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의 역습
〈제1부〉 예전의 하늘과 땅과 바다가 아니다
4화. 기후 난민이 된 사과 농부들
무더위와 어울리지 않게 긴 소매 옷을 입은 농부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통일’이란 단어가 튀어나왔다. 씁쓸한 웃음과 함께였다. 치솟는 기온 탓에 고향마저 등진 농사꾼의 마음은 휴전선에 가로막혀 오가지 못하는 분단된 조국의 상황만큼이나 답답했다.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박형수(59)씨는 자신을 “기후 난민”이라고 했다.
중앙일보 ‘기후의 역습’ 취재팀은 늦더위 이상기온이 한창이던 지난 8~9월 두 차례 강원도 양구군의 사과 농장을 방문했다. 1년에 두세 번도 수확할 수 있는 밭작물과 달리 과일은 한 철 장사다. 그만큼 기후 영향을 많이 받는다. 급격한 기온 상승 탓에 한 해 농사를 망치면 가격 변동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해엔 추석을 앞두고 사과 한 알이 1만원을 넘는 ‘금사과’ 충격도 있었다. 중앙일보가 땅의 변화를 추적하며 이곳을 선택한 이유다.
박형수(59)씨의 사과 농장은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산꼭대기에 있었다. 3만 평 규모의 과수원 이름도 ‘애플하이랜드’였다. 해안면 인근 사과 농지 중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서다. 그는 “이젠 동네에서는 ‘꼭대기집’이라고 하면 다 알죠”라고 했다. 그러나 강원도 ‘꼭대기’는 그의 고향이 아니다.
박씨는 경상북도 영천에서 나고 자랐다. 사과와 복숭아 농사도 당연히 영천에서 시작했다. 그는 “원래 영천에서 17년 넘게 농사를 지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