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선미와 쌍꺼풀....'근대화' '문명화'와 함께 부상한 신체미, 표정미[BOOK]

2025-08-29

미인 만들기

김지혜 지음

서해문집

아름다움에 대한 관점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다르기 마련. 이 책 '미인 만들기'는 미인은 만들어지는 것이란 개념 역시 근대 이전의 조선에는 없던 새로운 것이라고 말한다. 책 첫머리에 소개된 '미인 제조 비법 공개', '미인 제조 교과서' 같은 말은 그런 변화를 짐작하게 하는 예. 각각 1928년 잡지 '별건곤', 1931년 잡지 '신여성'에 실린 글 제목이다.

물론 근대 이전 동아시아에서도 여성의 외모는 다양하게 표현됐다. 책에도 나오는 대로 눈처럼 흰 피부, 나방 같은 눈썹 등 주로 자연에 빗댔다. 지은이는 이를 "이상적인 미가 형상화될 수 없도록 현실적 묘사를 회피한 표현법"이라고 지적한다. 일찌감치 고대 그리스부터 인체에 대한 수학적 비례를 제시한 서구와는 다른 흐름이다. 여성의 외모, 이른바 부용은 15세기 조선의 『내훈』에도 부녀가 갖출 네 덕목의 하나로 꼽혔지만, 얼굴의 아름다움을 뜻하진 않았다. 지은이는 부용이 "외모보다는 내면의 마음가짐에서 오는 정숙한 자태와 몸가짐"으로 설명됐다고 전한다.

이 책은 이와 사뭇 다른 미의식과 미인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핀다. 19세기 말부터 1940년 무렵까지 각종 신문과 잡지, 글과 광고, 서구화와 중첩되는 일본의 영향 등을 아우르면서다. 당시의 글들에는 "문화가 진보됨에 따라 미인도 많아진다"라거나 "그 시대의 어여쁜 여자를 보면 그 시대 문명을 알 수 있다"며 미인을 문명화 척도로 여긴 시각도 드러난다. 사학·미술사학을 전공한 지은이는 근대 일본의 흐름 등을 통해 서구에서 전해진 새로운 미의 개념이 동아시아에서 '문명화'란 근대적 가치와 결부된 과정을 설명한다.

책에는 각종 화장품 광고를 비롯해 흥미로운 시대상이 촘촘히 소개된다. 전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코도 이제는 주목 대상. 실제로 조선에서 실행됐는지와 관계없이 각종 방법으로 코를 높이는 융비술이나 코가 높아 보이게 하는 입체적 화장법 등이 매체에 소개된다. 큰 눈도 마찬가지. 1930년 전후로 일본에서 쌍꺼풀 수술을 받고 온 여성 오엽주 이후 이런 수술이 조선에 도입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일회용으로 쌍꺼풀을 만들어주는 상품인 '미안기' 광고도 나온다.

근대 이전의 옷차림에서 두드러지지 않던 신체 전반 역시 미의 새로운 대상. 다리의 '각선미'라는 말과 이를 가꾸는 '미용체조'에 대한 기사는 물론 '요선미'란 말도 나온다. "허리가 잘록하도록 힘껏 맨" 허리띠를 보고 "민망하고 낯이 붉어"졌다는 관찰기도 이채롭다. 미인 기준으로 팔등신을 언급하거나, 키와 체중을 수치로 제시하는 것 역시 서구의 평가 기준이 도래한 면면이다.

표정도 있다. "지금은 표정 시대", "국민의 표정 여하를 보고 그 나라의 문화 정도를 추정할 수 있다"는 식의 주장도 등장한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은 "서양 남녀 배우의 진묘여실한 표정"을 보면 "우리는 대단히 후진"이라는 지적으로도 나타난다. "표정에 매력이 있어야 현대적인 미인", "옛 여성은 입을 크게 벌리고 웃는 일은 여자답지 않다고" 했던 것과 달리 "지금은 밝고 환하게 웃는 것이 오히려 현대의 여성다운 모습"이란 시각도 나온다. 지은이는 이른바 신여성의 사회 진출과 함께 백화점 등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명랑"과 "미소"가 요구됐다고도 전한다.

책의 마지막 장은 미인대회 얘기다. 당시 각기 다른 언론사 주최로 열린 세 대회는 응모자나 주변에서 보내온 사진을 독자투표나 심사로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그중 잡지 '삼천리'의 대회는 문화예술계 유명인사들이 심사를 맡았다. 대회에 따라 기생의 참가를 막은 곳도, 기생이 최종 우승자가 된 곳도 있다. 이는 이 책이 앞서 전하듯, '미인'으로 거론되는 대상이 기생에서 여학생과 신여성 등으로 바뀌거나 이른바 '조선미'에 대한 일제의 시각 등과도 무관하진 않은 대목이다.

읽고 있으면 곳곳에서 요즘 세태가 떠오르는데, 지은이는 지금과 연결 짓는 해석 대신 당시의 시대상 조명에 중점을 둔다. 미인대회 역시 요즘 눈으로 보는 대신 당시의 맥락에 초점을 맞춘다. 참고문헌 목록과 주에서 짐작하듯, 여러 방면의 선행 연구와 다양한 원문을 풍부하게 소화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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