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술계엄 후폭풍

2024-12-15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됐다. 이제 헌법재판소의 시간이다. 내년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면 나와 내 친구들은 ‘윤 나이’로 17세부터 30세까지 대선을 4번 치른 신인류에 등극한다. 30년 살았는데 대통령 탄핵안 통과를 3번째 본다.

기자로서 겪는 것은 처음이다. 하필 법조팀이다. 오늘로 15일째 연속 근무 중이다. 잠은 하루에 서너 시간쯤 자는 것 같다. 주변 기자들, 특히 사회부와 정치부 기자들은 대강 비슷하게 살고 있다. 가족 얼굴보다 팀원 얼굴을 훨씬 자주 많이 오래 본다. ‘12월 3일, 45년 만의 계엄 선포, 6시간 뒤 해제’라는 123456 암기법을 외지 않아도 몸이 기억한다.

‘괜찮니? 살아있니?’ 수많은 안부 연락과 비타민 선물을 받았다. ‘아니, 죽었어.’ 밤늦게 집에 가면 택배가 오롯이 쌓여있다. 머릿속은 온통 ‘내란죄의 요건이 뭔가’ ‘대통령을 강제수사할 수 있나’ ‘권한대행도 권한대행의 대행도 조사 대상인데 만약 피의자가 되면 대행의 대행의 대행 체제가 되는 건가’ 이런 고민들과, 계엄에 휘말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고 잘 전할 방법뿐이다. 그나마 참고할 만한 전례를 보려면 45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사이 1인당 국민소득은 486만원에서 3703만원이 됐다(1980년과 2023년, 통계청).

기자는 분명 이번 계엄의 직격탄을 맞은 직군이지만 군과 경찰, 정부, 국회, 선관위, 수사기관만큼은 아니다. 군은 마비 상태다. 수뇌부가 전부 국회와 수사기관에 불려 다니느라 지휘 체계는 망가졌고 군사기밀은 줄줄 새고 있다. 1·2인자가 동시에 수갑을 찬 경찰은, “48시간 이내 미복귀 시 처단”을 경고받은 의료계는 어떤가. ‘부정선거 의혹’이란 불신과 균열이 싹튼 선거 시스템은 또 어떤가. 보기 민망한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검·경·공은 수사가 끝난 뒤 어떻게 될까. 이 가운데 지금 밤을 지새우지 않는 조직은 없다.

한조각 책임도 없는데 버텨야 하는 자들은 무슨 잘못인가. 끔찍한 폭력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안고 살아가던 계엄 경험자들, 영하권 추위에 응원봉 들고 길거리로 나선 시민들, 하루아침에 매출이 곤두박질친 자영업자와 폭락장을 견디는 사람들, 환율 쇼크로 내년 사업계획 짜기도 막막한 기업들과 잃어버린 국가 신뢰를 되찾아야 하는 외교가 등등…. ‘허술 계엄’이 온 나라에 남기고 간 상처가 깊고 비싸다.

그는 비상계엄의 의미를 알았을까. 법학도 시절 12·12 군사반란 모의재판에서 전두환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던 대학생 윤석열과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지만 결국 5000만명의 기본권을 위협하고 끝난 대통령 윤석열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헤아릴 수 없다. 스스로를 ‘5000만의 대통령’이라고 여겨줬다면 차마 할 수 없었을 선택이 계엄인 것만은 분명하다. 헌재의 신속한 재판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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