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은행권 가장 큰 화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6대 은행 수장 간담회였다. 외부 시선은 차치하더라도, 참석한 은행장 6명 중 4명이 이제 막 직함에 적응하기 시작한 신임 행장이니 이들은 더더욱 무슨 말을 의미 있게 해야 할지 어떤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할지를 두고 머릿속이 복잡했을 것이다.
은행연합회에 간담회 관련 사안들을 문의했을 때 정돈되지 않은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번 간담회는 거대 야당이 주도권을 쥐었기에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주도권을 잡힌 은행장들은 경기둔화와 고금리 상황 속에서도 그동안 얼마나 소상공인, 취약계층과의 상생에 힘써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상생금융에 힘쓸 것인지에 방점을 두고 치밀한 답변을 준비했으리라.
간담회에서 은행장들은 상생금융 현안을 공유하고 소비 진작과 환율 안정의 필요성을 피력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모두 발언을 통해 "(은행장) 여러분들이 활동하는 데 정치권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들어보려는 자리"고 했지만, 대형은행 수장들의 초점은 '상생' '지원'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간담회에서 오고간 대화들을 곱씹어 보다가 문득 은행권이 새해에는 새로운 이야기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그래도 1%대 초저성장에 탄핵 정국과 정치 불확실성이 경제 불안정성을 증폭시키는 상황까지 마주하게 됐지만 그래도, 아니 이럴 때일수록 이전에 없던 새로운 화두로 새 지평을 열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들이 민생에 무게를 두려는 모습은 고금리 기조가 지속된 지난 몇 년간 숱하게 목격돼 왔다. '역대급 이자이익' '넘치는 성과급' 지적이 연말연초를 맞아 다시 나오는 데다 이른바 횡재세(초과이익 환수) 도입을 추친해 온 민주당 대표를 만난 자리였기에 기존 모습의 반복이 이해도 된다. 마침 간담회 주제도 '민생 경제 회복'이었다.
그러나 은행장들이 한자리에 모인 다음 기회에는 치열한 고민이 담긴 새 이야기 역시 듣고 싶다. 연 순익 3조원 안팎을 벌어들이는 대형은행 수장들이 거대 야당 대표가 '어떤 도움을 줄까'하며 판을 벌린 자리에서 '상생' '내수 회복' 외에는 원하는 것이 없었을 리 만무하다.
3년간 KB국민은행장을 지내고 지난 연말 KB금융지주 글로벌사업부문장으로 자리를 옮긴 이재근 전 행장의 한 문장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지난해 신년사에서 그는 "향후 3년이 기존 전통은행들의 명운을 좌우할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은행이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전 행장의 말에 따르면, 이번 간담회에 참석한 은행장들이 속한 조직의 명운을 좌우할 시간은 이제 2년 남았다.
은행이 성장 방안을 모색한 끝에 내린 결론이 유의미한 결실을 맺으려면 반드시 법적, 제도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누군가는 용감하게 따져 묻고 치열하게 협상, 쟁취해 나가야 한다. 짧게 보면 은행만을 위한 길 같지만, 이것이 도리어 장기적인 '민생 금융 방안'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