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말, 공기의 말

2024-10-31

바닷물은 차고 볕은 한없이 따가운 칠월 초순 첫 멍게 작업이었다

휘이휘이 숨 트며 방파제 돌아 나오던 춘자 형님이 그만 정신을 놓았다

후불 형님과 돌돌이 형님이 둥둥 뜬 몸 끌고 와

물옷 물고 찢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119, 119, 사람 간다. 119 전화해라

순식간에 모여든 해녀들이 둥그렇게 에워싸고는 발을 동동 굴렀다

백지장처럼 하얗게 돌아가는 목숨을 붙들겠다고 울부짖었다

살아래이

살 거래이

가믄 안 된데이

살아야 한데이

춘자야 인나거라, 인나라, 인나라

숨을 놓는 동료에게 주문을 걸던 고래들이 생각났다

주둥이로 힘껏 물 위로 차올려 몇번이고 분기공 띄우려 애쓰던 참돌고래들

가라앉는 삶을 떠받치며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구급차가 올 때까지 울며불며 심장 두드리던 해녀들이

춘자 형님 숨 하나 뱉자 가슴 쓸어내리며 주저앉았다

물안경 자국 깊은 얼굴에서 바닷물이 눈물처럼 흘렀다

됐다, 인자 됐다

-시 ‘물의 말’, 권선희 시집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

군데군데 이 빠진 배추들이 모종을 녹여버릴 정도의 가을 폭염을 증명하고 있다. 뒤늦게라도 씨앗을 메꿔 넣을 수 있는 무나 갓과 달리, 모종을 심어야 하는 배추는 방법이 없다. 보랏빛 열매를 잔뜩 단 가지가 밭의 체면을 살려주긴 하나 수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상강 지나 입동이 다가오는데 꽃 피우는 가지라니. “톳이 사라진 것은 7년차고 미역은 6년차고 모자반은 5년차예요. 그러니 해조류를 먹고사는 소라와 전복은 어떻겠어요?” 잡초도 타 죽어 버리던 여름에 만난 유용예씨의 말이 실감난다.

기록 작업차 갔던 제주 가파도에서 만난 유용예씨는 서울에서 잘나가는 대기업 디자이너를 때려치우고 사진작가로 살다가, 10년째 해녀로서 어촌계를 이끌고 있다.

그는 해초가 단계적으로 줄어드는 것보다 전멸 아니면 과잉인 바닷속 생태계를 염려했다. 어획량이 둘쑥날쑥한 것도 무섭지만 바다가 뜨거워서 조업을 할 수 없는 날이 갈수록 늘어가는데, 바다에 대량으로 에프킬라까지 뿌려버렸단다. “맨몸으로 6시간 이상 조업하면서 얼마나 많은 물을 마시겠어요?” 그는 동료 해녀들과 “8월24일 이후로 모두의 바다는 다르게 기록될 겁니다”라고 쓴 플래카드와 함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집회도 열었다. 오염수와 펄펄 끓는 바다를 통해,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것이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그는 “줍고 치우면 되는 쓰레기는 오히려 감사”하단다.

유용예씨의 사진전 제목인 ‘물벗’(사진)과 ‘할망바다’는 서로 경쟁하면서도 함께 숨을 나누고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해녀들과 바다 이야기다. “아무리 싸우더라도 서로의 고무옷을 올려주고” 할망들을 위해 얕은 바다를 남겨두는 배려와 서로를 살리려는 생명의 감수성으로 가득하다. 바다에서 나오면 몸은 지쳐 있어도, 에너지는 넘치고 목소리는 커져 있는 해녀의 눈은 바다를 머금은 검푸른 빛이란다. 혹독한 삶 속에서도 “살 거래이” 말하는 목소리가 절실한 시절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집회에서 “바다가 죽어간다면서요?” 묻던 어린 학생처럼, “숨을 놓는 동료에게 주문을 걸던 고래들”처럼.

내 목숨을 의지하는 존재들에게 엎드리는 법을 잊어버린 시대에 서로 “가라앉는 삶을 떠받치며 푸른 바다 검게 울던 물의 말”에 귀 기울인다. 하룻밤에 벼락이 500번 친 공기와 바람에게도, 암담한 미래의 바다에게도 “살아야 한데이” 중얼거려본다. “인나거라, 인나라, 인나라” 울부짖으며, “주둥이로 힘껏 물 위로 차올려 몇번이고 분기공 띄우려 애쓰던 참돌고래들”처럼, 몸이 몸을 살리는 공기와 물의 언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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