텔레그램 가입자도 급증했다. 다행히 카카오톡과 X(트위터),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으로는 활발하게 정보가 공유됐다. 비상계엄 선포가 한밤의 해프닝처럼 몇시간 만에 끝나버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인터넷과 SNS를 통한 정보의 빠른 전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국민들은 각자의 신념에 따라 여의도로, 광화문으로 나섰다. 새로운 집회 문화도 생겨났다. 촛불 대신 응원봉이 등장하고, 민중가요 대신 케이팝이 울려퍼졌다. 집회장 주변의 카페와 식당에 음료수와 먹거리를 선결제하는 이도 있고 간식과 핫팩 나눔도 생겨났다. 화장실 위치와 집회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탄핵집회 플레이리스트에 음악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에도 SNS는 큰 역할을 담당했다. 집회의 본질을 흐리는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2030은 그들 나름의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어가며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여줬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러한 SNS의 순기능과 함께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SNS를 통해 생각이 다른 이에게 쏟아지는 공격은 ‘마녀사냥’을 연상케했다.

지난 7일 윤 대통령의 첫 번째 탄핵 소추안 표결에 불참한 국민의힘 곽규택 의원의 형이 영화 ‘소방관’을 연출한 곽경택 감독임이 알려지며 영화를 보지 말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기도 하고 유가공업체 푸르밀은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처가로 알려지면서 불매 운동을 부추기는 글이 이어지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과 밀접하다고 추측되는 기업을 정리한 리스트도 등장했다. 윤대통령의 SNS계정을 팔로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표적이 된 이도 있다. 가수 임영웅은 누군가보낸 다이렉트 메시지에 ‘제가 정치인인가요. 목소리를 왜 내요’라고 답한 캡처본이 퍼지면서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곤욕을 치렀다. 탄핵을 반대한 쪽에서는 탄핵 촉구 집회에 먹거리와 핫팩을 지원한 아이유가 광고모델로 활동하는 제품을 불매하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일부의 이야기다.

지난 9일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의미의 ‘도량발호’(跳梁跋扈)가 선정되었다고 발표했다. 2위는‘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후안무치’(厚顔無恥)였다.계엄 선포 전에 진행된 설문조사의 결과지만 요즘 세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필자는 2020년의 사자성어 ‘아시타비’(我是他非)를 새삼 떠올려본다.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지금 가장 경계해야 될 말이 아닌가 싶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무조건 비난하고 혐오하는 일은 없기를, 사태와 무관한 이에게 ‘연좌제’의 족쇄를 채우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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