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교포 곽덕준의 13분 동영상 ‘자화상’

나이가 들수록 거울을 보는 일이 부담스러워진다. 중년이라면 대체로 공감할 것이다. 아마도 얼굴에서 시간이 읽히고 나도 모르게 삶을 반추하게 되기 때문일 듯하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로 화가의 자화상을 보는 일은 더 재밌어졌다. 몇 살에 그린 것인지 꼭 확인한다. 많은 화가들이 인생의 어느 시점에 한 번 정도는 자신의 얼굴을 그린다. 렘브란트처럼 인생의 시기마다 자화상을 남긴 경우에는 그 변화 과정 자체가 하나의 드라마가 되기도 한다.
교토 태생이지만 조센징 차별
‘나는 누구인가’ 질문 평생의 화두
유리판에 얼굴 짓눌러 가며 촬영
정체성 혼란 집요하게 파고들어
실험 시기 거쳐 ‘무의미’ 시리즈로
삶의 서사 담은 예술이 감동 불러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상설전시실에는 근대 시기에 그려진 자화상 대여섯 점을 모아둔 코너가 있는데, 이곳을 지날 때는 발걸음이 느려진다. 풍경화나 정물화를 감상할 때와는 다른 뇌 부위가 작동하는 느낌이다. 그림을 그릴 즈음 인생의 어떤 시기를 통과하고 있었을까, 평소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사람이었을까. 색채나 표현기법은 뒷전이고 캔버스 앞에 거울을 보며 앉아 있을 화가의 모습을 먼저 떠올린다. 이미지 너머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다.
현재 미술관에는 50여 점의 자화상이 소장돼 있다. 대부분 유화이다. 그런데 이 중 특이하게도 짧은 동영상이 한 점 있다. 재일교포 화가 곽덕준의 작품이다. 1978년 작이니 그의 나이 41세였다. 이 작품은 1982년 교토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근대 일본의 초상-자신을 응시하는 81전’에 출품돼 세상에 알려졌다.
‘자화상’ 앞에서 아이들 웃음 터뜨려

곽덕준의 ‘자화상’은 깨진 유리판에 자신의 얼굴을 문질러 일그러지는 모습을 비디오카메라로 촬영한 것이다. 현재 과천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영상 앞에서 어린 관객들이 웃음을 터뜨리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그도 그럴 것이, 코나 입술이 유리에 짓눌리는 모습이 마치 예능 프로그램에서 스타킹을 뒤집어쓴 얼굴처럼 우스꽝스럽기 때문이다.
영상 속 얼굴은 눈을 크게 뜨고 깨진 선을 입술로 찬찬히 훑기도 하고 눈을 질끈 감은 채 코나 볼을 대고 문지르기도 한다. 천천히 시작된 움직임은 점차 고조되다가 중간에 잠시 멈추기도 하고, 아무런 규칙 없이 지속되다가 느닷없이 끝나버린다. 목적과 의미를 알 수 없는 기괴한 행위가 13분간 지속된다. 고통과 유머, 자학과 해학의 경계가 모호해진다.
그런데 이 기묘한 행위를 지켜보다 보면 마음이 상당히 불편해진다.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집요함이 느껴지는데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자화상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고 한다면, 곽덕준의 대답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무엇보다도 혼란스러움과 답답함이다.
곽덕준에게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그야말로 실존과 연결된 문제였다. 그는 1937년 교토에서 태어났다. 경상남도 출신 부모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교토로 이주하여 농사를 짓고 살았다. 조선인이 거의 살지 않는 마을이라 한국말은 배우지 못했다.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 이후에는 일본 국적을 박탈당했다.
식민지배의 역사적 결과로 살게 된 과거의 종주국에서 차별과 억압을 받았으니 정체성의 혼란과 분열은 불가피했다. 많은 재일 한국인들처럼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어를 사용하지만 완전한 일본인도, 한국인도 될 수 없는 경계인의 삶을 살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곽덕준의 ‘자화상’은 혼란한 시대가 만들어낸 경계인의 자의식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이 작품을 ‘근대 일본의 초상’이라는 제목의 전시회에 출품하는 심정은 어땠을까. 그는 “출품을 승낙하는 동시에 주마등과 같이 머릿속을 맴도는 잡념을 제지하는 데 다소의 시간을 소비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곽덕준은 미술학교에서 일본화를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생계를 위해 기모노 염색 공장을 운영했다. 20대 초반에는 3년간 심한 폐결핵을 앓아 한쪽 폐를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다. 투병 중에도 그림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는데, 젊은 시절에 죽음의 문턱을 넘을 뻔한 경험은 그의 세계관과 예술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1960년대 말까지의 초기 작품은 주로 일본화의 재료와 염색 공장에서 배운 기법을 활용한 반추상 회화였다. ‘얼굴에서 드러나는 모습’이나 ‘덫에 걸린 왕’이 그 예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실존이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여기에는 오랜 기간 투병한 경험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병원에서마저 나를 조센징이라고 불렀다. 죽음의 문턱에서 나의 현실과 마주하면서 숙명과도 같은 불편한 정체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절대가치 회의한 ‘계측’ 시리즈

1970년대에는 완전히 방향을 틀어 개념적인 실험미술을 시작했다. 그가 1970년에 도쿄에서 열린 개인전에 선보인 ‘계측’ 시리즈는 방일한 구겐하임 큐레이터에게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무거운 돌을 계량기에 올려놓았는데 눈금은 ‘0’을 가리키는 작품, 그리고 저울 위에 저울을 쌓아 올린 작품이 모두 이 시기에 발표한 것들이다. 우리가 별다른 의심 없이 ‘진리’로 받아들이는 절대적 가치들도 사실은 그저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적 허상일 뿐임을 환기시키는 작업이었다.
1970년대 이후 곽덕준은 일본의 여러 화랑과 미술관의 초청을 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서른 즈음에는 처음으로 고국을 방문했다. 이후 한국미술계와도 교류를 시작하면서 양국의 실험미술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2003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되어 이름을 널리 알렸고 2014년에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곽덕준은 조각·영상·사진·퍼포먼스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형식을 시도했다. 그의 대표작 ‘대통령과 곽’은 사진 연작이다. 1974년 포드 대통령 때 시작해 카터·레이건·부시 등으로 이어졌다.

이 시리즈는 미국 대통령 선거 직후 시사 주간지 타임의 표지에 실린 당선자 얼굴의 절반을 거울로 가리고, 그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 반쪽과 함께 사진으로 촬영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권력이 강한 자, 그리고 그 반대편 끝에 있는 변방의 예술가를 조악하게 결합시킨 것이다. 이 결합의 허술함은 거울을 들고 있는 작가의 옆얼굴과 손이 그대로 노출됨으로써 우스꽝스럽게 드러난다. 개인이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의 임의성과 공허함을 조소하는 작품이다.
사진과 신문, 계량기 등은 일반적으로 사실을 가장 정직하게 전달할 것으로 기대되는 도구들이다. 곽덕준의 작품은 가벼운 트릭을 사용하여 이런 기대를 배반함으로써 이 세상에 진리, 혹은 절대적인 가치 따위는 없다고 폭로하는 셈이다.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허술하고 무의미한지를 드러내는 것. 이것이 바로 곽덕준이 예술을 통해 말하고자 한 바였다. 그리고 이러한 주제의식에 약간의 유머와 자조를 섞어 무게를 덜어내는 방식으로 그는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했다.

이러한 곽덕준의 스타일은 1980년대 이후의 ‘무의미’ 시리즈에서 절정을 맞는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신문과 잡지를 캔버스 위에 붙인 후 호분을 칠해 원본의 이미지를 흐릿하게 만든 후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신문과 잡지는 온갖 일들이 벌어지는 현실을 표현하기 위한 재료이다. 그리고 화면을 격자로 분할한 것은 인간이 억지로 만들어낸 사회적 틀이나 관념 같은 것을 의미하는 듯하다.
한편 모자를 쓰고 코트 깃을 세우며 걸어가는 남자는 누가 봐도 곽덕준 자신의 모습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 따위는 그저 곁눈질로 훔쳐볼 뿐, 일종의 방관자로서 삶을 통과해 가는 듯한 느낌이다.
경계인은 결국 방관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는 제목이 알려주듯,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이르렀기 때문일 것이다.
매체와 형식을 달리하며 변화를 거듭한 곽덕준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결국 삶의 서사이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의문에서 시작하여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나와 세상의 관계를 점검하고, 그 결과 무의미에 이르는 이야기. 정체성과 실존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하여 세상의 무의미에 대한 자조적 폭로로 이어지는 그의 작품들이 보편적 공감을 자아내는 이유이다.
지난달 88세로 영면
이를 염두에 두고 그가 40대 초반에 촬영한 ‘자화상’을 보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13분짜리 짧은 영상 속에 담긴 요소들이 우리 삶의 모습과 너무나 비슷한 것이다.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고통과 가끔씩 주어지는 평온함, 목적 없이 반복되는 행위, 느닷없는 끝.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지배하는 무의미함이라는 정서. 작품은 정체성에 대한 탐구이면서 동시에 삶 자체에 대한 비유로도 보인다.
이렇듯 곽덕준의 작품들은 유머러스하고 가벼워 보이는 첫인상과는 달리 꽤나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작품 속, 체중계 위에 올려둔 돌이랑 비슷하다. 눈금은 분명히 ‘0’을 가리키지만, 우리는 그 돌의 무게를 알고 있다. 삶의 무게를 아는 것처럼 말이다.
지난달 곽덕준이 88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돌처럼 무거운 삶을 내려놓은 그의 영혼이 한없이 가볍고 자유롭기를 바란다.
이사빈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