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한해 영화계 소식은 암울하기만 하다. 2024년 극장 관객 수는 1억2313만명으로 코로나19 이전(2019년 2억 2667만명)의 55%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2025년에는 연간 1억명 붕괴마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에 국회에서는 '홀드백(Hold-back)', 즉 극장 상영 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공개까지의 유예 기간을 법제화하려는 논의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 규제가 과연 영화 산업 회복의 해법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정책 논의에 앞서 소비자의 목소리를 먼저 들어야 한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23년 영화소비자 행태조사'에 따르면, 극장 관람 빈도가 줄어든 이유로 응답자들은 '볼만한 영화가 없어서'(24.8%)와 '품질 대비 티켓 가격이 올라서'(24.2%)를 가장 많이 꼽았다. '극장 개봉 후 조금만 기다리면 OTT로 볼 수 있어서'라는 응답은 16.6%에 불과했다. 즉, 홀드백 단축이 극장 침체의 주된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2019년 이후 3년간 한국의 영화 관람료 인상률은 21.8%로, 미국(15%), 일본(5.2%)을 크게 앞섰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전 세계 극장들이 관람료를 인상했지만, 한국의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홀드백 기간이 늘어나면 극장에 갈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0%에 그쳤다.
홀드백 법제화에 대해 영화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특히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PGK)은 국회 법안 검토 과정에서 홀드백 법제화에 대한 명확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조합은 이 법안이 배급사의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침해하며, 투자시장 위축과 유통시장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한국 영화 시장은 스크린 독과점과 대작 위주 편성으로 중소 규모 영화가 설 자리가 좁다. 극장에서 조기 종영된 작품에 IPTV나 OTT는 유일한 수익 회수 창구다. 만약 법으로 유통 기한을 제한한다면, 현금 흐름이 막힌 영세 제작사들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해외에서는 흥행이 저조한 영화를 즉각 VoD로 전환해 마케팅 효과를 이어가는 유연한 전략을 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홀드백 법제화 찬성 측은 프랑스 사례를 자주 언급한다. 프랑스는 15~17개월의 긴 홀드백을 유지하며 코로나19 이전 관객 수의 90%까지 회복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홀드백 제도는 단순한 기간 규제가 아니다.
프랑스는 플랫폼의 자국 콘텐츠 투자 기여도에 따라 홀드백 기간을 차등 적용한다. 프랑스 영화에 재투자하고 세금을 성실히 납부하는 OTT에는 기존 36개월에서 15개월로 단축된 혜택을 주고, 투자가 미흡한 플랫폼에는 긴 기간을 유지한다. 또 프랑스는 민간 방송사 위주의 시장 구조와 오랜 협의 시스템이 뒷받침된다. 국영방송 위주로 출발해 통신사 기반 IPTV와 OTT가 강세인 한국과는 산업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의 경우 팬데믹 이후 기존 90일 홀드백을 45일 안팎으로 유연화했으며, 작품에 따라 극장-OTT 동시 개봉도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은 제작위원회가 개별 작품마다 홀드백 기간을 유연하게 설정한다.
또 하나의 우려는 불법 유통 시장의 확대다. 카네기멜론대의 연구(Smith & Telang, 2016)에 따르면, DVD 출시를 10일 지연시킬 때마다 판매량이 2~3% 감소하며, 불법 복제가 활발한 환경에서는 최대 10%까지 급감한다. 합법적인 시청 경로를 6개월간 막는다면, '누누티비' 사태에서 보았듯이 소비자는 불법 경로로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저작권 보호라는 영화 산업의 근간을 스스로 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정부는 획일적인 강제 규제보다는 시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면서 정교한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모태펀드 투자작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영화진흥위원회를 통한 중재 역할 강화, OTT 플랫폼의 국내 콘텐츠 투자 유도 등 다양한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2024년 50%의 상영 점유율로 천만 관객을 돌파한 '파묘'가 보여주듯, 좋은 콘텐츠는 여전히 관객의 선택을 받는다. 산업의 선순환은 플랫폼 간 칸막이를 높이는 규제가 아니라, 콘텐츠 경쟁력 강화와 관객의 자발적 선택을 이끄는 방향에서 시작된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충분히 협의할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때다.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 yhkim1981@sunmo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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