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수봉인지로 밀봉하겠습니다.”
지난 10일 오후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4층 회의실. ‘제21대 대선 투ㆍ개표 절차 시연회’가 열렸다. 일각에서 제기하는 부정선거 의혹을 차단하려 마련한 행사다. 투표관리관 역할을 맡은 선관위 직원이 투표가 끝나자 투표함 위에 ‘특수봉인지’를 단단히 붙여뒀다. 이후 이 직원과 2명의 참관인은 투표용지 투입구가 밀봉된 걸 확인한 뒤 봉인지 위에 서명했다. 이날 시연을 위해 봉인지를 손으로 잡아 떼보니 보이지 않았던 ‘OPEN VOID’란 훼손 표시가 바로 나타났다.
하지만 부정 선거론자들은 훼손 표시는 무시하고 투표함에 봉인지를 뜯은 흔적이 남지 않는 것을 문제 삼는다. 그러면서 “누군가 가짜 투표지를 집어넣은 뒤 새 봉인지를 붙여도 알 수 없다”는 의혹을 제기한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함을 옮길 땐 각 후보자와 정당이 추천한 참관인 외에 경찰까지 따라붙는다”며 “또 개표소 곳곳에 CCTV가 운용돼 가짜 투표지 투입이나 투표함 바꿔치기는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만일 실제 개표장으로 훼손 표시가 된 투표함이 옮겨지면, 접수부에서 즉시 경위 파악에 나서게 된다.
음모론자들은 아예 ‘CCTV 조작설’까지 나아간다. 지난 4ㆍ2 재보궐 선거 당시 부산시교육감 선거 관내사전투표함 보관장소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CCTV 화면 속 시간과 실제 시간이 수 시간 가량 차이 난다면서다. 선관위 확인 결과, CCTV 영상을 외부로 송출하던 PC 4대 중 한 대에 오류가 발생하면서 일어난 해프닝이었다. 원본 영상은 끊김 없이 저장된 상태였다. 선관위 관계자는 “부정 선거는 007 같은 첩보영화에서나 가능하다”고 했다.

유튜브와 SNS에선 ‘통합선거인명부 조작’과 ‘투표용지분류기 해킹’ 가능성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명부 조작은 ‘유령 유권자’가 핵심이다. 4ㆍ10 총선 당시 실제 유권자보다 선관위 서버에 기록된 투표인 숫자가 부풀려졌다는 의혹이 핵심이다. 행정안전부가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사전투표 첫날 이뤄진 선거를 전수조사한 결과, 의혹은 사실이 아니었다. 다만 관외사전투표에 참여한 선거인이 관내사전투표함에 표를 잘못 넣은 실수가 일부 확인됐다.
이날 시연회장에는 지난해 도입한 신형 투표용지분류기도 등장했다. 투표지를 후보별로 자동 분류하는 장치다. 기표란을 조금 벗어난 애매한 표도 잡아낸다. 분류기 끝쪽엔 제어용 PC(노트북)가 달려 있는데, 음모론자들은 해킹 가능성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제어용 PC에 통신 기능 자체가 없어 외부에서 원격으로 해킹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021년 감사원이 감사를 벌였는데 개표 작업 이후 PC 내 통신 기능을 뜯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어떤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일명 ‘큰 수(大数) 법칙’도 음모론을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모(母)집단이 클수록 무작위로 뽑은 표본도 모집단 평균과 비슷하다는 통계 원리다. 부정선거론자들은 표본이 5만 건 이상인 사전투표와 본투표의 득표율 역시 거의 같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통계 전문가들은 서로 다른 두 집단을 동일하게 보는 가정부터 틀렸다고 지적한다. 이미 대법원도 2022년 7월 선거무효소송에서 “사전투표와 본투표 참여자의 지지성향 차이 또는 선거일 당시 정치적 판세에 따라 특정 정당‧후보자에 대한 사전투표 득표율과 선거일 득표율이 다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김용빈 선관위 사무총장은 “이번 대선엔 투명성을 높이려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공정선거참관단을 처음 운영한다”며 “선관위 서버 검증참여 등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앙일보·중앙선관위 공동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