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대특집⑩] “영화 <반구대 사피엔스> 크랭크-인”

2025-08-29

633호부터 10회에 걸쳐 그동안 필자가 보고 듣고 느꼈던 반구대 사람들, 그들의 소망과 욕망을 2020년부터 취재한 내용을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대곡리 가가호호(家家戶戶)”와 “대곡리 갑을남녀(甲乙男女)”에 이어 반구대특집 마지막 ⑩회는 “영화 <반구대 사피엔스> 크랭크-인”으로 마무리합니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게 되면서 이미지의 자본주의적 소비란 스마트폰으로 할 수 없는 것에 한정하는 경향이 생겼다. 영화가 발명된 1895년 이전만 해도 많은 나라에서 인기 있던 콘텐츠는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찍어 온 사진첩을 보는 일이었다. 지금으로 치자면 전문 영역에서 여행·탐험 다큐멘터리, 비전문 영역에서 여행 브이로그(VLOG: Video와 Blog의 합성어로서 SNS 등에서 일상을 동영상으로 소개하는 것)쯤 된다.

웹툰 <신과 함께>(2017~2019, 주호민, 총 212화)의 트랜스미디어인 영화 <신과 함께>(2017, 2018, 김용화) 제작자 원동연(리얼라이즈픽쳐스)은 영화 산업과 극장 산업이 무너져 가고 있는 현상에 대해 앞으로 영화는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이냐, 아니면 극장에 가서 봐야 하는 것이냐로 구분될 것으로 진단했다. 말하자면 이제 영화란 시각적인 자극이냐, 정서적인 자극이냐가 잣대가 됐다는 말이다.

영화는 태생부터 기계와 함께 궤를 같이해 왔고, 기계의 발달에 따라 영화의 기술과 기법도 변화무쌍하게 진화했다. 대규모 인력이 참여하는 종합예술인 영화는 기계적 진화뿐만 아니라 언제나 자본의 논리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만들기 전에도, 만드는 동안에도, 그리고 만든 이후에도 매 순간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포드 자동차의 포디즘(Fordism)은 철저한 분업화의 효율로 대량생산과 표준화를 통해 수많은 직군을 만들어냈고, 포디즘은 산업현장뿐만 아니라 학계나 예술계, 그리고 인간의 생활 범주 자체를 재구성했다. 영화계도 미국의 D. W. 그리피스가 영화계에 포디즘을 도입하면서 모든 작업 과정이 세밀하게 분화했고, 전문 직군이 많이 늘었다. 이 말은 비용이 투입되어야 할 대상이 확대됐음을 의미하고, 촬영 현장 인력의 증대에 따라 제작비가 상승하게 되었다.

머릿수가 많아지면 각 범주의 권리와 책무를 보장하고 한정하기 위해 단체가 생겨난다. 대개 단체는 권리와 책무를 내세우지만 사실상 소속 단위의 이익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결과적으로 분업화란 비용 증가와 담합의 다른 말이다.

카르텔에 포함되지 못하거나 포함되지 않으려 하는 영화예술인들은 항상 독립 노선을 추구하면서 적은 인력, 적은 비용에 대항하기 위해 창의적으로 뇌를 활용하게 되었다. 엄밀히 말해 카르텔에 포함되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대부분 카르텔의 섭리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그러한 이들은 대체 카르텔이나 엉뚱한 곳이라도 어떻게 해서든 연결고리를 만들어서 다른 카르텔에 반드시 소속되려 한다.

애초 미국의 영화 중심지는 뉴욕이었다. 영화 스튜디오들의 카르텔이 워낙 강렬해서 이에 반발한 독립 제작자들이 새로운 촬영지를 개척해 정착한 데가 할리우드이고, 당대 최고의 배우이자, 감독이자, 작가이자, 제작자를 겸했던 찰리 채플린, 메리 픽포드,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D. W. 그리피스가 ‘유나이티드 아티스트’를 설립했다. 할리우드와 이들의 스튜디오가 대성(大成)했을 때 그들은 이전의 카르텔보다 훨씬 더 강력한 카르텔을 형성했다.

한국의 영화계는 충무로에 집중했고,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에 강남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김대중 정부의 정책에 따라 대규모 자본이 영화계로 들어오면서 늘 굶주리고 가난했던 영화인들이 골방에 앉아서 시나리오를 쓰고 회의하다가 장소를 고급 호텔로 바꾸기 시작했다. 대박 난 영화, 예컨대 <쉬리> (1999, 강제규)의 시나리오 작업 장소였던 신사동 ‘삼화호텔’은 영화인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삼화호텔은 한실에다 커다란 형광등까지 있어서 여럿이 들어가 작업하기에 참 좋았다.

강남 요지에서 허름한 체육복에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영화인들이 돌아다니니 숙소나 사랑의 장소가 필요한 사람들이 더 이상 오지 않아서 호텔은 리뉴얼을 핑계로 환한 형광등을 떼 낸 뒤 어두침침한 조명을 달고, 여럿이 돌아다니지 못하게 침대로 객실을 꽉 채워 버렸다. 그 무렵 영화계에는 한파가 닥치면서 다시 배고픈 시절로 돌아가는 사람이 늘었다. 그 가운데 한 명이 필자다. 준비하다가 엎어진 사람들이 한 바가지였다.

<반구대 사피엔스>의 장르가 다큐-드라마라고 하니 누군가 요즘 다큐멘터리가 훨씬 인기가 많다면서 대단한 걸 기대했다. 한 마디로 얘기하면 적은 비용 투입은 낮은 품질의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장비가 굉장히 다양해졌고, 포디즘 개념을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만큼 세분화한 세상에서 영화 현장에 필요한 분야와 인력 수는 너무 늘었다. 영화계의 표준근로계약서 안착으로 인건비는 엄청나게 올랐으며, OTT 덕분에 상승한 배우와 스태프 개런티 때문에 이 정도의 저예산 영화는 배우도, 스태프도 일단 접고 들어가야 한다.

<반구대 사피엔스>의 제작비는 액면가 2억 원, 장부상에 기재되지 않는 비용을 포함하면 현재까지 4억여 원, 작품이 완성될 때쯤엔 5억 원을 웃돌 것이다. 지방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숙박비와 식대가 서울에서 촬영하는 것보다 몇 배가 더 든다. 스태프와 배우가 촬영을 쉬는 사이 다른 일을 할 수 없어서 사람 구하기도 어렵다.

최근 다큐멘터리가 각광이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코로나 시국을 거치면서 OTT에 자본과 인력이 몰렸고,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TV에서는 드라마를 감당할 수 없어서 상대적으로 제작비가 낮은 다큐멘터리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어떤 전문가는 TV의 기능이 스트리밍으로 완전히 옮겨가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럼에도 <반구대 사피엔스>는 9월 9일 울산시청에서 제작발표회를 한 뒤에 9월 11일 크랭크-인 한다.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반구대를 수백 번 오갔고, 사람들을 꾸준히 만났고, 그 안에서 무궁무진한 스토리텔링을 확인했다. 반구대암각화는 모르겠다. 유네스코 등재됐다고 해서 관심들이 커지고 있지만 난 여전히 암각화보다 사람에 더 집중한다. 그 덕에 여기까지 왔고 가야 할 곳이 정해졌다.

작년 8월, S작가의 첫 번째 시나리오 버전이 나왔다. 그 시나리오에는 반구대가 없었고, 반구대 사람들이 없었으며, 페이지를 들춰볼 수가 없을 만큼 정서가 너무 무거웠다. 두 번째로 H작가에게 두 달의 시간을 줬는데 ‘우라까이’한 걸 내놨다. 내 설명, 울산저널의 칼럼들, 제작 일지들, 내 취재록을 바탕으로 써서 첫 번째보다는 좀 나았지만, 정신이 사납고 신파적이었으며 맥락에 일관성이 없었다.

작가를 고용했다. 지난 3월부터 세 번째 버전의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지만 곧 중단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고, 작가의 취향이 나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래 7월 중순에 촬영이 들어가기로 돼 있었지만, 날씨, 스태프, 배우 등의 일정을 조율하다 보니 9월 초로 연기하게 됐다. 그러니까 원래 들어가기로 한 날부터 8월 말까지 틈이 생긴 거다.

그래서 직접 네 번째 버전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내 시나리오 쓰는 방식이 독특하다고들 한다. 머릿속에서 조형하듯 뼈대를 세우고 각을 다 맞춰 놓은 뒤 기승전결이 다 잡히면 그때 쓰기 시작한다. 나흘 만에 글씨 크기 10포인트로 A4 60쪽짜리 트리트먼트를 썼고, 사흘 만에 100쪽 116신짜리 초고를 뽑았다. 기획 단계부터 앞의 세 작가에게 여러 차례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미 구성이 잡혀 있었을 테고, 6년 동안 오르내리며 만나고 경험한 시간과 감정들이 큰 자산이 됐을 테다.

지원 사업으로부터 시작됐다는 점에서 제한선이 있고, 처음부터 4억 원을 요구했지만 반도 안 되는 금액밖에 안 돼서 설정에 제약이 있지만 주어진 여건 안에서 애초 기획 의도와 가장 부합하는 시나리오를 써냈다.

그림 콘티를 만들 시간이 없어서 글 콘티로 대체했지만 충분하다. 전체 컷 수가 450컷인데, 장편영화 치곤 적은 수지만 미장센으로 승부 보기로 했다. 작년에 예상하고 확보해 둔 영상이 많아서 이번 촬영에서 390컷만 찍으면 된다. 몹신 60여 컷과 사연호에 배를 띄우는 10여 컷 이외에는 스태프와 배우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 얼마나 머리를 쥐어 짜내면서 썼는지, 결과에 대체로 만족한다.

헤드 스태프들이 모두 일당백을 하는 자들이라 열악한 현장이 두렵지 않다. 오히려 아주 오랜만에 현장 뛸 생각을 하니 신이 난다. 말하면서도 잠이 들 만큼 피곤함에 절어 본 지가 얼마이며, 이 피곤 때문에 박카스와 우루사를 하루에 두세 번씩 먹는 게 얼마 만인지.

가난한 이 시간에서 나 자신을 위해 좋은 신발을 한 켤레 샀다. 생일도 아닌데. 촬영이 끝날 즈음 낡아 있을 신발이 기대된다.

처음 반구대를 올라갔던 날. 그리고 여기까지 오게 되면서 만난 수많은 사람. 사건. 이야기들. 나 때문에 마음도 상하고 아팠을 사람들. 덕분에 기쁘고 행복했을 사람들. 모두 고맙습니다.

반구대 이야기에서 내 뮤즈인 이재권 전 이장님과 손방수 여사. 기꺼이 출연에 응하고 반구대 축제를 함께 준비하는 이영근 님, 최상환 님. 반구대 예술인인 이석희 님, 유길훈 님. 배를 꺼내준 한실마을 히어로 박삼식 님. 커피 협찬과 함께 출연해 주는 신석민 님. 초 단역이지만 기꺼이 출연을 허락해 준 이병길 님, 이재우 님. 대사도 없지만 흔쾌히 수락해 준 최미선 님. 고맙습니다.

가난한 감독인데도 출연을 허락해 준 김홍표, 황유주, 김양우, 문영동, 안환용, 이정인, 서창원, 박보경 배우님. 연기하기 곤란한 역할인데도 바로 출연을 허락해 준 이숙진 배우님. 모두 고맙습니다.

성질 더러운 감독, 더 비뚤어지지 말라고 옆에서 격려하고 전진만 할 수 있게 뒤를 버텨 주는 정성현 프로듀서, 함철훈 촬영·조명감독, 현정훈 편집감독. 항상 내 옆에서 욕먹어도 해피, 칭찬받으면 더 해피한 박선영 씨네울산 부대표와 조은진 씨네울산 작가. 말도 안 되는 작업비로 OST와 뮤직비디오 제작까지 함께 작업해 주는 정연석 음악감독. 정말 고맙습니다.

나를 믿고 끊임없이 지지해 주는 울산정보산업진흥원 여러분과 그 가운데서도 이혜성 전임. 촬영 장소를 제공해 주면서 적극 협조해 주는 울주 트레비어 대표, 볼라오커피 대표. 그리고 울산저널 여러분과 이종호 편집국장, 김형균 대표. 고맙습니다.

무엇보다도 밑 빠진 독을 끊임없이 채워주는 내 부모와 내 동생 가족 모두 고맙습니다.

좋은 작품으로 배급이 확정된 스크린, OTT, CATV, 위성방송에서 만나겠습니다.

잘 만들겠습니다.

※그동안 10회에 걸쳐 연재한 반구대특집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9월 9일 화요일 울산광역시청에서 제작발표회 이후 9월 11일에 크랭크-인하는 영화·드라마 <반구대 사피엔스>에 많은 관심 바랍니다. 울산의 문화유산을 소재로 그 일대에 사는 주민들이 주인공인 이 영화를 잘 만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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