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혹한 현실 속 인간의 존엄과 따뜻함 전하는 전시... 김진열 작가, 드로잉&설치 초대전 '드로잉 모심 2025'

2025-08-29

종이 위에 종이를 얹어 거친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합지. 회색 바탕의 투박한 배접 위에 세련되지 않은 드로잉. 그 속에 숨겨진 작가의 시선은 미술의 차원을 시각에서 후각으로 확대한다.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다양한 형상 속 그들에게선 어딘가 시큼하면서도 구릿한 체취가 묻어난다.

수원시 팔달구에 위치한 예술공간 '아름'에서 열리고 있는 김진열 작가의 드로잉&설치 초대전 '드로잉 모심 2025'는 어둡지만 정겹고, 슬픈듯 아련했다. 2층 전시관 벽면을 가득 채운 80여 점의 드로잉 작품은 다양한 몸짓의 서민들이 고단한 현실 속에서 각자의 힘겨운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가을걷이가 끝난 을씨년스러운 강원도의 밭에서 비닐을 수거하는 노인, 버스 터미널 의자 등받이에 맥없이 전신을 기대어 앉아있는 청년, 길가에 할 일 없이 쭈그려 앉아 지나는 사람들을 처량하게 바라보는 남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묵직한 삶의 무게가 그대로 전달된다.

김 작가는 이런 모습이야말로 서민들의 진면목이며, 이들의 모습 자체가 존엄 사회의 건강성을 지탱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나 삶에 대한 여러가지 것들은 우리가 밝고 싶어도 밝지 못하게 하는 조건들이 되기도 한다.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것임에도 어쩔 수 없이 타고난 환경과 우리 사회에 주어진 현실과 억압적인 구조에 대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그림 속 사람들의 얼굴에는 표정이 없다. 그저 우리가 놓치고 지나쳤던 사람들의 몸짓만 보일 뿐이다. 무심코 지나쳐 아무 의미 없었던 모습들을 주목한 작가의 시선이 닿는 곳 사람들의 모습에는 외로움과 처량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김 작가는 "사람을 대면할 때 제일 먼저 감정을 사로잡는 게 표정이지만 몸짓에서 나오는 언어가 있다. 특히 버스 정류장, 터미널 등 멈춰 있을 때 그 사람이 처한 현실에서의 표정이 몸으로 나온다. 얼굴 표정을 없앰으로써, 몸의 표정을 표출시킬 수 있다는 것에 주목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보는 이로 하여금 몸의 표정으로 유도하고, 전체적인 표정으로 안내하는 것이 작품의 노림수"라고 주장한다.

그의 드로잉의 배경에는 두 가지 색이 눈에 띈다. 하나는 노랑색, 다른 하나는 연한 초록색이다. 그런데 두 가지 색을 떠올렸을 때 갖는 이미지와 그의 작품 속 이미지는 색상에서 큰 차이가 난다. 흔히 노랑과 초록은 밝고 희망적일 때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의 작품에 사용된 두 색상은 애매모호한 어두움이 깔려 있다. 김 작가는 두 가지 색에 먹물을 섞음으로써 짙은 우울감을 더욱 부각시킨다.

하지만 김작가의 작품은 밝음에 어두움이 가미된 것이 아니라, 어두움에 노랑과 초록의 밝음이 덧씌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의 작품이 과거보다 밝아진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어두움에는 연민이 있다.

김 작가는 "약자들의 삶 속에 모든 모순이 다 배어 있다. 하루 종일 원주 거리에 배회하듯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버스를 타고 지나갈 때 봤는데 돌아올 때까지 그렇게 서 있는 사람도 있다. 그 모습을 볼 때 내 가슴도 아프고 저 사람들이 행복을 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면서 "비록 말을 걸지는 못하지만 그림으로 이렇게 그들의 존엄을 모시다 보니까 가능하면 밝게 해주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과거보다 지금이 더욱 많이 밝아진 것"이라고 밝혔다.

작가 김진열의 작품에서는 유독 사람의 냄새가 많이 난다. 아름다운 향기가 아닌 사람의 체취다. 사람의 온갖 구멍을 비집고 나온 몸의 냄새. 하지만 그것이 고약하거나 거북스럽지 않은 것은 그 체취가 바로 나의 냄새이고 우리가 느끼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냄새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김진열 작가의 드로잉&설치 초대전 '드로잉 모심 2025'는 9월 5일까지 수원 팔달구에 위치한 예술공간 '아름'에 전시된다.

[ 경기신문 = 우경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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