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사태, 12일간 보며: 우린 쫄보다

2024-12-16

출처-<본지 자유게시판>

누군가 선결제한 커피를 부끄러워 받으러 가지 못하는 건지, 결제한 커피가 동이 났을까 그런지 모르겠지만 결국 자기가 커피를 싸가는 당신, 추워진 날씨 가스비를 걱정하고, 올라버린 물가에 반도 담지 못한 장바구니나 걱정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벅찬 당신은, 한낱 보잘것없는 쫄보입니다.

12월 3일

어딘가에서 모두들 각자의 일상을 지내고 있던 그날 밤, 왜국에 살고 있는 저는 습관처럼 포털 사이트의 환율을 체크하다가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평소보다 급격하게 원화 가치가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환율 차트 밑으로 관련 기사들을 훑는 중, 눈에 띄는 제목이 보였습니다.

뭐 이런 제목이었습니다. 경제에 무지한 저는 '아~ 환율 시장엔 계엄이란 경제 용어가 있나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사 내용에 쓰여 있는 '윤석열', '선포' 등의 단어를 본 순간, 뭔가 이상하다 생각했습니다.

트위터를 켜고 상황을 보니, 정말 교과서나 뉴스에서나 보던 박정희・전두환 때의 그 계엄이 선포되었습니다. 유튜브를 켜고 실시간 상황을 중계하는 방송을 찾아보며 뭐가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살면서 계엄이란 걸 겪어본 적도 없고, 계엄이 선포되면 뭐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 터였습니다. 이재명 대표는 국회로 모여달라는 말과 함께 국회 담을 넘어갔습니다.

국회 실황을 중계하는 TV・유튜브 방송들이 속속 등장했습니다. 경찰이 국회 입구를 막고 민주당 의원들이 회의장에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국회 입구에는 그 늦은 시간, 당신들 같은 쫄보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쫄보스럽게 부스스하고 급하게 주워 입은 옷차림을 하고 말이죠.

그렇게 실랑이가 한창인 즈음 TV 방송에서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이 발표됐다고 나왔습니다. 듣도 보도 못한 무시무시한 내용들이 발표되었습니다. '일체의 ㅇㅇ를 금한다거나 처단한다거나' 그런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국회에 총을 든 군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출처-<배시은 기자(경향신문)>

헬기까지 타고 와 국회로 들어가려는 군인들은 어느새 사람들에 가로막혀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무표정한 군인들과 다르게 국회 건물 입구를 막아선 사람들은 쫄보들이라 절규하듯 소리치고 군인들의 옷자락을 잡아끌었습니다. 혼자서는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 했을 것 같은데 아마도 같은 쫄보들이 함께 있으니 그런 용기가 나온 듯합니다.

한참의 실랑이를 하는 동안 선택받은 사람들은 본회의장에 모여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담을 넘어 들어간 사람들이었습니다. 무언가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계엄이란 걸 겪어본 적이 없으니, 뭐가 뭔지 몰랐습니다. 쫄보들은 본회의장에 모인 사람들을 지켜주고자 맨몸으로 옆 사람과 팔짱을 낀 채 스크럼을 짜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새벽 1시경 본회의장에 모인 190명의 사람이 안건을 상정하고 통과시켜 계엄이란 걸 해제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쯤 윤석열은 TV에 나와 녹화해 두었던 계엄 해제를 발표했습니다. 왜국에 떨어져 지내는 저도 윤석열이 TV에 나와 공표하기 전까지 마음을 졸이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국회의사당으로 달려 나간 쫄보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건지 아침까지 국회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12월 7일

윤석열이 선포한 계엄이 위헌적이며 시대착오적인 정신 나간 발악이라는 게 밝혀지고 범야권 국회의원들이 윤석열 탄핵을 국회에 발의했습니다.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들도 이를 위헌이며 내란이라 규정했습니다. 문제는 아직 윤석열이 군 통수권을 쥐고 있고, 또 계엄이란 걸 발동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12월 7일, 상정된 김건희 특검법과 윤석열 탄핵안이 국회 표결에 부쳐졌습니다. 국민의힘 의원들도 자리를 채워 300명 전원이 참여했습니다. 여당 의원들은 계엄 해제를 위해 국회로 모일 당시, 18명만 참여하고 나머지 대부분의 의원은 중앙 당사에 모여 표결을 늦춰달라 요구했었습니다. 계엄이 해제되지 않았다면, 5천만 쫄보들은 통제되고 잡혀들어가 처단당할지 모를 불안에 떨어야 했는데 말이죠.

먼저 김건희 특검법이 표결에 부쳐지고 300명 전원이 투표했습니다. 2/3 이상의 찬성이 나오면 통과였지만 찬성 198표·반대 102표가 나와 부결되었습니다. 국민의힘 의원 108명 중 6명 빼고 102명이 윤석열의 부인 1명을 지키자고 반대했습니다. 괜찮습니다. 시간은 많습니다. 당장 목숨까지 위협받는 위험은 그다음 안건이기도 했으니까요.

계엄으로 놀란 쫄보들은 하루라도 빨리 미치광이 같은 윤석열을 끌어내려 주길 바라며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여 국회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을 대표하고 대신해서 투표할 사람을 뽑았기 때문입니다. 그저 그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어서 국헌을 문란하고 국민을 농락한 윤석열의 탄핵안이 상정되자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건희 1명만을 지켜주고 본회의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범야권 의원들도 당황했습니다. 힘이 있는 그들도 어찌하지 못해 화를 내고 급기야 나가버린 그들을 향해 돌아오라며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며 외칠 뿐이었습니다.

출처-<김명진 기자(한겨레21)>

어둡고 차가운 국회 앞 아스팔트 위 쫄보들은 더욱 당황했습니다. 가진 거라곤 모여서 외치는 목소리와 손에 든 빛나는 것뿐인 쫄보들은 마이크도 없어 같이 소리쳐야 했습니다. 손에 든 빛나는 걸 들어 보여주기 위해선 손이 시려도 들고 있는 손을 내릴 수 없었습니다. 가진 것 없는 그들 중엔 그 현실에 눈물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억울했을 겁니다. 힘이 없으니까요.

무슨 짓을 또 저지를지 모를 윤석열의 탄핵 소추는 본회의장을 나가버린 국민의힘 의원들의 뒷모습과, 투표 정족수가 채워지지 않아 성립되지도 못하고 끝났습니다. 불성립이 확정되자 회의를 한다며 숨어있던 국민의힘 의원들은 웃으며 당사를 빠져나갔습니다. 윤석열은 대통령직과 군 통수권을 유지했습니다.

탄핵이 불발되고 여의도에 모인 쫄보들은 다시 내려질지 모르는 계엄령을 걱정하며 분노와 추위에 몸을 떨었습니다. 야권 국회의원들도 걱정하며 국회에서 밤을 지새웠습니다.

“지켜보는 국민이 있다고 알리려고요”

탄핵 집회 끝나고 밤새 국회 앞 지킨 직장인

출처-<오동욱 기자(경향신문)>

12월 8일~12월 13일

지난밤, 어이없게 성립조차 못 한 탄핵안으로 정치적 생물학적 수명을 연장한 윤석열이 바로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를 위험 속에서 쫄보들은 분노와 억울함, 그리고 의아함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배우고 알고 있던 상식과 정의, 대한민국을 정의하는 헌법이 상실되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도 힘들게 눈치 보며 힘없이 살아오느라 잊고 있던 내용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권력이라 했습니다. 민주공화국이라 했습니다. 남녀노소 쫄보들은 각자의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5.18 광주, 광우병 소고기, 박근혜 탄핵, 세월호와 이태원 참사 등등. 쫄보들은 모였습니다. 자신이, 자신들이 저 위에 앉아 있다고 국가의 권력이 자신들에게 있다고 착각한 그들에게 쫄보들은 민주적으로 권력을 내보였습니다.

쫄보들을 말하지 않아도 알았습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쫄보들의 주권과 권력을 침탈한 내란 반란 수괴와 그를 옹호하고 추종하는 괴뢰들에 주권은 누구에게 있고 권력은 어디서 나오는지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보란 듯이 무시하고 깔보던 내란의 수괴와 괴뢰들은 놀라기 시작했습니다. 거짓말은 기본에, 횡설수설 말을 바꾸거나 핑계를 대며 남을 탓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옷깃에 달린 배지와 계급장만 지키면, 1년 뒤 쫄보들이 개돼지처럼 다 잊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예전엔 그랬던 적도, 그랬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예전과는 다른 세대로서 특히나 쫄보들의 주권과 권력을 대표하라고 앉혀 놓은, 다시 내란을 일으킬 힘을 준 내란의힘 의원들에게 쫄보들은 일주일 동안 똑똑히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이 선거철만 되면 투표해 달라 구걸하는 그 투표권을 행사하라고. 반대하더라도 회의장에 쳐들어가 한 표를 행사하라고 쫄보들은 모였습니다.

9일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 앞

출처-<뉴시스>

12월 14일

윤석열에 대한 두 번째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 상정되는 날이었습니다. 추운 날씨, 쫄보들은 또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아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였습니다. 여전히 쫄보들은 목소리 하나, 빛나는 것 하나 외엔 가진 게 없었습니다. 달라진 거라곤 지난 12월 7일보다 더 많이 모였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오후 4시, 국회에 탄핵안이 상정되었습니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들어오고 투표가 진행되었습니다. 참석의원, 투표 인원 300명. 전부 참석했습니다.

그리고 윤석열에 대한 탄핵 소추안은 찬성 204명, 반대 85명, 기권 3명, 무효 8명으로 가결되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정신 못 차린 85명의 사람이 있었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출처-<연합뉴스>

의사봉을 3번 두드린 국회의장은 망가진 국정과 나라 경제를 살리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쫄보들 덕분이라며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12월 15일~

당신은 쫄보입니다. 가족과 친구들을 실망하게 하지 않으려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고, 힘들어도 내색도 하지 못하는 당신은 한낱 쫄보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갈 양보하고, 자신보다 약한 사람에겐 더 약해지는 당신은 쫄보입니다. 목소리를 내도 들어주는 사람 거의 없습니다. 손을 들어도 주목해 주지 않습니다. 아마도 앞으로도 당신은 쫄보로 살아갈 겁니다. 당신의 자식도 쫄보로 살아갈 겁니다. 쫄보로 태어났으니까요.

당신들은 국민입니다. 당신들이 모여서 목소리를 내면 저 나쁜 쫄보들은 당신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손에 손에 빛나는 걸 들어 보여주면 저 나쁜 쫄보들은 주목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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